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율법의 관계 (롬 7:1-13)
성경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성경이 로마서라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장이 로마서 7장이라고 한다. 로마서 7장은 율법에 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로마서 6:14절에서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과 나의 관계가 주종관계가 아니고 부자관계와 같은 것이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법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사랑과 은혜로 맺어지게 된다. 율법아래 있는 노예, 하인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늘 법에 의해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시는 부모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실수와 넘어짐과 연약과 허물들에 대하여 죄를 다루는 검사처럼 하지 않는다. 때로 징계는 할 수 있지만 철저한 사랑으로 품고 기다리며 우리를 사랑으로 대한다.죄는 율법을 통하여 힘을 발휘한다. 법이 없을 때는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죄의 권능은 율법이다. 죄는 율법을 만나면 죄인을 철저하게 사로잡고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그것을 7장 전체에서 다뤄주고 있다. 우리는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다. 우리는 단번에 영원히, 온전히 죄 용서함을 받았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안에 여전히 죄의 본성(세력,권세,뿌리)이 남아있어서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죄에 시달릴 수 있다. 구원받은 성도가 죄를 범하면 자유롭거나 평안하지 않다. 그 때 죄는 율법을 가지고 우리를 정죄하고 송사하고 참소한다.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로마서 7장 4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법은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만 효력을 발휘한다. 죽어버리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1.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 (7:1~6)
사도는 영적 연합에 대하여 계속 말하여 왔다.
첫째로 5:12-21절에서 아담안에서 태어나 죄와 사망의 지배아래 있었다. 이 운명을 바꿀수 있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안에서 은혜로 거듭남으로 의와 생명의 통치아래 있게 되었다. 대표성의 원리로 연합하였다
둘째로 6:1-14절에서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되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위치요 신분이다.
셋째로 6:15-23절에서 전에 죄의 노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의의 종이 되었다. 이렇게 신분을 바꾸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의 값을 지불하는 구속을 통하여 그리스도안의 의의 종이 되었다.
넷째로 한번 결혼하면 그 관계를 깨는 것은 어렵다. 7:1-6절에서 우리는 출생으로부터 율법남편과 결혼한 운명의 상태였다. 7:4절에 있는 대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고 새남편인 그리스도와 결혼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남편이 공부도 우수하게 잘하고 좋은직업도 가지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성품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런 남편과 결혼한 아내는 시간이 갈수록 그 남편은 너무 완벽하므로 그 기준이나 표준에 맞지 않으면 야단을 치고 그래서 결국은 이 아내는 주눅이 들고 기가 꺽이고 두려움과 불안속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남편이 퇴근하여 문여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런데 이 남편이 사고로 죽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얼마 안되어 새 남편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훈남이었다. 여러 실수에 대해서 그럴수도 있지, 하고 이해와 용서, 관용과 인내로 대하므로 이 여인은 그 모든 우울증이 치료되고 따뜻한 사랑과 은혜안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이것이 신자가 구원받기 전의 율법과 죄의 남편과 함께 사는 삶과 구원이후의 주님과 은혜안에서의 삶을 비교한 예화이다.
(1) 내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 (롬7:4)
그리스도인은 전에 율법이라는 남편과 살게 되었다. 그 삶은 고통스러운 삶이었다. 그런데 율법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죽어야 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해서 죽게 된 것이다. (7:4)
(2) 율법아래 삶은 육신안의 삶이다. (롬7:5)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다. 죄가 사람을 지배하면 욕구가 나라는 인격을 지배하게 된다. 내가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죄의 정욕은 죄를 짓도록 충동질하고 조정하게 된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어떻게 작용하였는가? 율법이 죄를 격동시키고 일으키고 불 일 듯하게 하였다. 죄의 정욕은 먼저 생각과 상상속에 역사한다. 예를 들면 마음에 음욕을 품게 하고 다음에 지체들로 행동하게 한다. (마6:18, 롬6:12~13) 그래서 사망을 위한 열매를 맺게 한다. 롬7:5절에서 죄의 무서운 성질, 가공할 권세, 죄의 충동과 죄의 정욕이 존재함을 본다. 불신자는 이를 억제할 수 없다.
