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의미 (마1:1~17)


마태복음의 저자는 마태이다. 구약 계시가 말라기로 끝나고 400년의 암흑기가 있었다. 그 시대가 끝나고 처음 기록된 성경이 마태복음이다. 마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그는 히브리식 이름이 레위이다. (막2:14) 그는 가버나움의 태생이요, 알페오의 아들이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다. 그 시대적 배경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식민통치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헌납하고 자기가 이익금을 챙기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를 매국노요, 죄인 취급을 하였다. 상종하지 않았다. 길을 가다 세리를 보면 잠시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지나가면 갈 정도로 혐오의 대상이었다. 눅19장에 키작은 삭개오 세리도 나온다. 그 마태는 자기 직업에 충성하고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런 마태를 주님께서 부르셨고 그는 주님을 따르게 된다. 그는 직업적으로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주님의 부름 앞에 모든걸 버리고 쫓아갔다. 주님을 만나고 그의 삶이 변화되고 그는 끝까지 주님을 따랐다. 잠시 십자가 사건으로 주님을 등지고 도망쳤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 오순절 성령을 받은 후에 한평생 복음을 위해서 살게 된다. 마태복음은 서기50~70년 사이에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별볼일 없는 죄인이 주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고 돈버는 일을 버리고 주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자신을 드리고 주님의 행적을 그의 치밀한 붓으로 기록해나갔다. 전에는 민족을 배신하고 돈을 착취하는데 사용된 붓이 이제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붓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는 마지막 순교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상영광과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주님께 모든 소망을 두었던 것을 보게 된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연대적 순서보다 주제별로 편집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한다. 먼저 왕의 족보를 살펴보자.

1. 왜 족보에 아브라함과 다윗이란 이름이 소개되고 있는가?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뿌리요, 조상이다.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 아브라함이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을 염두하고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는 갈대아우르라는 우상의 도시에서 우상을 섬기고 살았다. 또한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에 인간의 타락이후에 하나님께서 두 시험기간을 허락하신다. 개인의 양심의 능력을 시험하였다. 그 시험에 인간들은 실패함으로 노아 홍수 심판이 주어졌고 둘째로 제도나 조직을 통하여 인간이 통치하는 시대를 허락한다. 이것도 인간이 극도로 부패하여 하나님 말씀을 불신하고 홍수처럼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탐을 쌓지 못하도록 언어혼잡의 심판을 하신다. 홍수 심판과 언어 혼잡이라는 심판을 통하여 인간은 어떤 환경속에서도 타락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인 것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약속을 주신다. 너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는 약속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 만민이 구원에 이르는 복이다. (갈3:16)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한 약속이 다윗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예언된다. (삼하7:8~13)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렸다. 또한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오실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바로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하여 이루어질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한 성품에서 비롯된 구원 역사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안에 성취됨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을 걸고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후에 다윗왕까지의 과정을 보면 많은 위기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작은 부족국가가 애굽으로 갔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애굽의 강국하에 히브리 민족은 노예로 이제 그들의 역사는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이 자식을 가질 수 없을 때도, 이삭이 자식을 가질 수 없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배후에 역사를 진행하고 계셨다. 또한 다윗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과정을 보면 많은 위기의 시간들이 있었다. 남북이 갈려지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이제 하나님의 역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듯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기로 보내심으로 하나님 역사가 이어져 간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약속하셨는데 로마의 강력한 통치아래 있는 작은 나라가 어떻게 왕이 오고 왕국이 세워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왕이 역사의 침투에 들어왔던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의 특징은 권력이나 힘의 논리로 세워지지 않고 사랑으로 침투하여 들어왔다.이 아브라함과 다윗도 하나님의은혜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게되었다(롬4장)

2.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지고 거룩한 메시아의 혈통에 이들이 사용된다.
이 족보에는 마리아를 제외한 4명의 여인들이 나온다. 다말, 룻, 라합, 밧세바이다. 일반적으로 족보에는 여인들이 나오지 않는데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인, 이방인 여인, 불륜적인 여인들이 나와있다.
(1) 다말 : 창38장에 보면 야곱의 장자 유다가 가나안 여인을 취하여 엘, 오난, 셀라를 낳는다. 장자 엘과 결혼한 여자가 다말이다. 그 남편은 하나님께 결정적인 범죄함으로 죽게 된다. 유대 전통에 따라 그녀의 운명은 시동생을 통해 후손을 얻어 형의 대를 잇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동생 오난은 다말의 아이가 자기자식이 되지 않을 줄 알고 속임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죽게 된다. 남편과 시동생은 죽었다. 그런데 막내 시동생 셀라가 장성했지만 시아버지는 그를 허락지 않는다. 유다는 그 아들까지 죽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속에 오래도록 남자는 자기의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았고 여인들은 자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았다. 그러므로 지금 다말의 인생은 미래도 소망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시아버지를 통해 자식을 낳는 것을 각오하고 시아버지가 그 동네에 왔을 때 창녀로 변장하여 유혹하여 동침하게 된다. 그리고 물건들을 징표로 받아낸다.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다는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데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내밀며 이 물건의 임자가 아이의 아버지임을 밝힌다. 이를 보고 시아버지 유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말이 자신보다 옳다고 말한다. 이리하여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 자식을 낳는다.이것이 메시아 족보가 되는 것이다.
(2) 라합 : 라합은 기생이었다. 수2장에 그녀는 수많은 손님들을 받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강력한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믿게 된다. 인간적으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을 보고 그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민족을 버리고 그는 하나님을 선택하게 된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살려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믿음이 자신과 가족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그 정탐꾼중에 하나였던 살몬과 결혼하여 룻의 남편인 보아스를 낳게 된다.
(3) 룻 : 룻기에 보면 룻은 모압 여인이었다. 그 조상은 소돔을 빠져나와 겨우 구원받은 롯과 딸 사이에 태어난 암몬과 모압이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저주받은 핏줄이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 집안이 모압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두 아들이 모압여인과 결혼함으로 룻은 유대인의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기근을 피해간 그 땅에서 엘리멜렉 가족은 남자들이 다 죽는 비참한 비극을 당했다. 이제 과부된 시어머니와 며느리 둘만 남아 처량한 신사가 되어 다시 고국인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돌아온다. 룻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암담한 미래 앞에서도 믿음의 선택을 한다. 하나님께서 모압 여인의 길을 여시고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고 다윗의 증조부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게 된다. 룻은 이렇게 메시아 족보에 오르게 된다.
(4)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 성경은 그녀를 우리아의 아내라고 말한다. 아마도 억울하게 죽은 우리아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아버지의 마음인 듯하다. 다말, 라합, 룻처럼 우리아도 헷사람의 자손이다. 다윗이 어느 날 오후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보고 정욕을 이기지 못해 궁으로 불러들여 죄를 짓고 그녀의 남편은 일선에 보내어 전사하게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죽고 다음 솔로몬을 낳게 된다. 이런 죄 많은 여자, 우리아의 아내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성경은 왜 많은 훌륭한 여성들의 이름을 적지 않고 죄 많은 이방여인들의 이름을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하였을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주님의 십자가의 은총 앞에 사함 받지 못할 죄가 없고 예수님의 사랑 앞에 치유 받지 못할 상처가 없다. 예수님께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주님 앞에 오는 어떤 여인도 용서와 치유를 받았다. 또한 이런 죄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기록한 적극적인 뜻은 천국은 믿음으로 침노하는 자들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11:12절에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말한다. 천국을 사모하고 침노하는 자는 적극적으로 천국을 찾고 구하는 자라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은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신다. (고전1:26~31)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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