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6월14일
요한복음 6장 41-51절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유대인들은 주님에 대해 수군거림으로써 그분의 말씀을 가로막았습니다. 실로 그들은 광야에서의 자기 선조들과 똑같이 행했습니다(고전 10:10). 그들은 주님을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여겼습니다. 또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기에는 자신들이 그분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42절). 주님은 "나는...이니" 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요셉의 아들" 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수군대는 그들을 짦게 꾸짖으셨지만 그들의 이의제기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는 하시던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소망 없고 무력한 인간의 상태를 강조하셨습니다(44절). 아버지께서 "무궁한 사랑으로" (렘 31:3) 이끄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절대로 자신의 필요를 깨닫고서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뒤이어 주님은 그분을 믿어야 할 인간의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45-51절). 따라서 기꺼이 나아오는 자들만 아버지의 이끄시는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37절). 이 하나님의 이끄심이야말로 구원 사역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부활이 구원사역을 완성합니다.
이제 주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십니다(사 54:13). 즉 성경에 의지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확증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을 이끄십니다 즉 법적인 요구, 상상력, 감정이 아니라 은혜로운 가르침으로써, 특히 주님 자신에 관한 가르침으로써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아들께 나아오는 것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요 6:44,45 참고).
여기서도 주님은 "진실로 진실로" 를 사용하십니다. 이는 전에 하신 말씀을 반복하고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주님은 화제를 전환하여 자신의 육체에 대해 말씀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신 탓에 청중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고집스런 편견과 불신앙을 지닌다면 깨닫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은 구원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 간결한 진술들 중 하나를 제시하셨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47절. 요 3:36 참고). 여기서 주님은 또 다시 만나를 언급하시는데 그 만나는 육체의 생명을 무한히 유지시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이 표현의 반복은 주님의 공급 뿐 아니라 그분의 위격을 강조해줍니다. 그분은 잠시 동안 부양해주다가 썩어져버릴 생명 없는 만나와는 현저히 다른 분이셨습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이제 주님의 가르침은 절정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 없는 청중은 주님이 앞에서 말씀하신 모든 내용보다 다음의 진술을 더 어려워했습니다.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그러나 신자들인 우리는 우리가 생명의 떡이신 그분을 먹을 때 우리의 영적인 필요가 얼마나 완벽하게 채워지는지를 경험했고 목도했습니다. 주님은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준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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