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의 방법과 특성(롬3:21-31)
우리는 이제까지 롬1:18-3:20절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인간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용납할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편에서 딜레마요 난제다. 하나님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구원이란 무엇이고 왜 구원이 필요하고 어떻게 구원받아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1. 구원의 방법(롬3:21-25)
(1)구원이란 무엇인가? 기독교가 말하는 핵심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일이다. 성경전체는 구원사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마9:13, 눅19:10) 본문은 구원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롬3:21~22,24~24절에서 ‘의’라는 단어가 계속 나온다. 구원이란 죄 사함과 의롭다함을 말한다. 소극적으로는 죄용서요 적극적으로는 의롭다는 것이다. 의란 불의와 반대이다. 의란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때 의롭다고 말한다.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수님께 전가(안수)함으로 죄사함과 의롭다함이 이루어졌다
(2) 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한가? 롬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롬1:18~3:20절까지 말씀의 요약이다. 죄란 무엇인가? 죄란 범법, 위반, 바르지 않은 것, 사악, 계명을 어기는 불법이다. 모든 사람은 아담 아래서 같이 죄를 범하였다. (롬5:12) 또한 죄악 중에 출생하여 (시51:5) 마음과 행동으로 범죄하며 산다. 엡2:1절에 모든 사람이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죄는 화살이 과녁을 명중시키지 못하고 벗어났을 때 쓰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마땅히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허물이란 경계선을 침범했을 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어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침범한 것을 말한다. 도로의 중앙선을 침범할 때 쓰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자리를 침범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죄란 도덕적으로 착하고 악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다. 내가 왕이 되느냐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느냐의 문제이다.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 자리에 침범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중심이 되고 모든 것이 자기 기준에 맞으면 선이고 틀리면 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영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요, 악한 죄인인 것을 깨닫고 심령의 가난을 알게 된다. 어린아이가 되고 양과 같이 된다. 누군가를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알게 된다. 어린아이는 부모가 없이는 살 수 없고 양은 목자가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 자만이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또한 하나님의 영광의 이르지 못한 상태에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속성을 말한다. 그것은 율법 안에 나타났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요구이다. 사람은 한사람도 그 하나님의 영광에 합격할 수 없었고 미달된 자들이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될 수가 없었다.
(3) 그러면 어떻게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는가? 롬3:24-25절에서 이를 설명한다. 하나님과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불화상태가 되었다. 서로 적대적이고 원수가 되었다. 하나님도 인간을 향한 진노를 발할 수 밖에 없고 인간도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경외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세우셨다. 인간의 죄에 대한 값은 사망이다(롬6:23). 그래서 죄인을 위하여 의로운 생명이 죽어야 한다. 그것을 성경은 피흘림으로 말한다.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은 없다(히9:22).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여서 죄를 그냥 덮어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없이는 죄용서는 불가능하다. 롬3:24절에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루어졌다. 여기 속량이란 ‘값을 지불하고 사다’는 말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한 피흘림으로 죄의 값을 지불하셨다. 그래서 벧전1:18-19절에서 우리가 대속을 받은 것은 금이나 은으로가 아니라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로 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피로 교회를 사셨다고 말씀하신다(고전6:19-20, 행20:28). 우리는 이 피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다(롬3:22, 5:1,9).
2. 구원의 특성(롬3:5-31)
롬3:25절에서 하나님이 십자가를 세우셨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세웠다. 역사적으로 지구의 중심에 십자가를 세우셨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 시키고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된 것이다. (롬3:21, 행2:23)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일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 것을 밝히 드러내셨다. 구원의 전 역사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십자가를 왜 세우셨는가?
(1)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롬3:25~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죄를 죄답게 처리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죄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보여주신다. 우리는 십자가를 감상적으로 접근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죄문제를 얼마나 철저하게 다루시는가를 두려워하며 바라봐야 한다. 죄문제의 처리는 간단하거나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어떻게 대응하시고 반응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이다.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는 경우는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는가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가시적으로 보여 달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왜 이 세상에 불의나 행악에 대하여 심판하지 않는가?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 왜 고난 받는가?’라는 공격을 한다. 성경의 답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역사적 증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의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다. (행17:24~30) 십자가는 용서가 가능한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가 모순이 없는 분임을 보여준 것이 십자가이다. 우주와 전 역사 속에 가장 엄청나고 영광스럽고 경의로운 사건이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인간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를 선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하나님다우신가를 보여주는 것이 십자가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하나님의 지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난제를 십자가의 방법으로밖에 풀 수 없었다. 하나님의 공의가 손상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이 손상되지 않고 또한 양보나 타협이 없이 두 속성이 조화롭게 살아나는 곳이 십자가이다.
(2) 인간의 자랑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이해하면 적극적으로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소극적으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자랑은 타인과 나를 비교함으로 내가 우월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자랑의 근거를 자기 안에, 자기 행위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과 빛 앞에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적으로 무능한 자신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알게 되고 (고전4:7) 나의 죄 사함과 의가 그리스도의 피의 근거함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 (엡2:8~9)
(3) 하나님의 공평한 기회를 보며 차별하지 않으심을 드러내셨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구원의 내용이나 방식에 차별이 없다. 사람들이 가장 예민한 것은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수많은 전쟁과 혁명과 이념적인 운동이 일어났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를 회복하는 것이요,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거듭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 때 우리는 자존감과 정체감을 회복하게 되고 진정한 하나님 안에서 가치 있는 자임을 알게 된다. 그 외에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지식의, 소유의, 권력의, 명예의 유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은 잠시 있다 사라질 꽃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에게 한 하나님으로서 똑같이 믿음으로 의롭다는 기회를 공평하게 주셨다.
(4) 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세우는 일을 하였다. 십자가의 복음은 율법을 폐하지 않고 세우는 일을 한다. 복음만큼 율법을 세우는 것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복음이 율법을 세우는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아들이 잘 지킬 때 그 아버지는 가장 존귀하게 된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고 거듭난 성도들도 성령 안에서 그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다. (마5:17~18, 롬8:3~4) 주님께서 이 땅에서 자발적으로 율법을 순종함으로 율법을 존귀하게 하고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다 이루심으로 율법을 높이셨다. 죄에 대한 진노를 발휘하심으로 거룩함을 드러내셨고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율법을 사랑함을 드러내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높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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