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석 엘스비어 회장 '한국 청년들을 위한 재단 준비하는 세계 출판계 거목'

                                        
한해 매출 3조8000억원을 올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사 엘스비어를 이끄는 지영석 회장. 그가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다. 젊은이들의 멘토로 꼽히는 지 회장이 한국 젊은이에게 전해 줄 희망의 메시지가 궁금하다.

세계 출판업계 거물로 통하는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은 1년에 184회나 비행기를 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 회장은 요즘 한국에 재단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로 더욱 분주해졌다.


의사의 입에서 ‘뇌종양’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한창 나이의 20대 청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가 살고 있던 미국 뉴저지 주의 병원보다 더 큰 종합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뉴욕의 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프린스턴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한국인 유학생이 한순간에 병실에 누워있는 신세가 됐다. 우수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녔고, 매년 2~3명에 불과한 3년 조기 졸업자로 꼽힐 가능성이 높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신체적 아픔보다도 그를 힘들게 한 것은 학업을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학업에 뒤쳐지면 장학금은 물론, 조기 졸업도 물 건너가게 된다. “원래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그 전공으로는 조기졸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3년 조기졸업이 가능한 계량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고 말할 정도로 조기졸업은 그의 큰 목표였다.

아무런 희망없이 병원에 누워있던 청년을 일으킨 것은 그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매일 한 명씩 병원에 찾아왔다. 병원에 오는 친구들은 교수의 강의가 녹음된 테이프와 필기 노트를 가지고 왔다. 학과 동기들은 그가 병원에 있던 4주 동안 이런 일을 반복했다. 다행히 뇌종양은 악성이 아닌 양성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하지 않고 치료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사로 꼽히는 엘스비어(ELSEVIER)의 동양인 최초 회장 지영석(55) 씨가 그동안 가슴에 꽁꽁 숨겨둔 이야기다. 고마웠던 친구들의 모습을 기억할 때는 말 대신 조용히 눈물을 보였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 지 회장은 “매일 1시간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차를 몰고 친구들이 왔다. 현재의 나는 그 친구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회상했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2010년 포브스아시아가 ‘가장 성공한 재미동포 25인(List of The 25 Most Prominent Korean-Americans)’ 중 한 명으로 꼽은 지 회장의 인생 스토리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그는 성공이나 돈 등의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 지 회장은 ‘사람’ ‘좋은 세상’ 등을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에 4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지 회장을 멘토로 삼고 조언을 구하고 있다.

2014년 CNN이 ‘세상을 바꿀 10대 스타트업’으로 꼽은 피스컬노트 팀 황 대표도 그런 젊은이 중의 한 명이다. “지 회장은 다음 세대에 헌신적인 분이다. 수조원의 매출을 내는 기업가인데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투자한다”고 팀 황 대표는 지 회장을 설명했다. 지 회장은 피스컬노트의 고문을 맡아서 팀 황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 비행기를 탄 횟수만 무려 184회, 그가 방문한 나라만 35개국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부터 일반 대학생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지 회장의 스마트폰에 빈틈없이 기록되어 있는 스케줄을 보면 기가 질릴 정도다. 그만큼 바쁘게 사는 사람이지만, 지난 12월 초 중앙일보·산업통상자원부·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공동 주최한 테크플러스에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을 때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 왔을 때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인터뷰는 아침 이른 시간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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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스비어 연간 매출 3조8000억원

지 회장을 세계 출판계 거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엘스비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된 4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학술 전문 출판사다.

한해 3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전 세계 24개 국가에 지사를 가지고 있다. 7000여 명의 저널 편집자와 7만여 명의 편집위원 등이 한해 2000여 종류의 학술 저널과 1만9000여 권의 단행본을 출판하고 있다.

엘스비어코리아 관계자는 “전문 저널의 25% 정도가 엘스비어에서 나온다. 엘스비어가 세계 전문 서적 출판계를 좌지우지한다고 말해도 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1996년부터는 전자 저널 서비스를 시작해 출판계 흐름을 선도하는 출판사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 회장은 “엘스비어 정도의 출판사는 업계의 스탠다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화학 데이터베이스 ‘Reaxys’, 세계 최대 규모의 논문 초록·인용 데이터베이스 ‘Scopus’, 세계 최대 온라인 원문 데이터베이스 ‘ScienceDirect’ 등의 솔루션을 엘스비어가 내놓은 이유다. 전통과 규모가 있는 엘스비어 회장에 처음으로 동양인이 선임된 것은 세계 출판계의 화제가 됐다.

