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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대표음식 커리, "정말 손으로 먹나요?"

CBS노컷뉴스 트래블팀 박정식 기자 입력 2018.06.08. 10:03 

       
        
         
  • 큰 영토만큼이나 지역별로 다양한 음식을 만나볼 수 있는 인도. 이중에서도 인도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카레(커리)라 할 수 있다.

인도로가는길과 함께 문답풀이(Q&A)로 인도의 대표음식에 대한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 보자.

한국의 백반처럼 여러 종류의 커리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탈리. (사진=인도로가는길 레스토랑 제공)
▶ 인도사람들은 카레만 먹는가?

- 아니다, 한국에서 김치만 먹지 않듯 인도 요리라고 모두 카레가 아니다. 인구 10억이 넘는 거대한 나라이다 보니 다채로운 음식을 자랑한다. 카레라는 말은 일본에서 파생된 말로 인도 현지에서는 '커리' 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화덕(탄두리)을 이용해 만든 볶음밥(비리야니)이나 빵, 피클(처뜨니), 튀김(빠꼬라) 등의 요리를 주로 먹는다. 남인도에서는 쌀가루로 만든 아주 얇은 크레페 같은 도사와 발효빵인 이들리를 주로 먹으며 북인도에서는 티벳 음식을 많이 먹는다. 특히 한국의 수제비와 비슷한 뗌뚝, 칼국수와 비슷한 뚝바가 유명하다.

맛살라는 수많은 향신료를 각각 다른 배합으로 섞은 것을 말한다. (사진=인도로가는길 레스토랑 제공)
▶ 그래서 커리란 무엇인가?

- 수많은 향신료를 각각 다른 배합으로 섞은 것을 맛살라(masala) 라고 부른다. 이 맛살라를 이용해서 만드는 밥이나 인도식 빵(난, 짜빠티 등)에 곁들여먹는 소스형 음식을 커리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카레' 라 말하면 노란색 카레를 떠올리게 되는데 인도의 커리는 수백 수천종에 이른다. 이유는 재료의 배합에 따라 음식이 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 인도음식을 먹는다면 버터치킨 커리를 선택해보자. (사진=인도로가는길 레스토랑 제공)
▶ 처음 인도음식을 먹는 사람이 가장 먹기 좋은 커리는 뭐가 있을까.

- 버터치킨과 빨락 빠니르, 치킨띠까맛살라를 추천한다. 버터치킨은 인도의 요거트(커드) 와 토마토를 베이스로 만든 부드러운 커리로 향신료를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이 꺼려할만한 강한 맛의 향신료가 거의 들어있지 않은 순한 맛이기 때문에 인도 요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토마토와 요거트가 만나서 자아내는 특유의 감칠맛과 부드러움이 일품이다. 가끔 버터치킨을 버터구이치킨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커리다.

빨락 빠니르는 과거 무한도전 인도편에서도 나왔던 커리. 녹색 비쥬얼만 보면 녹즙맛이나 쓴 맛을 상상하게 되는데 빨락은 시금치, 빠니르는 인도식 치즈를 뜻한다. 시금치를 갈아서 만든 부드러운 맛의 커리로 한 번 먹어보면 인도음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게 된다. 채식요리이기 때문에 비건(채식주의자)도 걱정없이 먹을 수 있다.

탄두리는 인도 전통 화덕을 말한다. (사진=인도로가는길 레스토랑 제공)
치킨띠까맛살라는 살짝 매콤한 커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띠까는 양념한 치킨을 탄두리 화덕에 구워낸 것으로, 거기에 맛살라를 첨가해 만든 매콤한 커리다. 많이 매운편은 아니지만 위의 커리들보단 매콤한 편으로 매운맛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커리다. 향신료를 발라 화덕에 구워낸 치킨과 감칠맛 나는 커리의 조합이라니 싫어할 수 없는 조합.
대부분 인도인은 지금도 손으로 밥을 먹는다. (사진=인도로가는길 레스토랑 제공)
▶ 인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는가?

- 많은 인도인이 지금도 손으로 밥을 먹는다. 이는 인도의 문화와 재료의 특성에 기인한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왼손을 불결하다고 생각하고 오른손을 청결하다고 생각한다. 밥은 항상 오른손으로 먹으며 인도식 빵을 찢을 때도 오른손만 이용한다.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내 오른손이 누가 쓴지 알 수 없는 대중식당의 숟가락과 포크보다 깨끗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문화와 더불어 인도식 커리는 손으로 먹기 적절한 음식이라는 점이 더 큰 이유다.

