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된 가정]

                                                       (4)

                                                    -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존 그랜트


   주님께 얼마나 많이 드려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은 종종 마음을 깊이 살펴보아야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성경에는 산술적인 공식이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하여 얼마나 떼어 놓아야 하는지는 당신 스스로 결정하도록 맡겨졌습니다.

   당신은 단순한 공식이 이 문제를 풀어줄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당신의 마음을 철저히 살펴보는 것 없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식이 왜 소용없는지의 이유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헌금이란 하나님이 당신에게 내놓으신 요구사항일 것입니다. 그것은 매주 혹은 매달 지불해야 하는 청구서일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당신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지불로 간주될 것입니다.  헌금에 대한 그런 접근방식에 따라오는 위험성들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알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은 청구서에 대한 지불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원하여 드리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얼마나 드리기 원하는지를 당신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고,그런 후에 그것을 즐거움으로 드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청구서 대금을 내는 느낌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인한 자원하는 마음을 따라서 헌금을 드리십시오.

   얼마나 많이 드릴지를 셈해봄

   "하나님이 번영케 하신 대로" (흠정역, 고전 16:2), 한글 개역성경에는 "이를 얻은 대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주어진 조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번영케 하신 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은 드릴 수 있는 여유를 따라서 드리면 됩니다. 따라서 당신이 지기에 버거운 무거운 짐이 당신의 어깨에 지워지지 않습니다. 만일 헌금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그 헌금을 받는 이들 역시 지기 힘든 짐을 당신이 지기를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얼마나 많이 드릴지를 주님앞에서 결정하는 것은 마음의 중대한 작용임을 의미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마음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둘 중 한 명이 자신들이 너무 많이 드린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너무 적게 드린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아내와 자녀들의 필요는` 반드시 고려 되어야만 합니다. 헌금은 아주 많이 하는데 처자는 소홀히 취급되고 궁핍한 듯 보인다면, 그것은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올바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한 가지 근본적인 사항이 있는데 만약 이 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의 헌금은 바람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 곧 먼저 할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후 8:12). 헌금은 당신에게 부과된 세금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드리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주제에 접근하십시오.`

   가정경제

   가정경제에서 훈련을 받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각 가정은 마땅히 주님 앞에서 그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며, 우리에게는 이용 가능한 지침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오늘날 새로 결혼한 이들은 새 집을 사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들의 재정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무리를 하도록 커다란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새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사주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관심은 재정적인 압박으로 돌려져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자초하는 압박인데, 이것이 너무 커지면 당신의 결혼생활에 커다란 부담이 더해지며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맙니다. 이 중요한 결혼생활의 첫 살림살이 장면에서부터 주님을 첫 번째로 두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득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소득

   소득의 많은 부분은 꼳 써야 하는 생활비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소득이 증가할수록 당신의 생활수준도 그에 맞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용자금을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더 큰 차를 사고, 더 호화로운 휴가를 즐기는 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말입니다.
   이러한 지출의 증가는 종종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자라가면 더 큰 집이 필요할 수 있고, 휴가는 육체적인 유익뿐 아니라 영적인 면에도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당신에게 주신 모든 것을 지혜롭지 못하게 사용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 주변에는 세상이 성공의 외적인 장신구로 여기는 것을 소유한 자로 나타나라는 압력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이 세대의 영에 휩쓸리지 않도록 당신은 마땅히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질주의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물질적인 번영이 찾아올 때, 당신은 자신이 가진 것을 주님의 일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저 당신의 필요만을 고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즐기는 그 번영은 당신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듯이 우리를 번영케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자원들이  늘어날수록, 당신은 반드시 그것들을 자기 만족이 아닌 그분을 섬기는 데에 더욱 드려야 합니다.