(3)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삶이란? (롬7:6)
이제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결혼하였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율법에 대하여 죽음으로 율법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7:5,8:1)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남과 함께 새 본성이 주어지고 성령이 함께 내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육신의 지배아래 있지 않고 성령의 지배아래 있게 된다. (롬8:9)
2. 그리스도인과 율법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롬7:7~13)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역사만큼 이 질문은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정의가 있어왔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인간에 대한 정확한 규명은 성경에 나타난 율법과 죄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율법은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기준을 제시하는 거울과 같다. 그리고 죄는 인간안에 뿌리를 두고 인간 전 존재를 지배할만한 가공할 만한 세력이다. 나를 알기까지는 나는 자유로울수가 없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질 수가 없다.
(1) 율법이란 무엇인가? (7:12)
첫재로 율법은 거룩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의 표현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율법은 요구한다. 율법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으므로 거룩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복사판이다.둘째로 율법은 의롭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 이 공의는 모든 사람에게 공의를 요구하고 잘못했을 때 정죄하고 형벌을 가하게 된다. 로마서는 의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셋째로 율법은 선하다. 악과 반대이다. 넷째로 율법은 신령하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율법은 신령하다. 율법은 영적인 것이다. 외적 행동만이 아니라 내적이며 영적인 것이다. 그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므로 신령하다.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내려진 명령이므로 신령하다.
(2) 율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첫째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준다. 모든 사람은 죄에 대한 보편적 지식은 있다. 그러나 율법이 죄를 자신에게 명확히 해주기 전에는 죄의 참된 본질을 알지 못한다. 율법이 죄의 진상과 본질과 성격을 깨닫게 하는 순간 사람은 자기 영혼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인간의 마음과 양심에 그러한 이해를 가져다 주는 것은 율법의 독특한 기능이다. 죄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롬7:7~8,3:20) 둘째로,율법은 죄의 성격과 본질을 드러낸다. (7:8,5:20) 이것은 죄를 짓도록 유도하고 충동질까지 한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행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죄의 깊이와 죄의 어리석음, 참된 죄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 죄는 인간의 본성 안에 역사하는 하나의 원리요, 세력이다. ‘죄가 기회를 타서’라는 뜻은 여행할 때 출발점으로 여긴다. 군사작전 때 본영으로 삼는다. 또한 지렛대로 삼는다는 뜻이다. 죄가 율법을 통하여 내 안의 각양 탐심을 이룬다. 그래서 죄는 율법을 만나면 하지 말라하는 것을 더 하고 싶어하고 하라는 것을 하기 싫어하는 반항심으로 나타난다. 죄는 자존심이요, 자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 대해서 예민하다. 칭찬이나 모욕에 대해서 예민하다. 자기를 다치게 하는 것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죽었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민하다. 자기를 초월하는 자만이 자기가 죽은 자임을 늘 자각하는 사람이다. 셋째로, 율법은 죄를 심히 죄가 되게 한다.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된다. 율법은 약도와 같다. 율법은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잘 표시된 지도와 같다. 약도와 지시를 따르게 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대로 행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율법을 받았으나 소경이라는 것이다.눈을 밝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눈을 밝히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약도는 율법이고 복음은 눈을 뜨게하는 치료제다. 성도가 눈을 뜨자 필요한 것은 약도인 율법인 것이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나 성화의 조건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칭의와 성화의 목적은 될 수 있다. 눈 뜬 우리가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도록 허용할 수가 있다. 율법자체는 잘못이 없다. 정죄케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율법에 부딪쳤던 바울은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깨닫게 되었고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이다.
(3) 죄가 우리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
첫째로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역사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태어난다. (롬8:7) 율법의 명령이 주어지면 인간안에 있는 반감이 머리를 들게 된다. 인간안에 죄의 원리는 반항심과 반발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공부해라, 서랍에 있는 것을 먹지마라, 이것을 하라말라 요구가 주어지면 청개구리처럼 반항이 일어난다. 죄가 우리안에서 어떻게 각양 탐심을 이루는가를 말한다. 둘째로 죄가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이므로 나를 죽게 만든다. (7:9-11) 죄가 나로하여금 율법을 잘못사용하도록 속인다. (딤전1:8) 율법을 범하고 절망적인 위치에 있을 때 죄짓게 하는 나쁜 놈은 죄라고 나를 설득시키므로 자기를 정당화시키므로 속인다. 하나님에 대한 부당한 생각을 일으키므로 속인다. 죄책감을 느끼면 안된다고 교육시키므로 우리를 속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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