인도 커리와 곁들여 먹는 밥은 인디카종 쌀로 만든다. 이 쌀은 한국에서 흔히 안남미라고 부르는 길쭉한 형태의 쌀로 바람에 흩날릴정도로 찰기가 없다. 찰기가 없기 때문에 손가락에 끈적하게 달라붙지 않고 커리가 잘 흡수돼서 오히려 숟가락을 쓰는 것 보다 손을 사용하는게 더 먹기 좋다.

인도인들은 식사를 할 때 오감을 이용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음식의 색상과 조화로움을 보는 시각, 향신료의 향을 느끼는 후각, 식감을 느끼는 청각, 맛을 느끼는 미각, 그리고 커리와 밥 또는 난이 만나서 자아내는 촉각까지.

▶ 디저트나 후식은 어떤게 좋을까?

-인도식 밀크티인 짜이 (chai)와 요거트인 라씨(lassi)를 추천한다. 인도인들이 주로 먹는 디저트는 커스터드 푸딩이나 쌀푸딩, 달달한 간식류인 스윗인데 한국인들의 입에는 많이 단 경우가 많다.

짜이는 향신료를 넣고 진하게 우려낸 밀크티로 생강이 들어 있어 감기에 걸렸을 때도 좋다. 라씨는 인도의 요거트인 커드를 갈아서 만든 음료로 요거트 특유의 신 맛이 싫은 사람들은 망고나 설탕을 넣은 라씨를 선택하는게 좋다.

인도인들은 여기에 소금을 넣어 먹기도 하는데, 소금과 요거트의 조합이 은은한 단맛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제법 맛이 있다. 다만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하자.

인도로가는길 레스토랑을 방문하면 현지 고유의 커리를 맛볼 수 있다.
한편 인도 여행 중 맛 봤던 커리가 그립다면 인사동에 자리한 인도로가는길 레스토랑을 방문하면 된다. 현지 고유의 맛을 소개하고 있어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또 평일 점심에는 뷔페를 운영해 다양한 커리를 맛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취재협조=인도로가는길 제공

[CBS노컷뉴스 트래블팀 박정식 기자] cbsnocut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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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나이 수업’] 긴 노년, 가장 좋은 친구는 배우자

입력 : 2018-05-19 00:01

[100세 시대 ‘나이 수업’] 긴 노년, 가장 좋은 친구는 배우자 기사의 사진
<일러스트=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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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는데, 많은 날 중에서 5월 21일로 정한 건 ‘가정의 달(5)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서로 다르게 나고 자라 살아온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 낳아 기르며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는 일. 부부 하면 떠오르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라는 말은 요즘같이 황혼이혼과 신혼이혼이 넘쳐나는 때에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름답고 멋있게 느껴지는 노년의 모습에 대해 토론하거나 설문조사를 해 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노부부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가 있다. 결혼을 하네 마네, 계속 사네 마네 해도 우리들 속에는 서로가 짝을 이루어 다정하게 살며 해로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좋은 일로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는 모양이다.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살며 함께 늙어가는 것을 해로라고 하는데, 해로동혈(偕老同穴)에서 온 말로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이다. 생사를 같이하자는 부부의 굳은 맹세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친정 부모님은 60년을 사이좋게 사시다가 3년 전 어머니 88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당시 아버지의 연세는 93세였다. 묘소에 가게 되면 늘 ‘머지않아 나도 곁에 와서 눕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아버지 묘역을 돌아보는 어머니. 아버지 생전에 묘지를 장만할 때부터 합장하기로 했으니 두 분이야말로 해로동혈을 실천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부부는 자녀들 다 떠나고 남은 빈자리에 오로지 단둘만 남아서 오랜 기간을 보내게 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데다 남녀 모두 평균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긴긴 노년을 서로 소 닭 보듯이 살거나 서로 미워하며 살지 않으려면, 부부관계 점검에 나서야 한다. 젊어서 사이 나빴던 부부가 나이 든다고 저절로 사이가 좋아지거나 은퇴 후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갑자기 다정해지는 법은 없다.