   가진 것이 적을 때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2).
   많은 신자들은 생활이 곤궁한 시기를 겪으며, 그런 상황에서는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헌금을 중단하고 싶은 유혹이 늘 찾아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쪼들림 속에서조차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무언가를 드리려고 애쓸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에루살렘 성에 하나님께 연보하기를 열망하던 한 가난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쳐다보았습니다. 그것은 합해봐야 동전 두 개였습니다. 그것은 거의 가치가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그 모든 소유를 처분할 것을 생각했을 때 그녀는 틀림없이 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녀는 성전으로 가 이리도 적은 것을 연보궤에 넣어본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 뜰을 자주 드나드는 허다한 부자들은 그녀가 상상도 못할 금액을 드렸고, 어느 날 그들은 그녀가 일생에 한 번 가져보았으면 하고 소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연보궤에 넣을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아무리 적은 돈이지만 자신의 그 두 렙돈은 얼마간의 음식을 사는 데에 필요하다는 논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녀가 가진 전부가 동전 두 개뿐이기에 하나님은 그녀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실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이러한 점들은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내리려 하는 선택에 하늘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결정은 동전 두 개 중에서 하나가 아닌 둘 다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성전으로 갔습니다. 그 두 렙돈을 연보궤 속 값비싼 주화들 중에 넣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보여줄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러한 보잘 것 없는 드림을 알기나 하실까요?
   그녀가 연보궤에 다가갔을 때 주 예수께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잘 차려입은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 공공연히 과시하면서 그들의 헌금을 넣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궤에 가까이 가서 자신의 동전 두 개를 재빨리 넣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계심을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동전 두 개는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닐까요? 주님은, 그 날에 받으신 그 무엇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가치가 있다고 그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하늘의 환율

   "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3).
   주님은 그녀의 헌금을 이 세상의 화폐 가치를 따라서 평가하지 않으시고 하늘의 화폐 가치를 따라서 평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떤 화폐에 대해서, 그 가치를 다른 화폐의 가치로 확정하기 위해서는 환율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 동전 두 개를 하늘의 화폐로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의 환율을 적용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 환율은 어떻게 적용될까요? 주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의 헌신에 기초하여 그 값어치를 정하십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는 작은 것이 이 환율에 의해 가치가 늘어나 막대한 가치를 지니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소유 전부를 드림으로써 그녀의 헌신을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작은 것이 하늘에서는 대단한 것이 되었고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헌신이 없기에 환율에 의해 가치가 상당히 줄어들 헌금도 막대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심지어 헌신이 너무 빈약하여 하늘의 화폐로는 그 가치가 완전히 상실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서 이 점을 더욱 강조합니다. 고린도 성도들 각각이 유대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드린 그 금액을 주님은 이 땅의 화폐 가치에 기초하여 측량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먼저 드릴 마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드린 액수뿐 아니라 헌금 후에 남아 있는 액수도 셈해졌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부유한 자들이 더 유리하고, 가난한 자들은 그것을 역전(逆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전 연보궤에 두 렙돈을 넣은 과부에 관한 기록에서, 주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전반적인 핵심은 얼마나 많이 드리는가 하는 점보다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헌금을, 채우고자 하는 그 필요의 크기와 대조하여 셈하지 마십시오. 그리고서 당신의 작은 액수는 너무나 하찮아서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당신이 드린 그 많은 액수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가난한 과부는 온 힘을 다해서 연보했습니다. 당신은 얼마만큼 그와 같은 모본을 따르고 있나요? 당신의 삶에서 하늘의 환율은 어떠한가요? 당신이 드린 그 가치를 늘려주나요,아니면 줄여주나요?

   얼마나 많이?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고후 8:13).
    당신은 한 가지 요소를 더 고려하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헌금을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은 사치스럽고 편안하게 사는데 당신은 그들을 부양하는 재정적 짐을 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와 같이 안락과 호사 속에서 사는 자는 신자들의 연보를 받기에 적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족한 자들에게 줌으로써, 혹은 자신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주님의 일에 드리는 까닭에 다른 신자들의 재정적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지원함으로서, 당신은 평균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신 자원들이 고르게 분배됩니다. 당신이 언젠가 부족하게 되어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그들의 자원들을 나누어주게 될 가능성에 대한 바울의 예고도 아울러 기억해 두십시오(고후 8:14).
   그러므로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그러나 결정시에 자기만족을 먼저 취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의무들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지나친 욕망으로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마십시오. 하늘은 당신의 결정을 주시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헌금할 때 주님이 지켜보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께 드리기로 결심한 그 헌금에 그분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매기실까요?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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