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 성
F. 스마아트 & J. 영
제 2 과
여성의 범죄와 그 결과(창세기 3장)
창세기 3장을 공부하기에 앞서 2장 16,17절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이것은 해도 좋지만, 저것은 해서는 안된다' 하신 하나님의 분부가 아주 분명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불순종에 대한 형벌을 경고하셨습니다. 도덕적 존재로서 창조된 최초의 인간은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선택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할 수도 있었고, 불순종하며 제멋대로 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최초의 남녀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처로 주셨던 아름답고 풍요로운 동산에서, 얼마 동안이나 평화스럽고도 의좋게 살았는지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평화는 깨어졌고, 대신 비극이 찾아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자 때문이었습니다.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던 금단의 과실 나무 가까이에 있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 과실을 따먹으면 어떻게 될까를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서성 거렸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랬다면 유혹하는 자에게 있어서 이는 안성 맞춤의 기회였으며, 이러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사단이 이를 놓칠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혹에서 가능한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며, 죄의 유혹을 받을 만한 일에는 섣불리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 혹
뱀은 교활한 질문과 거짓말로, 여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모두 의심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손대지 못하도록 금하신 것이 있지 않느냐? 왜 그러셨는지 아느냐? 네가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불행이 닥쳐오겠니! 하나님께서는 다만 네가 하나님처럼 위대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실 뿐이야! 이 과실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래! 보라구, 보기에도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만 먹으면 넌 지혜롭게 될거야!'
이처럼 뱀은 욕심과 교만에 호소하며 하와에게 접근해 왔습니다.
죄
하와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하와가 뱀의 그 모든 제의에 대해 잠깐만 깊이 생각해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거늘 어찌 감히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할 권리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젖혀놓고 사단의 말을 믿는 그 순간에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 고 말씀하셨지만, 뱀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보다 다른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하나님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와는 마침내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자비를 외면했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채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남편까지도 이 일에 끌어들였습니다.
한편 주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던 때의 사단의 접근 방법이 하와가 당했던 경우와 너무나 유사했음을 유의해 보십시오(마 4:1~10). 사단은 세 차례나 주님을 시험하면서, 하나님께서 주님께 주시지 않았던 권세와 명예와 재물을 주님 스스로 취하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 번 모두 하나님의 말씀만을 인용하고 의롸하심으로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과 어떠한 논쟁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데에도 이와 똑같은 수법을 사용합니다. 세상에 반짝이는 것들을 우리 앞에 흔들어서 우리로 그런 것에 욕심을 내도록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 육신의 정욕과(하와에게는 그 과실이 먹음직스러워 보였습니다.) 안목의 정욕과(하와에게는 그 과실이 보암직스러워 보였습니다.) 이생의 자랑이니(하와에게는 그 과실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16)고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이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생깁니다.
결론적으로 하와는 하나님께 범죄했을 뿐 아니라, 아담을 무시하고 행동함으로써 아담에게도 범죄하였습니다. 이렇듯 하와는 아담이 행사하게 되어 있는 지도권을 남용함으로써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본분에서 이탈하게 되면, 우리는 무질서와 근심외에 다른 아무것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범죄의 결과
하와의 범죄는 즉각적으로, 이전에 가졌던 순수한 상태가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대치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죄로 인한 최초의 증세는 부부 관계에서 나타났습니다(창 3:7). 곧 이 죄는 창세기 2장 23~25절에 나타난 부부 일체의 원리를 파괴한 것입니다.
뱀이 그들에게 선악을 알게 되리라고 꾀었던 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선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이를 실천할 힘은 없었으며, 그들이 악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이를 물리칠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궁극적인 결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죽음이었습니다.
이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즉시로 이들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영적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둘째, 세월이 지난 후에 그들은 육체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될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곧 영원한 죽음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높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으나(창 3:5), 도리어 죽음과 더불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는 이와 대조적인 사실을 보게 됩니다. 주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공부하시는 여러분도 하나님의 강하신 손 아래 스스로 겸손하십시오. 때가 되면 그가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벧전 5:6).
이렇듯 죄가 들어오게 되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행복한 관계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들 최초의 남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피해 숨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후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은혜로 도우시며, 축복해 주시려고 우리 인간들을 찾고 계십니다.