새삼스럽게 할 말도 없고, 하도 오래 살아서 이제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식의 부부, 말만 꺼냈다 하면 결국 싸움으로 끝나니 그저 입 다물고 있는 게 최고라고 하는 남편과 아내를 자주 만난다. 그러나 대화 없이는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 그러니 무엇보다 대화가 먼저다. 물론 내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말을 듣는 훈련이 중요하다. 부부 사이에서 듣기 연습의 기본은 무슨 말이든 입에서 튀어나오려 할 때 한 호흡만이라도 참으며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나씩 맞춰나가며 남은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

혹시 가까이에 좋은 친구를 두고도 다른 데서 남은 인생길의 동반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부관계를 정비하고 점검한다면 오늘도 여전히 내 옆에 머물고 있는 오랜 친구인 배우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금 나의 가장 친하고 좋은 친구로 새롭게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에베소서 4:2)

▒ 사이좋고 평등한 부부로 나이들기

하나, 배우자가 원하는 것 존중하기

부부는 일심동체라고들 하지만, 엄연히 별개의 두 사람이며 개성이 각기 다른 존재다. 같이 오래 살아서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쪽이 막무가내로 자신의 뜻을 밀어붙여 강요하거나, 시끄럽고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려고 무조건 맞춰주고 따르는 건 안 된다. 지금 당장은 조용히 넘어가 평화를 찾은 듯 보이지만 불안한 평화는 결국 깨지게 마련이고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불만은 어느 순간 생각지 못한 데서 터져 나와 누군가의 몸에 병을 만들거나 관계를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 있다.

둘, 집안일 나눠하기

그동안 부부가 바깥일과 집안일을 구분해서 맡아왔다 해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일상이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집안일이다. 설거지, 청소, 빨래, 빨래 널기, 쓰레기 버리기, 장보기 등을 나눠서 하거나 함께하면 집안일을 버거워하는 아내의 힘이 덜어지고 남편에게는 홀로서기의 좋은 연습이 된다. 외출이나 여행으로 생긴 아내의 빈자리가 두렵지 않고, 먼 훗날 혼자 남게 돼도 당당하게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처음에는 아내를 돕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된다.

셋,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감사하기

무심코 바라본 배우자의 얼굴에서 나이 듦을 실감하고,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뜨거운 사랑과 열정의 시기를 지난 부부를 오래도록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서로 딱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함께 겪어낸 동지애를 계속 유지한다면 남은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갈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식구들 모두 내 덕이 아니라 당신 덕에 살았으며, 부족한 것은 당신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 생각하면서 남편을 혹은 아내를 긍정의 눈으로 본다면 저절로 감사가 우러나올 것이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삽화=이영은 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50925&code=23111413&sid1=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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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나이 수업’] 긴 노년, 가장 좋은 친구는 배우자

입력 : 2018-05-19 00:01

[100세 시대 ‘나이 수업’] 긴 노년, 가장 좋은 친구는 배우자 기사의 사진
<일러스트=이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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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2007년 법정기념일로 제정됐는데, 많은 날 중에서 5월 21일로 정한 건 ‘가정의 달(5)에 두 사람(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서로 다르게 나고 자라 살아온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 낳아 기르며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는 일. 부부 하면 떠오르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라는 말은 요즘같이 황혼이혼과 신혼이혼이 넘쳐나는 때에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름답고 멋있게 느껴지는 노년의 모습에 대해 토론하거나 설문조사를 해 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노부부가 손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빠지지 않고 꼭 들어가 있다. 결혼을 하네 마네, 계속 사네 마네 해도 우리들 속에는 서로가 짝을 이루어 다정하게 살며 해로하는 것을 부러워하고 좋은 일로 여기는 마음이 담겨 있는 모양이다.

부부가 한평생 같이 살며 함께 늙어가는 것을 해로라고 하는데, 해로동혈(偕老同穴)에서 온 말로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이다. 생사를 같이하자는 부부의 굳은 맹세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친정 부모님은 60년을 사이좋게 사시다가 3년 전 어머니 88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당시 아버지의 연세는 93세였다. 묘소에 가게 되면 늘 ‘머지않아 나도 곁에 와서 눕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아버지 묘역을 돌아보는 어머니. 아버지 생전에 묘지를 장만할 때부터 합장하기로 했으니 두 분이야말로 해로동혈을 실천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부부는 자녀들 다 떠나고 남은 빈자리에 오로지 단둘만 남아서 오랜 기간을 보내게 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데다 남녀 모두 평균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긴긴 노년을 서로 소 닭 보듯이 살거나 서로 미워하며 살지 않으려면, 부부관계 점검에 나서야 한다. 젊어서 사이 나빴던 부부가 나이 든다고 저절로 사이가 좋아지거나 은퇴 후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갑자기 다정해지는 법은 없다.

