로마서


                                    11과 그리스도인의 대인관계

                                                        (14장 1절 ~ 15장 13절)


   그리스도인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실을 매일의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내야만 하는가?  (2)


   8. 연약한 형제에 대한 관대함(14:1~ 15:13절)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두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 곧 믿음이 약한 자와 믿음이 강한 자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약한 형제는 어떤 음식에 대해서는 먹기를 삼가고, 또 어떤 날은 특히 중요하게 여겨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마 이런 사람은 원래 유대교의 배경을 지녔던 사람으로 구원받은 후에도 계속 유대교의 신조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이 강한 형제는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있어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건전한 음식이면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력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있을 때, 그것이 교회에 분쟁의 여지가 있을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은, 사랑의 관대함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권면한 후에 전체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여기에 제시되어 있는 원리는 단지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만 국한 되어 있을 뿐 그 원리들이 성경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는 교리나 의무에는 적용되어서는 안됩니.)


   1) 강한 자에게 : 그대는 약한 형제를 그대의 친교에 영접하되 그를 비판할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1절) 또한 그대는 약한 형제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2) 약한 자에게 : 강한 형제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영접하셨습니다(3절).

   그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하나님앞에 책임이 있습니다(4절).

   그대는 그의 태도 때문에 그가 죄 가운데 빠지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빠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3) 강한 자와 약한 자에게 : 도덕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각기 마음에 확증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시니 우리의 모든 행실은 그를 기쁘시게 할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5~9절)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 대 앞에 설 때,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직접 고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10~13절).


   다른 사람에게 거칠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13~15절).

   첫째,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둘째, 만약 우리가 어떤 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이는 우리의 잘못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우리의 참된 사랑을 보이지 않은 것이 됩니다. 셋째, 그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위하여 죽으신 자들을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들이 낙심하여 신앙생활에 발전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해야 될 것입니다(16~18절). 참으로 가치있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적인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다음과 같은 두가지 표본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행함이 화평을 이루고 있는가? 또 덕이 되는 일인가? (19~23). 만약 우리가 이 표본들을 좇는다면

   첫째, 다른 성도들의 생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거역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형제를 실족케 하거나 망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교만한 마음으로 우리의 자유함을 자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넷째, 우리의 양심이 정죄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하십시오(15:2~6). 구주께서도 자신을 기쁘시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발자취를 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받읍시다(7~13절).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를 다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약한 자와 강한 자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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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과  하나님 의 (2)

                                                           (4장1절~25절)


   복음은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사도바울은 이미 두 번이나 이 사실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이제 그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그는 율법 이전에 살았던 아브라함과 율법 이후에 살았던 다윗, 이 두사람을 예로 들어 증명하고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1~5절)


   1) 만약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 앞에서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2절).

   2) 구약 성경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창 15:6). 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3) 이와 같이 하나님은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4,5절).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시는 기본 원칙이 은혜라면, 믿음은 사람이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단입니다(4,5절 말씀을 암기하시기 바랍니다.


   2. 그러면 다윗의 경험 또한 아브라함의 경험과 일치합니다. (6~8절)

   1) 그렇습니다. 다윗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고,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2) 예를 들면, 다윗은 말하기를 "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라고 하였습니다.

   3) 또한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도 역시 사람의 노력은 암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8절).


   3. 그러나 구약 성경은 할례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9~12절)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그가 할례를 받기 전 이었습니다. 그가 후에 할례를 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미 받은 의에 대한 외적인 표 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모든 참된 신자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4.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과 조금이라도 관계하지 않습니까? (13~25절)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은혜로 되는 것이지,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1)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는 약속을 하셨음은, 율법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런 조건도 부가하지 않았습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어떤 행위에도 의존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하나님 편의 약속뿐이었습니다(13절).


   2) 만약 약속이 율법을 지키는 것에 의존되었다면,

   첫째, 믿음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둘째, 약속은 실효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14절)


   30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을 정죄하는 것입니다(15절).


   4)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야 된다고 선언하셨습니다(16절).

   첫째, 이것이 영생의 약속이 틀림없음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약 선한 행위가 그 필수 선행조건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만족 하리 만큼 행하였거나 또 행한 그것이 바른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 이것이 영생의 약속이 만민에게 틀림없음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약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면, 그 조건을 이행할 수 없는 사람이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어떤 개인적인 공로를 쌓지 않고서도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5. 아브라함이 의롭게 여기심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증명합니다.(17~22절)


   10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18절).


   2)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자신의 나이가 일백 세나 되었고, 그의 아내도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나 늙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3)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불가능한 일을 능히 행하실 수 있음을 알고, 담대히 그를 의지하였습니다.


   4)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22절)


   6.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으로 쓰여졌습니다. (23~25절)


   1) 아브라함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유일한 예는 아닙니다.

   2) 만약,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분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같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3)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려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그의 갈보리 사역을 만족해하신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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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과    하나님의 진노

                                                      (1장 18절~3장 20절)


   복음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가?


   간단히 말한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저버린 인류는 지옥의 선고를 받아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1.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버림 받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러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19절~32절의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19,20절).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해와 달과 별과 인체와 동물과 식물의 존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를 창조주로 깨닫고 자기를 경외하며,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여러 가지 형태의 축복을 주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ㄴ)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만물의 증거를 거부하였습니다(21,22절)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이것들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23절).


