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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면서 살고 싶어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짜릿한 상상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일수록 더욱 가슴을 뛰게 한다.

짐이 그랬다.

미국인인 그가 스페인 땅을 처음 밟은 건 스물다섯 살 때였다.

마드리드는 그의 고향 캘리포니아와 다른 별세계였다.

스페인사람들은 점심식사를 오랫동안 즐기고 시에스타라는 낮잠을 잤다.

저녁을 먹고는 매일 음악과 함께 춤을 추었다.

일과 성공, 돈이나 명예보다 문화와 삶을 즐기는 스페인이 짐에게는 천국 같았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드리드에 눌러앉았다.

 

짐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얼마 전 마드리드를 방문했을 때 숙소에서 만난 이가 가까운 곳에 괜찮은 재즈 바가 있으니 가보라고 했다.

짐은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트럼본과 색소폰을 불었고, 그가 이끄는 밴드 '까날 스뜨리뜨' 연주자들도 각각 기타와 피아노, 드럼 등을 열심히 연주했다.

모두 칠십 전후의 악사였지만 정말 멋진 음악을 들려주었다.

나는 단박에 반해서 새벽까지 연주를 들었고, 마드리드에 머무는 동안 매일 그곳에 들렀다.

 

어느 날 악기를 정리하는 짐을 보고 짧은 스페인어로 칭찬하려고 더듬댔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영어할 줄 알면 영어로 말해요. 난 미국인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트럼본을 불었다는 그는 미 공군 군악대에 입대했다.

스페인에 몇 주 동안 파견 근무차 왔단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열정적인 마드리드와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다 때려치우고 여기서 살 수 없을까?'라는 상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 짐은 마드리드 대학 콘서트 장을 찾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밴드 음악이 좀 이상했다.

사회자가 트럼본 연주자가 못 나와서 하모니가 안 나와 미안하다고 설명했다.

무슨 용기였을까?

짐은 트럼본을 들고 무대로 걸어나갔다.

그들은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난생 처음 만난 다섯 젊은이.

단 한 번의 리허설도 없는 합주였지만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도대체 이 자연스러운 의기투합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짐은 예감했다.

"나 여기서 살게 될지도 몰라..."

예감은 현실대로 됐다.

그날 운명처럼 만난 젊은이들이 43년 동안 같은 무대에 서고 있으니... 

 

 

 

'왜 저런 훌륭한 실력으로 이 작은 카페에서 연주할까?'라고 망설이다가 묻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까날 스뜨리뜨'는 스페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유명한 재즈 밴드란다.

큰 무대에도 많이 서봤고, 국가 행사에도 많이 불려갔지만 관객과 소통하며 즉흥적인 연주를 할 수 있는 이런 작은 무대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솔직히 큰 무대는 엄숙하잖아요. 재즈 카페에서 연주하면 중간에 술도 한잔하고, 관객과 농담도 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짐이 스페인에 눌러앉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이다.

평생 노래하고 춤추며 좋은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웃고 싶어서란다.

 

우리는 인생의 고민을 사서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갑자기 다른 나라에 가서 트럼본을 불며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 어깨에 힘 좀 빼고 좀 더 즐기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글 : 방송작가 김수정 님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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