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박윤정의 웰컴 투 뉴질랜드] 원시 대자연 온전히 품었던 가슴벅찬 여정

밀퍼드 트레킹의 넷째 날, 마이터 픽 산장까지

세계일보 | 이귀전 | 입력 2016.12.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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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덜랜드 폭포의 아련한 울음을 뒤로하고 짙은 우림 속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맥캐이 폭포를 거쳐 에이다 호수로 이어지는 53.6㎞.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길을 걷는다. 때로는 산책같고 때론 거칠던 나흘간의 여정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퀸튼 산장을 나와 짙은 우림으로 들어서면서 서덜랜드 폭포와는 이별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원시의 숲에 다시 마음을 빼앗긴다.

밀퍼드 트랙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맥키넌 패스를 넘고 서덜랜드 폭포의 물줄기를 맞은 몸은 숙면을 취한다. 신선한 원시 밀림에서 뿜어 나온 공기가 치유제라도 되는 양 전날의 피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른 아침 몸을 일으켜 산장 밖을 나서니 서덜랜드 폭포에서 흘러내려 온 투명한 강이 퀸튼 산장 앞을 흐른다. 가벼운 걸음으로 강가에 다가가 산꼭대기 빙하에서 녹아내려 폭포를 타고 떨어져 흘러온 차가운 강물에 얼굴을 씻고 나니 정신 깊은 곳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다.

밀퍼드 트레킹 마지막 날인 넷째 날은 퀸튼 산장을 출발해 샌드플라이포인트까지 21㎞를 걸어야 한다. 거리는 가장 길지만 전체적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이어서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샌드플라이포인트에서 53.6㎞의 밀퍼드 트랙은 끝이 난다. 그곳에서 보트를 이용해 밀퍼드 사운드(해협)로 이동한다. 편한 코스라고 해도 보트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금은 서둘러야 한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도시락을 싼 다음 가벼운 마음으로 퀸튼 산장을 나와 숲 속으로 들어선다. 뒤에서 들려오는 서덜랜드 폭포의 물줄기 소리가 아련하게 발걸음을 붙잡는다. 간간이 돌아보면 하얀 절벽을 솟구쳐 오르는 용처럼, 순백의 빛줄기가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온다. 하늘로 이어진 폭포는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자꾸만 돌아보게 한다.
평탄한 길에는 1.6㎞마다 거리목이 서있다.

짙은 우림으로 들어서면서 서덜랜드 폭포와는 이별을 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원시의 숲에 다시 마음을 빼앗긴다. 평탄한 길에는 1.6㎞마다 거리목이 서 있다. 앞서 가던 외국인 가족은 거리목마다 그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는다. 독일에서 왔다는 젊은 부부는 어린 두 딸과 함께 가이드 트레킹이 아닌 일반 트레킹을 하고 있다. 10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딸이 거리목마다 사진을 찍었다며 자랑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와 함께 찍은 34장의 거리목 사진이 오래도록 소중한 보물이 될 것 같다.
아서 강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환상적인 풍경들. 배낭을 벗고 아서 강을 바라보며 잠시 땀을 식히며 여유를 가져본다.

독일인 가족을 지나쳐 다시 혼자만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길은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아서 계곡을 따라 에이다 호수를 향해 뻗어 있다. 숲을 벗어나 아서 강을 따라 걷다 보니 보트셰드(boatshed)라 불리는 조그만 오두막이 나타난다. 1928년에 지어진 보트셰드는 에이다 호수에서 짐을 옮기던 배를 넣어두던 창고였으나 지금은 트레커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먼저 도착한 가이드가 준비해둔 차를 내어준다. 배낭을 벗고 아서 계곡을 바라보며 잠시 땀을 식힌다.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맥캐이 폭포는 아담한 폭포이지만 초록색 이끼를 두른 바위 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춤추듯 미끄러지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이 정겹다.