1996년 잉그람 북 그룹을 시작으로 랜덤하우스 최고운영책임자(2001년) 등을 거쳐 엘스비어 회장(2009년)까지 지 회장은 세계 출판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 출판계에서도 낯익은 인물이다. 랜덤하우스 중앙을 설립해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려 업계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국제출판협회 최초의 동양인 회장, 엘스비어 최초의 동양인 회장 등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지금은 출판업계의 유명인이지만, 사회생활의 첫 번째 도전은 금융업에서 시작했다. 전공을 살린 선택이다. 첫 직장은 아멕스라고 불리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은행이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회장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저의 멘토(브론손 잉그람 회장)는 항상 돈 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으라고 이야기했다. 아멕스를 택한 것도 당시 회장이 배울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년 동안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했고, 이후 6년 동안 멕시코·프랑스·싱가포르 등에서 일했다. 27살의 나이에 전무가 돼서 개인금융을 총괄했다. 아멕스 역사상 20대 나이에 임원이 된 사례는 처음이었다. 사람을 통해 배우러 간 곳에서 능력까지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1992년 그는 탄탄대로가 약속된 아멕스를 과감하게 떠났다. 잉그람 마이크로(Ingram Micro)라는 IT 유통 기업에 ‘견습사원’으로 들어갔다. 연봉은 아멕스에서 받던 연봉의 17%였다.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이라고 했을만한 선택이다.

이유가 있었다. “내 인생의 멘토인 브론손 잉그람 회장이 나를 불렀다. 일을 배우려면 밑바닥부터 해야 한다고 해서 견습사원으로 입사했다”며 웃었다.

엘스비어 최초의 동양인 회장

2015년 12월 초 중앙일보 등이 주최한 테크플러스 연사로 나선 지영석 회장은 엘스비어가 어떻게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지를 설명했다.


잉그람그룹 창업자 브론손 잉그람 회장은 미국 남부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다. 포브스가 미국의 50대 부자에 선정할 정도였다. 잉그람 회장은 지 회장의 프린스턴대학의 단짝 친구인 존 잉그람의 아버지다. 우연한 기회에 집에 초대를 받으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다. 남부 출신인데도 인종차별을 싫어해서 나를 4번째 아들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면서 백인들의 사교 모임에 데리고 다니셨다. 온몸으로 사회의 차별을 거부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준 분이다”라고 설명했다.

1996년 계열사인 잉그람 북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고, 출판업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세계 최초로 주문형 출판 시스템을 갖춘 ‘라이트닝 소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일찍부터 출판업계에 테크놀로지를 도입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 “주문형 출판 시스템으로 친구인 아마존 창업가 제프 베조스 CEO에게 도움을 많이 줬다”며 웃었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돈이 아닌 사람이었다. 돈을 찾아 일을 택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였다. 지 회장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피하지 않는다.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데 영향을 주고 싶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에 400여 명의 젊은이들의 멘토가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 회장이 말하는 좋은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
오늘이 행복한 사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사회인 것 같다.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젊은이들을 키워내는 것이 나의 역할일 것이다.”

오늘이 행복한 사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사회인 것 같다.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젊은이들을 키워내는 것이 나의 역할일 것이다.”


요즘 지 회장은 한국을 자주 방문한다. “한 달에 한 번은 한국에 온다”고 말했다. 교육부 산하 미래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조차 잘 모르는 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한국에 오고, 일이 끝나면 바로 출국을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귀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을 맡은 것은 “한국의 미래가 좋은 교육에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공한 기업가이자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한국 방문의 이유가 됐던 위원회 활동은 곧 끝난다. 지 회장의 고민은 한국에서의 활동을 어떻게 이어나가는 것이냐다. 지 회장이 찾은 해답은 ‘재단 설립’이다. 사재를 털어서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하는 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다. “내년이면 재단이 가시화될 것 같다.”

2014년에는 KBS에서 방송된 지영석 회장을 주인공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글로벌 리더의 선택’를 보고 연락을 해온 한국 젊은이들을 모아 ‘좋은 씨앗’이라는 멘토 그룹을 만들었다. 20대 젊은이와 중고생이 팀을 이루는 그룹으로 얼마 전 1년 활동을 정리했다고 한다.

카이스트와 부산에서도 지 회장에게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멘토 그룹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2017년까지 15개, 2018년까지 100개의 멘토 그룹을 한국에 만들고 싶다. 그렇게 되면 한국 사회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혹시 정치에 뛰어들 계획도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시민사회운동을 하면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며 웃었다.

지 회장의 아버지는 세네갈과 핀란드에서 대사관을 지낸 지성구 전 대사다. 지 회장의 형은 삼성전자 지영조 부사장이다. 지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해외를 돌아다니다 보니 한국어를 포함해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한국 사회에서 살았다면 편안한 혜택을 누리면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 회장은 인종차별이 있는 미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실력으로 뿌리를 내렸다.

지 회장의 행보가 더욱 놀라운 것은 성공의 열매를 혼자서 즐기지 않는 것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과 성공의 열매를 나누고 있다. 세계 젊은이들이 지 회장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출처: 중앙일보]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 '한국 청년들을 위한 재단 준비하는 세계 출판계 거목'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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