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 요셉(창 37,39)


요셉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였다. 그러나 요셉이 다른 것이 있다면 고난과 시험에 대한 태도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사게 된다. 아버지의 편애로 채색옷을 입게 되고 이로인해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게 된다. 또한 형들의 허물을 보면 고자질하므로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계시한 꿈으로 인하여 형들의 분노를 사게 된다. 우리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각자의 꿈이 있다. 개인의 사욕이나 세상적 야망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사람을 향한 꿈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성취되는 방법이나 과정은 만사형통이 아니다. 실제로 성도의 삶은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 도전과 좌절을 겪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이 성취되는 것은 평탄하고 형통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의 과정을 통해서 이뤄진다. 요셉이 17세 소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간다. 형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죽이자고 한다. 그래서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이 잡아 먹었다고 아버지를 속인다. 르우벤이 살리고자 하였고 유다의 제안으로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리게 된다. 그로 인해 요셉은 애굽의 바로의 신하 보디발에게 팔리게 된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요셉이 어떻게 믿음의 사람으로서 주님의 성품을 닮은 자가 되었는가?
 
1. 귀공자의 신분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한다.
요셉은 사랑을 독점하고 채색옷을 입고 부러울 것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루 아침에 채색옷이 벗겨지고 노예옷을 입을 신세로 곤두박질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한 첫발걸음이 시작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들다운 아들이 되기 위한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고 주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 온실이 아닌 광야로 밀어내신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은 그가 왕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절을 받고 영광의 대우를 받는 자리였다. 그러나 꿈과는 전혀 다른 냉혹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도 아닌 혈육의 형제들이 노예로 파는 고통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머나먼 이국인 애굽으로 던져진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창39:1절에 요셉이 이끌려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는 형들을 도우려 도시락을 들고 갔다가 구덩이에 던져지고 사방으로 막힌 그 구덩이에서 벌벌 떨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그 과정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그는 쇠고랑에 묶인채 가격표가 달린 노예로서 비인격적인 수모와 수치와 굴욕을 당하게 된다. 그는 평생 노예로 일하다가 죽게 된다는 긴장속에 누가 자기의 주인이 될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최고의 예우를 받다가 인생의 밑바닥에 내쳐지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리하여 보디발의 집에 팔리게 되었다. 그도 인간인지라 처음에는 잠 못이루는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가슴에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분노로 벌떡벌떡 일어나면서 복수심과 증오심에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감정을 다루지 못하면 두가지 극단적인 증상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분노와 증오 복수심의 감정이 정서를 파괴하고 무섭게 괴팍하고 변태적이고 황폐화된 괴물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둘째로 자기 연민에 빠져 자기를 공격하고 스스로 자신의 감옥에 갇혀 좌절과 낙심과 비관과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과는 정반대의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요셉이 노예생활에 잘 적응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범사를 인정하고 범사를 감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내길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다(잠3:6). 우리는 환경이 뒤틀리고 어려워지면 이렇게 된 원인이 형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형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하소연할 수 있다. 이렇게 타인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된 자신을 탓하고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고난앞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요셉은 최악의 조건과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므로 적응하고 그리스도인 노예로서 삶앞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게 된다. 도망가지 않고 고집과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한줄기 하나님이 주신 꿈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붙잡고 이 상황앞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한줄기 빛이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종노릇을 충성되이 하므로 보디발이 가정의 총무를 맡게 한다. 그리고 그 보디발의 가정에 하나님의 복을 허락하신다. 우리도 우리가 처한 가정, 교회, 직장과 일터에서 이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간증을 드러내고 있는가? 당신이 오므로 우리의 교회와 직장이 더 큰 복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것이 그를 모든 삶에 성실하고 충성된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2. 고난보다 더 무서운 성적유혹을 이기므로 순결한 사람이 된다.
(1) 요셉에게 성적 유혹이 언제 찾아왔는가?
 
청년요셉에게 육체적으로 고달프고 신분적인 노예로 사는 것보다 더 무서운 성적 유혹이 찾아온다. 당시 고대에서는 여 주인이 남자 노예를 성적노리개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 여인은 그 집 주인이므로 권력자의 유혹을 거스리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었다. 또한 그는 가정과 고향을 떠나 힘든 시간을 거쳐 이제 안정을 되찾고 기지개를 켤 시기였다. 사람이 가정을 떠나면 유혹이 더 강렬해질 수 있다. 또한 그는 피끓는 청춘이었다. 또한 이 여인의 유혹은 집요하였다. 결정적인 것은 그 집안에 아무도 없을 때 그 유혹이 찾아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적 욕망의 유혹은 승리한 사례가 많지 않다.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던 삼손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도 성의 유혹앞에 넘어지게 된다.
 
(2)그렇다면 요셉은 이러한 시험을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가?
첫째로 그는 창39:9절에서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리이까? 이것은 하나님앞에 죄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보고계신다는 그의 믿음이 그를 유혹에서 이기게 한다. 또한 이것은 악이라고 하는 분별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들어오면서 성의 대한 개념도 혼전, 혼외성관계를 죄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해서 그것은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요셉은 그것은 하나님앞에서 큰죄라고 말한다.
둘째로 요셉이 그 유혹을 이길수 있었던 것은 창39:9절에서 보디발 주인이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기지만 아내만큼은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주인을 배반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우리도 내 남편, 내아내와 자녀와 성도를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면 우리는 범죄에서 자신을 지킬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범죄율이 높은 경우는 가족이 없는 경우라고 한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자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
셋째로 그는 당장의 쾌락보다는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죄와 정욕의 노예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넷째로 딤후2:22절에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정욕을 피하여 도망갔다. 정욕을 대적하면 다 넘어진다. 그는 유혹이 왔을 때 옷을 뿌리치고 도망갔다. 여기 피하다는 단어가 맹수나 더러운 것을 피할 때 쓰는 말이다.
다섯째로 요셉이 이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다. 일에 성실한 사람은 그만큼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여유가 없다는 말이 있다. 청교도들은 게으른 마음은 사단의 공작이라고 하였다. 성도가 가정과 교회와 직장일에 성실한 사람은 타락하지 않는다. 그가 신분은 노예였지만 그의 중심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귀한 신분에 자존감과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하였다. 요셉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그의 삶을 이렇게 순결하게 하는 것이었다.
 
3. 유혹에 승리한 결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이럴 때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사랑하는 형들에게 배신당하는 고통도 고통이고 노예복을 입고 종살이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자신의 믿음과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유혹을 이기고 나서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기약없는 감옥속에 들어갔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럴때 하나님 어디계십니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신실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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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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