   ㄷ) 물론 이런 죽은 우상들은 사람을 감화시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참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새겨 만든 우상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24절). 이와 같이 사람들은 점점 불신앙의 흑암과 부도덕 속에 깊이 빠져서 마침내는 26절과 27절에 나타나 있는 성적 타락에 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은 29절~31절에 나타나 있는 무서운 죄로 가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이방인을 가리켜 버림받은 죄인이라고 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경우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2:1~3).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고 해서 정죄함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ㄱ) 유대인들은 이웃 이방인들을 비방하면서 자신들도 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1절).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즉시 벌하지 않는 까닭에,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3절).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4절), 그들은 계속 죄를 지으므로 심판 날에 임할 그들의 죄의 대가를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5절).


   ㄴ)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2절~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내함으로 계속 선하게 살면서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구한다면, 그는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7~10절). 그러나 이 말씀은 이와같은 방법으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3장 19절과 20절의 말씀은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만한 육체가 하나도 없음을 결론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ㄷ)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절대 공평할 것입니다(11절). 율법을 받은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12절),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옳고 그름을 말해 주는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4,15절)


   ㄹ)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여러 특권들을 자랑하였습니다(17~20절).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전했던 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1~23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24절). 그들은 할례와 같은 종교의식은 거기에 따르는 실제 생활이 없는 한,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25~29절).


   ㅁ) 유대인도 버림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뜻(3:1)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습니다(2절). 하나님은 그들을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한결같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묵과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3~8절).


   3. 그러면 결론은 무었일까요? 결국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3:9~23절)


   ㄱ) 구약 성경은 죄가 전 인류에게 감염된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10~12절).


   ㄴ) 또한 구약 성경은 죄가 사람의 몸 즉,목, 혀, 입술, 입, 발 그리고 눈, 기타 모든 부분에 다 감염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3~18절).


   ㄷ)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정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정죄하고 있습니다. 19절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유대인이 전 인류의 좋은 본보기가 됨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보기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죄인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본보기를 근거하여 전 인류를 죄인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율법은 전 인류의 유죄성을 노출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전혀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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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원리

                                                                           윌리암 맥도날드 저

 

              5장     그리스도인의 행실

                                            Christian Conduct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즐기는 것들을 따라해도 좋을까요? 그리스도인이 금해야 되는 일들은 무엇일까요? 술자리나, 춤 그리고 영화는 좋은 것일까요? 성경이 우리에게 하지 말아야할 일을 말해 주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에, 본 장에서는 어떤 행위가 옳고 그른가를 결정할 때 유용한 열 두 가지 질문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1) 당신이 지금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주님이 금하셨다고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 분명해질 때까지 그일을 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분께서 그것을 금하셨다는 것을 발견 했다면, 마치 죽을병을 피하듯이 그것을 멀리 하십시오(살전 5:22).

 

   2) 그 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만한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하는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시거나 찬양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을 보면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 일에 관여하기 전에 그 일에 대해 정직한 마음으로 그 일에 대해 하나님의 복을 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하는 그 일로 인해 그 분이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3) 그 일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닌가? 주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기도하실 때, 자기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7: 14~16). 그분은 비록 세상가운데 사셨지만, 하나님을 거절한 세상에 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그분의 말씀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는 매우 달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일이 세상이 하는 일이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다른 것이라면,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이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요일 2:15~17).

 

   4) 주 예수님이라면 당신에게 불분명한 그일을 과연 하셨겠는가? 주님은, 우리가 따라야 할 본으로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벧전 2:21).     

 

   5)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 일을 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신다면 어떻겠는가? 만약 주님께서 갑자기 오실 때 부끄러운 일이라면, 그런일은 하지도 말고 그런 곳은 가지도 말고 그런 말을 하지도 마십시오(요일 2:28).

 

   6)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당신 속에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해도 여전히 그 일을 하기 원하는가? 당신의몸은 당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성전이며, 당신은 그분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 것이 아닙니다. 즉 당신의 몸은 당신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고전 6:19). 에베소서 4:30을 읽어보십시오. 주님은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당신을 구속하셨습니다(벧전 1:18~19).

 

   7)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가? 세상 임금의 자녀나, 지도자의 자녀가 어떤 옳지 않은 일을 한다면 그 아버지의 이름이 수치를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잘못을 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부끄러움을 끼칠 것입니다(롬 2:24, 골 1:10).

 

   8)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행동을 보면서, "그리스도인과 세상사람 사이에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겠는가? (고후 5:17). 새 신자들이 당신을 따라 하지는 않을까요? 어쩌면 당신이 한 일 보다 더 심한일을 해서 죄에 빠지지는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죄에 빠지게 할 어떤 것도 그 앞에 놓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롬 14:13).

 

   9) 당신이 하고자 하는 그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는가? 만일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그것을 하지 마십시오.

 

   10) 그 시간을 좀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엡 5:16). 이것은 우리의 시간을 최선의 것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차선의 일은 우리로 하여금 최선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11) 만약 돈이 쓰여 진다면, 그 돈을 좀더 나은 일에 사용할 수 있는가? 우리는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을 위해 우리의 돈을 사용해야 합니다(눅 16:11).

 

   12) 마지막으로, 그것은 중요한 것인가? (히 12:1)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받은 날부터 하늘에 도달하기까지 진행되는 경주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이 경주에서 정말로 이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쓸데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데 방해되는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주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롬 6:14~15).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멀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을 기쁘시게 할 만한 삶을 살기 원하는 것입니다(고후 5:14~15). 하나님은 "만일 네가 죄악 된 쾌락을 멀리하면 너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니 이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엡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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