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6월 12일
요한복음 6장 28-31절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물질주의적이고 육신적인 개념과 현저히 다른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아챈 듯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또 이 영원하고 영적인 양식을 얻기 위해 그들은 무엇을 행해야 할까요(28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나요?
인간의 뛰어남이나 자기노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즉 행위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행위가 필요하다고 또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믿는 것 외에는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믿다'라는 단어는 요한이 즐겨 사용한 동사들 중 하나였는데 여기서 그는 이에 대해 또 하나의 정의를 내립니다. "하나님의 일이니라." 즉 이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또 이것은 애씀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여기서는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계시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위대한 교리를 미리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그 무엇에도 비길 데 없는 생각입니다. 또 이것은 성취와 믿음이라는 상반되는 원리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영생을 인간의 행위와 관련하여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성격을 가진 것은 오직 주님 자신만이 주실 수 있기에 영생을 얻음은 영원하신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구원과 그 모든 축복은 인간의 뛰어난 행위가 아닌 은혜에 근거해서 주어집니다(롬 4:4,5).
주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소개하셨습니다(29절). 하지만 전날에 그분께 양식을 얻었는데도 그들은 증거를 더 요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말로 표적을 구했습니다(요 4:48; 고전 1:22). 그들에게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었습니다(요 20:25). 참으로 그들은 불신으로 인해 눈이 먼 자들이었습니다. 30절의 첫 번째 "당신"은 강한 어조를 지닙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그분을 믿어야 한다고, 즉 그분의 위격과 속성을 믿어야 한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요 1:12), 그들은 확증하는 표적을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주님이 만약 메시야라면 만나를 하늘에서 다시 내리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랍비들의 가르침대로).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그분이 모세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지를 입증하려고 그들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단지 많은 이들을 먹이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보려 했던바 곧 "하늘에서" 내려온 떡에 관한 문제였습니다(출 16:4). 모세는 보이는 어떤 것을 주었습니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을 먹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분은 정말로 그 모세보다 크신 분일까요?
분명 그들은 주님을 믿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29절). 오늘날에도 도전적이고 논쟁적이고 비웃는 영에서 나온 이런 말들이 들려오는데 그 때마다 주님은 크게 슬퍼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과 함께 - 6월 14일 (0) | 2020.06.14 |
---|---|
주님과 함께 - 6월 13일 (0) | 2020.06.13 |
주님과 함께 - 요한복음 6장 22-27절 (0) | 2020.06.11 |
주님과 함께 - 6월 10일 (0) | 2020.06.10 |
주님과 함께 - 6월 9일 (0) | 2020.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