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생을 위한 덧셈과 뺄셈..


[베드로후서 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 어떤 철학자가 공원에서 해가 떨어졌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벤치에 앉아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원지기가 청소를 하다가 물었습니다.

“당신 누구요? 어디서 왔소?”

그때 철학자가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게 바로 그겁니다. 내가 누구지요?”

어떤 한 사람이 어두운 굴 속에 들어가 굴 입구를 막아버리고 작은 구멍으로 먹을 것을 받아서 살았습니다.

몇 년 뒤 그 사람이 나오자 사람들은 그 사람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위대한 발견을 했는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굴속에서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그곳에서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마음은 이 동굴보다도 훨씬 더 어둡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철학적 인문학적 질문은 피하고 싶지만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나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피조물이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로보트를 만들었는데 그 로보트가 주인을 몰라보고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고 자신이 왜 존재하는 지를 스스로 알아내려고 한다면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사춘기 자녀가 혼자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몰라보고 무시하고 반항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자 한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피조물인 우리는 나를 만드신 창조주에게 물어야 합니다. 창조주와의 관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나는 우연히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아래 존재하는, 천하보다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도를 닦거나 고행 속에서 찾으려고 하거나, 재물, 명예, 권력, 인기, 쾌락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서 이룬 것들은 허무함 밖에 없으며 어느 한 순간 다 무너지는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어느 샐러리맨이 30년 동안 자기의 삶을 정확하게 하나하나 기록을 했습니다.

30년을 환산해보니 총 10,950일인데, 잠자는 시간이 3,505일이었고, 괴롭고 힘들고 어렵고 불평불만을 하면서 고민하며 살았던 시간이 1,596일, 담배 피우는 시간이 1,140일, TV를 본 날이 775일, 먹는데 보낸 시간이 678일,

남을 흉보고 욕한 것이 442일, 술집에서 보낸 시간이 266일, 게임이나 도박판에서 258일, 그리고 나머지는 인터넷, 각종 모임, 관혼상제.. 등 이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1년을 이렇게 나누어 본다면 어떻게 나올까요?

우리는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멋있고 훌륭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름답고 멋있고 훌륭하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요 하나님이 택하신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우리자신도 행복하게 사는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인생, 훌륭한 인생을 살수 있을까요?

어느 목회자는 인생의 덧셈과 뺄셈을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 내용을 공유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필요한 여러 지식들, 능력, 부지런함, 성실, 진실, 사명, 겸손을 더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나를 구원해주실 구원자로 믿는 믿음을 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망을 더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소망 중에 기뻐하며 인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더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하여 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더하여야 합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더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힘있게 살 수 있습니다.

훌륭한 인생 아름다운 인생을 살려면 뺄 것들은 빼야 합니다. 무엇을 빼어야 할까요?

내 삶의 죄를 빼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가 무슨 상관이냐? 현재만 바르게 살면 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더럽혀진 옷을 빨지 말고 지금부터 더럽히지 않고 살면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죄는 인생을 추하고 병들게 하고, 영혼을 어둡게 하며, 양심을 더럽게 합니다. 죄는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심판이 있기 때문에 죄를 빼어야 합니다. 죄는 무거운 짐이요 많은 부채이기에 빼어 버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섭고 더러운 우리의 모든 죄를 빼어 버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자신의 인생에 있는 모든 죄를 빼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교만을 빼야 합니다. 겸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며 교만은 마귀의 본질입니다. 교만은 죄와 불순종의 원인입니다.

욕심을 빼야 합니다.

기독교는 가난을 미덕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부를 죄로 보지 않습니다. 탐심, 과욕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은 하나님보다 물질을 제일로 두는 마음, 자기만 생각하는 탐심, 남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은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진실을 볼 수 없게 하고 자신과 자신의 미래도 보지 못하게 눈을 어둡게 합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분노를 빼어 버려야 합니다. 분노는 공들여 쌓아 놓은 인생과 인격과 신앙을 무너지게 합니다. 분노는 타인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사냥하는 활이요 타인과 자신의 인생을 찌르는 무서운 칼입니다.

저주와 악의적이며 부정적이고 추하고 더러운 말을 빼어 버려야 합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기에, 하나님과 사람과 자신에게 무익한 저주와 악의적인 말 부정적인 말 추하고 더러운 말은 버려야 합니다.


아름답고 훌륭하고 멋있는 행복한 삶이 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 인생에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어 버리고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 과한 욕심을 버리고
(÷) 작은 것이라도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 편견 없이 동등한 생각과
(↕) 너무 교만하거나 비굴하지 않게
(♬) 찬양 가운데 마음의 즐거움을 느끼며
(♥) 진실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나누면서
(--) 염려 근심 걱정은 다 주님께 맡기고
(^^) 활짝 웃는 미소 띤 얼굴로
(⇒) 믿음의 행진을 계속하며
(,) 쉼표가 있는 자리에서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 느낌표가 있는 자리에서는 주님과 내가 하나되고
(?) 물음표가 있으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주님을 더욱더 의지하며 끈기와 인내와 믿음으로 파헤쳐 나가는 가운데
(.) 잠들기 전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는 마침표를 찍는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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