보트셰드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흔들다리를 건너면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맥캐이 폭포가 맞아 준다. 아담한 폭포지만 초록색 이끼를 두른 바위 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춤추듯 미끄러지는 모습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이 정겹다. 폭포 바로 옆으로는 바위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는 벨(bell) 바위가 있다. 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바위는 마치 종 같이 매끄러운 모양이 인상적이다. 
아서 강의 하구로 내려가면 완만한 물줄기의 흐름이 모래톱을 만든다.

맥캐이 폭포를 지나 아서 강의 하구로 내려가면 완만한 물줄기의 흐름이 모래톱을 만들었다. 짙은 초록의 삼림과 대조되는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강줄기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강의 정취를 감상하며 걷다 보니 바위벽 옆으로 난 좁은 길이 나온다. 길을 내기 위해 바위벽을 깎아 만든 길이다. 장비가 충분치 않아 일일이 정과 망치로 쪼아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1898년 마지막 작업을 한 두 광부는 자신들의 작업을 기념하기 위해 바위에 흔적을 남겼다. 길이 끝나갈 즈음 ‘May 1898 Stenhouse and Mahon’이라고 바위에 쪼아 놓았다는 글귀가 흐릿하게 새겨져 있다.
호수의 정취에 흠뻑 빠져 걷다 보면 어느새 자이언트게이트 폭포에 도착한다.

길이 다시 평탄해지며 에이다 호수의 전경이 눈앞에 들어온다. 짙푸른 호수는 녹색의 절벽을 두른 채 멀리 보이는 밀퍼드 사운드의 고봉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호수의 정취에 흠뻑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자이언트게이트 폭포에 도착한다. 계곡을 건너는 흔들다리를 건너니 숲 사이를 빠져나온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린다. 폭포 옆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을 양손으로 떠 마신다. 차갑고 깨끗한 물이 들어가자 지친 몸에 청량감이 가득 퍼진다. 
짙푸른 호수는 녹색의 절벽을 두른 채 멀리 보이는 밀퍼드 사운드의 고봉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자이언트게이트 폭포부터 샌드플라이 포인트까지는 호수를 따라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1890년 45명의 죄수들을 동원해 만들었다고 한다. 길은 평탄하고 넓지만 길 곳곳에는 샌드플라이(sandfly)라는 불청객이 도사리고 있다. 샌드플라이는 흡혈 곤충이다. 파리 같은 모양을 해서 흡혈 파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모기와 달리 살갗을 물어 뜯어내고 고인 피를 빨아먹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특히 크기가 초파리만큼 작아도 한번 물리면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며 그 가려움이 한 달은 간다고 한다. 여러 마리가 몰려다니면 아차하는 순간 수십 군데를 물리기 십상이다.
샌드플라이포인트 앞 선착장에서 올라탄 보트는 청명한 바람을 맞으며 밀퍼드 사운드의 마이터 픽 산장으로 질주한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리는 습지에 주로 서식하는 샌드플라이는 뉴질랜드의 남섬 서부지역 밀퍼드 사운드를 비롯해 피오르 지역에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곤충이다. 다행히 한 군데도 물리지 않고 샌드플라이 포인트의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이미 도착해 있는 여행객들 몇 명은 가려움을 호소하며 가이드가 건넨 약을 바르고 있었다. 
산장에서의 저녁만찬과 대화. 트레킹을 마치고 완주증을 건네받는다.

샌드플라이 포인트 앞 선착장에는 밀퍼드 트랙의 끝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그 길의 끝에서 올라탄 보트는 청명한 바람을 맞으며 밀퍼드 사운드의 마이터 픽 산장으로 질주한다. 산장에서의 저녁만찬을 마치고 완주 증을 건네받는다. 그러나 종이 한 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오래도록 가슴 가득히 남는다. 돌아보면 힘든 구간도 있었지만 나들이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충분히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거리였다. 이렇게 밀퍼드에서의 마지막 밤은 저물어갔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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