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 기독교인들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녁 식사 후 자신이 좋아하는 성구를 하나씩 낭송하기로 했습니다.

한 유명한 배우가 웅변술과 연극적인 기교로 시편 23편을 낭송하였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사람이 똑같은 시편 23편을 낭송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웃음과 실망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한 절 한 절 더 해감에 따라 사람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그 어떤 갈채에도 비길 수 없는 은혜와 감동적인 고요함, 뜨거운 사랑과 열정이 방안을 가득 덮었습니다.

그의 낭송이 끝나자 먼저 시편을 낭송한 배우가 일어나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시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목자를 알고 계시는군요.”

[베드로후서 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여러분은 성경 구절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신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감동받기를 원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이나 음악, 좋은 글, 책, 영화, 선물 등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처럼 감동을 주는 존재는 없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은 한 사람의 일생을 감동으로 붙잡기에 넉넉한 극상의 예술입니다.

만물 중에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의 심성에서 흘러나오는 마음씨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저널리스트는 오늘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를 가리켜 '3무의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무관심의 시대, 무책임의 시대, 무감동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제외하곤 관심을 가질 일도 없고, 책임을 질 일도 없고, 감동을 받을 일도 없다는 말입니다.

한 사회학자는 이런 극도의 이기적이고 냉소적인 시대를 미제너레이션 (Me Generation, 자기중심주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영어 표현으로 “I don’t care(나 몰라, 상관하지마)”를 들었습니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것이 더 편하고,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책임져 달라고 요청할 생각도 없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극도의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무감각, 무감동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고 산다는 것이 너무 고단해서 그런지.. 기뻐도 기뻐할 줄 모르고, 슬퍼도 슬퍼할 줄 모르는 메마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1:16~17]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우리는 매일 아침을 별 생각 없이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매일 맞이하는 이 아침은 전혀 새로운 오늘만의 아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감사로 시작할 수 없고, 감동의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하루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제와 다를 것이 없겠지만, 어제 죽어간 사람들에겐 그토록 그리워했던 내일입니다.

그러기에 하루의 아침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알려주는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 감동받을 일을 준비해 주시고 이것이 우리 인생을 사는 유일한 에너지 원천이 됩니다.

감동이 없는 사회나 개인은 소망이 없습니다. 감동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없거나 충만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되면 하루하루를 감동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은 감동의 영입니다.

성경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기록되었으며, 성경의 위대한 인물도 다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에는 예수님을 감동시킨 한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한 백부장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기쁨으로 만나 주신 분입니다.

[누가복음 7: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을 감동 시킨 이 백부장의 믿음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한마디로 자신을 초월하지 못하기 떄문입니다. 자기 자신에만 완전히 빠져 살기에 이웃이 눈에 안 보이고 하나님이 눈에 안보입니다.

백부장은 당시 군인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로마 군대 장교였고, 그 당시 하인은 소유물에 불과하였던 노예였지만 예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간절히 노예를 낫게 해달라고 도움을 간구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또 예수님을 감동시킨 백부장의 믿음은 공간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행동에 감동을 받은 예수님은 “내가 고쳐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환자가 있는 집으로 모셔 가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8: 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자기 집과 예수님을 만난 곳 사이에 공간적인 거리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이 역사하시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공간 혹은 지역을 초월한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말씀만으로도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는 백부장의 고백은 진정한 믿음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표적이나 이적을 보고 믿는 믿음보다 말씀에 의지하는 백부장의 믿음을 더 크게 여겼습니다.

우리도 백부장의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공간과 지역을 초월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장에서 역사하시도록 선포하십시요.


시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주님의 기적을 보게 될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는 언제 어디서든지 감동의 근원지가 됩니다.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나를 알고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감동의 샘터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처럼 나 자신을 초월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공간을 초월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감동 시키고, 우리 안에 아름다운 일을 이루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감동이 쌓여 나갈 때 은혜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를 통한 감동의 사역, 감동의 봉사, 감동의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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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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