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왕국, 교회와 그 영광(마태복음 15장-17장)-3

왕국에 대한 묘사(17장)

16장 마지막 부분에서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변화되신 사건으로 성취되

었습니다. 베드로는 후에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의 능력과 강림하심"(벧후 1:16-18)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임하실 미래 왕국의 영광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얻

을 수 있습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

로 임하는 것"(막 9 :1)이었으며, 누가는 단순히 그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

(눅 9 :27)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것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았

는데, 그 이유는 그의 복음서가 하나님의 독생자(요 1 :14)로서의 그리스도

의 본질적인(획득되어진 것이 아니라)영광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국에 대한 이러한 일면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현재의 교회와는 전

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온땅에 두루 미치게 될 그리스도의 미래적인

통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의 왕국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골 1 :13)이

며, 미래에는 보다 넓은 의미의 명칭인 인자(the Son of Man)의 나라로

불리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상"(vision, 9절, 한글 개역 성경에는 이

단어가 "본 것"이라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음_역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

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본 것이 비현실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려서

는 안됩니다. "이상"이라는 단어는 "그들이 본 것"(What they had seen)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주님의 변화되심(17 :1-8)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주님의 변화되신 모습을 목격하는 특권

을 누렸는데, 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능력, 영광 그리고 고난(마 5 :37 : 마

17 :1 ; 마 26 :37) 이 세 가지를 지켜보는 특권을 누린 것들 중의 하나였습니

다. 이들 세 사람은 주님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이

었습니다.

주님의 변화되신 모습은 주 예수님의 본질적이고 신적인 영광이 육체의

휘장을 통해 비추인 사건입니다. 주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이 빛 같

이 희어진 것은 주님께서 잠시나마 영화롭게 되신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영광 가운데 율법과 선지자를 상징하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더

불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태는 누가처럼 그들이 나눈 대화의 주제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성취하셔야만 할 그리스도의 죽음"이라고 우리에

게 말하고 있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마태가 주님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목

격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이 주님과 대화를 나누던 자들이모세와 엘리야임

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

지만 다가올 영광 안에서 성도들이 본래의 자기 자신의 모습과 개인적 특성

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성도들은 변화된 영광

의 육체를 입게 될 것이지만 그들 자신의 모습은 그대로 가지고 있을 것입

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주님께 드린 말씀이 적절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의 말

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에 대한 응답으로 빛난 구름과

함께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 대해 다시금 칭찬하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

왔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몇 년 뒤에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이 말씀을 인

용하면서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을 생략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

가 이 말씀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 말씀으로 인해 유익을

얻은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요(벧후 1 :17)? "빛난 구름"은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를 여행하는 동안 그들을 인도하던 여호와의 유형적인 임재

(臨在)였습니다(출 13 :21, 22 ; 33 :9 ; 왕상 8 :10).

주님의 변화되심은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영광으로 세상을 다스리실 천년

왕국에 대한 예시(豫示)였습니다(계 20 :4-6). 구약성경은 이사야, 에스겔

그리고 다니엘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 미래의 왕국 시대에 대한 많은 예

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처음 오셨을 때는 사람들로부

터 멸시와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는 그분은

모든 세상의 능력과 권세들을 폐하시고 모든 반대를 멸하실 것입니다. 그리

고나서 그분은 의와 평강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 나라의 수도는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며, 그곳으로부터 그분의 법이 온 세상에 반포될 것입니

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은 주님께 기꺼이 무릎을 끓고 주님을 기쁘게 섬

길 것입니다.

