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자 양육]
그리스도인 생활의
이정표들 (6)
- D. 힌튼
6. 학교 졸업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앞에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때 그것은 커다란 이정표가 됩니다. 이때는 다른 어떤 시기보다 더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미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이와 같은 결정을 하나님의 마음과 부합되게 내릴 수 있는지의 여부는 지극히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기 전에 여호와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 12:10).
또한 그는 하갈을 통하여 아들을 낳는 일에 대해서도 그분께 묻지 않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창 16:1). 이것은 비극적인 결과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는 그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평소에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곤 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가 절대로 넘어지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가 가드로 내려갔을 때가 바로 이러한 순간이었습니다(삼상 27장). 이때에 그는 압살롬을 낳을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던 듯합니다. 이것은 온갖 비극적인 결과들을 불러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자연적인 성향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졸업을 앞둔 시기에 내려야 할 첫번째 결정은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아니면 취업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백성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그것은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한 걸음씩 걸어가게 하십니다. 이 각각의 걸음은 하나님 보시기에 다 귀중합니다. 이 걸음들은 그분의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가 되는데 만약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만 한다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사회적인 지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역 교회 안에서 섬김을 행하고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그것은 고려할 사항이 아닙니다. 육체노동을 하는 신자들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신자들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진실된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이미 자신의 뜻을 정해 놓고 있나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인 잔존자들이 범했던 죄였습니다. 즉 그들은 외식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와 더불어 다음과 같이 정직히 말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만약 직업을 갖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물어야만 합니다. 이는 주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직업을 결코 갖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혼적인 측면을 자극하는 직업들, 가령 연예와 스포츠 분야는 제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속임수와 거짓이 구사되는 직업들도 피해야 합니다. 어떤 일들은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삶을 무너뜨리거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는데 이런 직업들을 우리는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맥주 양조장에서 일할 수 없고 음주와 관련죈 업종에 종사할 수 없습니다.
파병군이 된다는 것은 매력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험적이고 세계의 여러 나라를 누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데 신자가 스스로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것이 옳을까요? 주님이라면 그렇게 행하실지를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만약 주님은 그렇게 안하실 거라면 어떻게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는 자신의 에너지를 지역교회의 일들에 쏟아 붓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직장을 수시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지역교회의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또 지역교회에서 자신이 맡은 책임들을 담당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한 일들은 커다란 관심을 쏟아야만 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이 문제를 정직한 마음으로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들은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물으면서 모든 것을 그분께 미뤄서는 안 됩니다. 즉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어떤 직업이 있는지를 직접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면서 말입니다. 구인 광고 목록을 보면서도 우리의 마음에는 아주 생생한 확신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일자리가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올바른 방향을 확실하게 설정한 후에는 정직한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작부터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일을 정직히 행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럴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 우리가 던져야 할 첫 번째 물음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학문적인 필요가 주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길은 선택의 기회를 매우 제한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말하건대 가려는 대학의 근처에 예배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필수조건 입니다. 그 대학은 주일 아침에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나요? 그 대학은 주중 집회들을 마친 후 귀가하기에 어렵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나요?
만약 젊은 신자들이 지역교회로부터 홀로 떨어져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거기서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한들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그 과정에서 그들은 영적인 건강을 상실해 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학업에 있어서도 그분의 도움을 받고자 하나요? 그렇다면 한 가지를 확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역교회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우선순위 목록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이것을 결정해놓는 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대학교육을 받으려면 비용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주로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조달해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간을 허비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학업에 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역교회의 집회들을 결코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또한 그러면서 다른 대학생 신자들을 격려하고 도와야 합니다. 그런 동시에 학교의 불신 학생들이 구원의 축복을 얻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교회의 집회에 불참하면서까지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속한 학교의 규칙들도 잘 준수해야 합니다. 대학의 권위자들도 로마서 13장 1절에서 말하는 "모든 권세" 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우리는 교내에서 정치활동에 관여하거나 데모에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 3:20).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드러내는 자가 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들의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어 완전함,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함,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음, 구주의 신성과 무죄하심 등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그릇된 사상들을 배격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진화론과 같은 특정한 이론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는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면 안 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도덕적인 기준들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명령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딤전 5:22).
이성을 향해서도 가볍게 대하지 말고 정중하게 대하십시오. 왜냐하면 경박한 행실은 천국의 시민에게 합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젊은 신자들은 틀림없이 주님께서 자신의 학업과 취업과 영적인 삶에 복을 부어주심을 경험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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