범죄로 인한 형벌
하나님께서는 이 범죄 사건에 관련하여 세 가지 대상들 즉, 뱀과 남자와 여자를 각각 다루시되, 뱀과 땅은 저주하셨지만(창 3:14,'17) 남자와 여자를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옛 뱀(계 12:9)이라고 불리우는 타락한 사단의 상징으로서, 뱀을 보다 하등한 돔물로 격하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최후 운명에 대해서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 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창 3:15).
또한 남자에게 내리신 형벌은 그가 평생토록 가장 보람을 가지고 해야 할 근로가 이제는 고통과 수고와 피로를 수반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그의 몸이 흙에서 지음을 받았던 대로 흙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형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내리신 형벌은 근본적으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본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창 3:16). 즉, 여성으로서의 특유하고도 축복된 기능, 곧 어머니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데에 고통과 슬픔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예로부터 여성들은 언제나 자녀를 갖고자 하는 강한 갈망이 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그의 소원을 성취할 수는 있었지만, 그 때마다 죄로 인해 당하게 되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슬픔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가 와서, 이제는 남편의 권위에 복종하며, 다스림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죄를 지을 때에는 하와가 지도자였고 아담이 하와를 따랐으나, 이제는 하와가 아담에게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창조의 질서에 있어서 아담에게 지도적 권위가 부여되어 있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와가 아담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타락한 이래로 결혼에 대한 갈망, 그리고 결혼에 의한 종속이 여성 대부분의 숙명처럼 되어왔습니다. 여성사, 특히 비 기독교 국가에서의 여성사는 굴종과 멸시, 천대의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들어와서 남성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킴으로, 이러한 굴종과 멸시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러한 형벌의 선언 가운데 16절에서의 고통, 수고라는 낱말과 17절에서의 수고라는 낱말은 한가지로 정신적이고도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형벌이 내려졌다는 점에 있어서는 남녀간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즉 피로와 고통을 견디면서 처절하리 만큼 수고하는 것이 남녀 모두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가 비취어오고 있는가를 유의해 보십시오. 비록 여자가 먼저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구속 사업의 일익을 담당하는 영예를 안겨 주셨습니다. 여인의 후손, 곧 사단의 희생 제물이 되었던 하와의 씨가 바로 그 사단을 멸망시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창 3:15). 우리는 이 약속의 성취를 히브리서 2장 14절의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셨다는 말씀에서 보게 됩니다.
현대 여성의 지위
죄악이 가득한 인간 본성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는 타락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권위가 확립되고 유지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남자가 가정의 머리가 되어, 그 가정의 안녕과 질서에 대한 권위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리는 궁극적으로 결혼 생활과 사회 생활 전반에 걸쳐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해보겠다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에 유의해서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믿는 아내에게 이러한 여성의 지위에 대해 더 상세하게 교훈해 주십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상세히 상고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기에서 지적하려는 것은 이것이 영구적인 원칙으로서 복종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의 축복을 위해서 그렇게 계획하셨다는 점입니다.
여성 중에 몇 사람이나 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전 가족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완전히 책임을 지겠노라고 결단을 내리고 그 길을 선택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시 103:14)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성으로 하여금 조력하도록 계획하셨고, 조력하는데 알맞게 하셨을 뿐, 한 가정의 가장으로 계획하셨거나 세우시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관한 한, 창세기 첫머리에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정상적인 일입니다. 폐일언하고, 여자를 창조하신 순서에서 보나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여자의 본분은 남자를 '돕는 배필' 로서의 역할, 곧 후원적이고 보조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엘리사벳 엘리오트(Elisabeth Elliot)는 "나는 모든 남성이 아주 강인하고, 지성적이고, 유능하고, 덕망이 있고, 거룩해서 남성 우위가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남성 우위란 그들의 훌륭함과 무관한 천부적인 지위임을 알고 있다" 고 술회했습니다.
아직도 복종의 개념이 좀체로 깨달아지지 않으십니까? 복종하라신 하나님의 명령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명령을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일상 생활에서 평안을 누리며 사는 비결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번뇌가 그치기까지
주님의 평온을
새벽 이슬처럼 내려 주소서 !
우리의 심령에서
긴장과 초조를 제하여 주소서 !
그래서
우리의 단정한 생활로
아름다움을 나타내게 하소서 !
J. G. Whitt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