2. 엘리야의 임함에 대한 설명(17 :9-13)

변화산상에서의 이상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진 후, 모세와 엘리야는 영

광 가운데로 돌아갔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셨

습니다. 예수님께서 내려오신 그 길은 결국 십자가로 향한 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임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

은 자신들이 목격한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전에는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자기의 왕을 배척했으며, 그들에게는 더

이상 주님의 본체(16 :20)와 영광에 대한 빛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서기관들은 메시야가 임하시기 전에 엘리야가 임할 것에 대해 이야기했

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옳은 것이었으며, 주님께서도 이것을 확인시켜 주셨

습니다(11절). E.W. 로저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단락

은 예언의 해석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중요한 단서란 하나의

예언이 다른 예언 속에서 성취되는 두 가지 성취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침례 요한을 영접했다면, 이 예언은 침례 요한의

사역 속에서 성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엘리야의 심령을 가지고 온

선지자로서 엘리야의 임무를 감당한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스라

엘이 요한을 배척했기 때문에 엘리야에 관한 예언은 그 최종적인 성취를 남

겨두고 있는데, 그 최종적인 성취의 때에 엘리야 자신이 실제로 주님께서

그분 자신의 천년왕국을 시작하시기 전에 메시야에 앞서 나타날 것이다."

3. 귀신을 쫓아내심(17 :14-21)

하나님의 아드님은 지극히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임하셔서 구원

자로서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

력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음에도(10 :1) 불구하고 이 특별한 경우에 그러한 능

력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유"

(this kind)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귀신에 따라 그 악함과 악의에 있어서 차

이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시사하셨습니다. 더러운 영들 중에서 어떤 영은

잔인함과 사악함을 드러내며, 반면에 어떤 영은 한층 교묘하며 종교적인 형

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후자에 속한 영들은 실상 종교적인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딤전 4 :1).

주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자기 앞으로 데려오게 하셔서 귀신을 꾸짖

으셨을 때, 악한 영은 주님의 책망을 듣고 그 희생자로 하여금 마지막 경련

을 일으키게 한 다음 곧그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불신에 무릎을 꿇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강력한 힘을 가진 귀신은 오직 기도와 금식에 의해서만이 내쫓을 수 있었습

니다. 믿음과 기도 그리고 자기 부인은 무리를 대신하여 전능자로 하여금

능력을 행하실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입니다. 이러한 덕목을 갖춘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란 오늘날 너무도 어렵습니다.

4. 주님의 죽으심과 승리에 대한 예고(17 :22, 23)

인자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미래 왕국에 대해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그분은 자신이 배반당하실 것과 죽음, 그리고 부활

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반드시 고난을

통과하셔야만 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찼지만 그들의 슬

픔은 결국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으로 변할 것입니다.

5. 그리스도께서 권리를 포기하심(17 :24-27)

자신의 고향인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후 주님께서는 세를 받는 사람에

게서 성전의 의무를 지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이 성전 세

를 내지 않느냐는 책망이 담긴 질문을 받은 베드로는 세를 걷는 자에게 예

수님께서 세를 낼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틀림없이 베드로는 그런 대답이

주님께 대한 충성과 변호의 표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도 모

르는 사이에 그는 그리스도께 불명예를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빨

리 주님께서 변화되신 사건의 의미를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과 파도,

질병 그리고 귀신들도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분이 하

늘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예루살렘 성전이 내 "아버지

의 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않았던가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드님

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런 분에게 성전 세를 내야한다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주님의 이러한 영광을 곧 기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주님께서는 그가 오리라는 것을 예상하시고 그에

게 밖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에 대해 미리 알고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주

셨기 때문입니다. 이사건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의 전지(全

知)하심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상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세금을 받느냐고 질문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타인들로부터 관세를 받는다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는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대답의 분명한 의미는 그분은 어떠한 의무도 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에게 세를 요구하는 것은 그분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하지

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세를 지불하셨습니다. 다시 말

해서 주님과 베드로는 왕이신 자신의 나라에서 타인으로 생활하신 것입니

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세를 지불하셨습니까? 주님은 돈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시편 기자는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

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시 95 :5)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갈릴리 호수는 주님이 만드신 호수였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물고기들도

그분의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비록 육체라고 하는 휘장에 가려져 있었지만

여전히 모든 창조물의 주님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대로 호수로

가서 낚시를 던져 물고기를 잡았으며, 그 물고기의 입 안에는 정확히 한 세

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돈은 주님과 베드로를 위하여 세로 지불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와 너를 위하

여"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과 베드로가 다

르다는 것을 지적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연합된 자임을 지적하셨

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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