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다리’ 세진 엄마 “장애아 키우며 ‘나쁜 엄마’ 돼야 했다”
윤화미(hwamie@naver.com) l 등록일:2015-04-24 15:20:47 l 수정일:2015-04-28 08:56:19  

 

‘로봇다리 세진이’ 엄마로 잘 알려진 양정숙 씨(47). 두 다리와 오른손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를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입양해 어엿한 국가대표 선수로 키워낸 그가 가슴 속 깊이 묻어뒀던 이야기를 꺼냈다.
 
 ▲로봇다리 수영선수 김세진 군을 키워낸 엄마 양정숙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저자 강연회에 세진이와 함께 참석했다.ⓒ뉴스미션

“대리운전, 세차, 도우미…안 해본 일 없죠”
 
“자식은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거죠. 그저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강연을 들은 한 청중이 ‘보통 사람이면 할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있는 걸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장애인의 날’이었던 20일 광화문 ‘배움’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책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강연이 열렸다. 강연은 그가 가진 특유의 유쾌함과 위트 있는 입담으로 즐거웠다. 하지만 억척스러운 모습 뒤에 감춰진 깊은 아픔은 청중들의 눈물을 훔치게도 했다.
 
‘로봇다리 세진 엄마’로 통하는 그녀. 방송을 통해 이름이 많이 알려진 지금도 그는 세진이를 따라다니며 하루 9시간 이상씩 운전을 하고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한다.
 
세진이를 키우려 대리운전, 자동차 세차, 간병인, 도우미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뛰어다닌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아마 아이들 없이 혼자였다면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참 신기한 일은 두 아이 굶기지 않고 필요한 만큼은 언제나 내 손으로 벌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인간의 삶이란 참 질긴 것입니다. 갈 곳이 보이지 않고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어떻게든 살아집니다. 제비 새끼마냥 입 벌리고 있는 자식이 있기 때문일까요. 내 인생을 버텨 준 기둥은 나의 아이들입니다.”
 
“좋은 엄마 노릇 하기엔 세진이 갈 길이 멀었습니다”
 
장애인 시설 자원봉사를 갔다가 운명처럼 만난 아이 세진이. 중증 장애 남자아이를 입양하니 주위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가슴으로 낳는다’는 말처럼 세진이가 그녀의 온전한 아이가 되기까지는 1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두 다리가 없어 서지도, 걷지도 못했던 아이에게 엄마는 마냥 좋은 엄마일 수 없었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엄마’는 아닙니다. 무섭고 엄할 때가 더 많은 호랑이 엄마였습니다. 오냐 오냐, 뜻 받들어 주며 맘 좋은 엄마 노릇만 하기에는 세진이의 갈 길이 너무 멀고 험했습니다.”
 
일어서고, 걷고, 또 넘어지기까지 눈물을 쏙 빼가며 수없이 다그치고 혼을 냈다. 아이를 학대한다며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결국 세진이는 모진 훈련 끝에 의족을 끼고 일반인들도 힘들다는 10킬로미터 마라톤을 완주하기까지 이른다.
 
“한 번 성취감을 느낀 아이는 달라집니다. 걷고 등산하고 마라톤을 하면서 세진이는 점점 달라졌습니다. 목표를 성취했을 때의 짜릿한 희열과 보람을 느껴 본 뒤에는 일상의 다른 면면들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진이가 뼈를 깎는 노력으로 걷기를 하는 동안 정숙 씨는 항상 잊지 않은 게 있다고 했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다고 아이도 쉽게 할 거란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
 
세진이가 의족을 하고 걷기를 시작할 때 그녀 역시 다리에 깁스를 해놓고 걷기도 하고, 타이어를 허리에 매고 산에 오르기도 했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도 찼다. 아이가 기어다닐 무렵에는 온 가족이 무릎으로 기면서 눈높이를 맞췄다. 세진이가 엄마를 진정을 믿고 따를 수 있었던 힘이 여기에서 나온 것 같았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편견 어린 세상의 시선을 맞딱뜨리는 일이었다.ⓒ뉴스미션

“징그럽다”…잔인한 시선들에 싸움닭이 되다
 
국제대회 수상, 일반인 수영 마라톤을 완주하며 지금은 ‘로봇다리 수영선수’로 유명해진 세진이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두 사람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매우 잔인했다.
 
‘징그럽다’, ‘전염된다’, ‘수준 떨어진다’며 수영장에서 쫓겨나기도 여러 번, 아들의 수영 강습을 위해 세진 엄마는 수영장 청소까지 도맡아야 했다.
 
“어떻게든 수영 한 번 시켜보려고 죄인처럼 ‘네, 네……’ 하며 화도 못내고 웃고 있는데 그럴수록 세진이는 옆에서 더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어떤 여자가 빨리 안 나간다며 던진 수영 모자가 내 뺨에 철썩 맞았는데 손바닥으로 맞은 것 마냥 매웠습니다. 결국 그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어요.”
 
한 번은 세진이 누나인 은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세 사람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옆 테이블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부모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자리를 잘못 잡았네. 좋은 날 이게 무슨 일이야” 말하며 지배인을 불러 “우리 애가 자꾸 우네요, 저기 저 애가 무섭다고. 자리 좀 바꿔주세요” 하고 요구했다.
 
세진이를 키우며 때때로 엄마는 싸움닭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가 무작정 공격을 해대는 싸움닭은 아니다.
 
그녀는 세진이를 자신에 목에 얹어 목마를 태우고 무릎으로 기어서 식당을 가로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어린 세진이는 마냥 신이 났다. 지배인이 기겁을 하고 뛰어와선 말렸고 옆 테이블 부모도 깜짝 놀라 멍하니 이들을 쳐다봤다.
 
“내 자식이 다리가 없어서 식사도 다 못하고 쫓겨나는데, 어미가 어찌 달린 발이라고 두 발로 걸어서 나가겠습니까.”
 
그녀는 그 뒤로 다시는 그 부모들이 다른 장애인 앞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무척이나 통쾌했다고 회고했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싸우는 방법은 그들을 바로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누구든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자주 가야 했던 한 기관은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그때마다 늘 휠체어를 들어올려야 했던 경비원은 “또 왔네. 꼭 내가 당직일 때 오더라. 아이구 내가 이 나이에 병신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다니” 하며 짜증을 냈다.
 
정숙 씨는 묘안을 떠올렸다. 그 기관의 장에게 편지를 썼다.
 
“저희 같은 장애인을 볼 때마다 너무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는 경비원이 있습니다. 늘 웃어주시고 휠체어도 다 들어 옮겨주십니다. 그 분을 친절 사원으로 추천합니다. 포상 제도가 있다면 꼭 상을 주세요.”
 
결국 경비원은 친절 직원으로 표창을 받았다. 정숙 씨와 세진이는 함께 가서 꽃다발을 주고 ‘그동안 감사 드렸다’며 인사를 했다.
 
“그 분은 많이 당황한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세진이만 보면 반색을 하며 뛰쳐나와 도와 주십니다. 들리는 말로는 그 후로 장애인은 물론 노인이 우산만 짚고 가도 뛰어나온다고 합니다.”
 
“약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다 보면 내게 싸움을 거는 사람도 있고 싸워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식에 관한 일이라면 난 기꺼이 싸움닭이 됩니다. 하지만 세상과 싸우는 것보다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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