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식 밥상, 제철과일만으로 차린 차례상..달라진 명절 풍경

입력 2017.10.08. 17:06 수정 2017.10.08. 20:36 

[한겨레]

장희창 동의대학교 교수(독문과)는 지난 4일 추석 차례상에 떡과 물, 제철 과일 등을 올려놓고 차례를 지냈다. 장희창 교수 제공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사는 이아무개(60)씨네 집은 지난 추석 명절 음식을 뷔페식으로 차렸다. 식탁 위엔 음식을 덜어 먹을 접시와 요리 집게를 올려놨다. 식사 뒤 그릇과 수저 설거지도 각자 했다. 잡채 등 다양한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 음식은 가족들이 함께 요리했다.

이씨가 뷔페식으로 음식을 차리고, 가족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도록 한 것은 며느리를 위한 배려였다. 이씨는 “명절 때마다 고부 갈등이나 며느리 혹사 등 부정적인 기사를 많이 봐서 걱정도 되고 안타까웠다”며 “오랜만에 만난 며느리한테 설거지를 시키고 싶지 않았고, 가족들끼리 역할을 분담해 음식 만들어 나눠 먹는 재미도 있었다. 앞으로 명절 때마다 뷔페식으로 음식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명절 풍경이 바뀌고 있다. 시가에 먼저 들러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는가 하면, 주부들의 가사노동 부담을 줄이는 가정도 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김소현(36)씨는 시어머니의 제안으로 추석날 가까운 거리에 사는 친정에 먼저 들렀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김씨는 평소에도 친정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시어머니가 친정 우선 방문을 먼저 제안했다. “일하느라 바빠서 친정에도 자주 못 가고 친정 부모님도 보고 싶을 텐데, 추석날 먼저 가서 부모님을 만나 뵙고 천천히 오라”는 게 시어머니의 당부였다. 김씨는 결혼한 지 5년 만에 명절날 처음으로 친정에 먼저 들렀다. 김씨는 “부모님과 여동생뿐이라 명절마다 친정집이 썰렁했는데, 먼저 찾아뵈니 부모님이 좋아하셨다”며 “외가든 친가든 똑같은 부모님인데 무조건 시댁부터 챙겨야 하는 분위기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제철 과일로만 간소하게 차례상을 차린 집도 있었다. 장희창 동의대학교 교수는 지난 4일 추석 차례상에 찰떡과 물, 제철 과일 등을 올려놓고 차례를 지냈다. 장 교수는 “차례 형식을 무시할 수는 없고, 절에서 하는 차례상 형식이 있어 일부 참조했다”며 “가족들끼리 의논해 15년 전부터 간소하게 차리고 있다”고 말했다. 명절 음식도 친척들끼리 나눠 준비해 왔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노동 시간이 줄어 가족들끼리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할 시간이 늘었다. 장 교수는 “명절엔 즐겁게 만나야 하는데, 음식 만드는 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서로 힘들다. 차례상이 간소해져서 가족들끼리 즐겁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고 말했다.

최용호(79) 진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도 20여년 전부터 제철 과일과 떡 등으로 명절 차례상을 간소하게 준비했다. 이번 추석 차례상도 사과와 배, 떡 한 접시와 물 한 잔이 차례 음식의 전부였다. 최 이사장의 삼형제와 며느리들은 환영했다. 최 이사장은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면서 며느리들이 마음의 부담을 덜 느끼게 됐다”며 “명절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사라져 가족 모두가 기분 좋게 명절을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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