새삼스럽게 할 말도 없고, 하도 오래 살아서 이제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식의 부부, 말만 꺼냈다 하면 결국 싸움으로 끝나니 그저 입 다물고 있는 게 최고라고 하는 남편과 아내를 자주 만난다. 그러나 대화 없이는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제대로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 그러니 무엇보다 대화가 먼저다. 물론 내 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말을 듣는 훈련이 중요하다. 부부 사이에서 듣기 연습의 기본은 무슨 말이든 입에서 튀어나오려 할 때 한 호흡만이라도 참으며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나씩 맞춰나가며 남은 인생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다.

혹시 가까이에 좋은 친구를 두고도 다른 데서 남은 인생길의 동반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부부관계를 정비하고 점검한다면 오늘도 여전히 내 옆에 머물고 있는 오랜 친구인 배우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금 나의 가장 친하고 좋은 친구로 새롭게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에베소서 4:2)

▒ 사이좋고 평등한 부부로 나이들기

하나, 배우자가 원하는 것 존중하기

부부는 일심동체라고들 하지만, 엄연히 별개의 두 사람이며 개성이 각기 다른 존재다. 같이 오래 살아서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쪽이 막무가내로 자신의 뜻을 밀어붙여 강요하거나, 시끄럽고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려고 무조건 맞춰주고 따르는 건 안 된다. 지금 당장은 조용히 넘어가 평화를 찾은 듯 보이지만 불안한 평화는 결국 깨지게 마련이고 가슴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불만은 어느 순간 생각지 못한 데서 터져 나와 누군가의 몸에 병을 만들거나 관계를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 있다.

둘, 집안일 나눠하기

그동안 부부가 바깥일과 집안일을 구분해서 맡아왔다 해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일상이 돌아가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게 집안일이다. 설거지, 청소, 빨래, 빨래 널기, 쓰레기 버리기, 장보기 등을 나눠서 하거나 함께하면 집안일을 버거워하는 아내의 힘이 덜어지고 남편에게는 홀로서기의 좋은 연습이 된다. 외출이나 여행으로 생긴 아내의 빈자리가 두렵지 않고, 먼 훗날 혼자 남게 돼도 당당하게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처음에는 아내를 돕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된다.

셋,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감사하기

무심코 바라본 배우자의 얼굴에서 나이 듦을 실감하고,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뜨거운 사랑과 열정의 시기를 지난 부부를 오래도록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 즉 서로 딱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함께 겪어낸 동지애를 계속 유지한다면 남은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갈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식구들 모두 내 덕이 아니라 당신 덕에 살았으며, 부족한 것은 당신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 생각하면서 남편을 혹은 아내를 긍정의 눈으로 본다면 저절로 감사가 우러나올 것이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삽화=이영은 기자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50925&code=23111413&sid1=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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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완과 떠나는 성지순례 ‘한국의 산티아고 길’ 680㎞를 걷다] ⑫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上)

“만일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 위해 바치리라”

입력 : 2018-04-23 00:01
  • [오기완과 떠나는 성지순례 ‘한국의 산티아고 길’ 680㎞를 걷다] ⑫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上) 기사의 사진
    선교사 90명, 선교사 가족 55명이 안장된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전경. 미국 영국 캐나다 등 6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는 장로교가 36명으로 가장 많고 감리교가 25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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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숙소를 나와 광명을 거쳐 안양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벚꽃 잎이 길 위에 떨어져 꽃길로 변했다. 순례길 마지막을 축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한강이 나왔다. 1.1㎞ 길이의 양화대교를 건너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도착했다. 전남 여수 애양원을 출발한 지 27일 만이다.

아, 양화진…축복의 꽃길을 걸으며

양화진(楊花津)은 노량진 동작진 한강진 송파진과 함께 ‘서울의 5진’으로 불리던 주요 나루터다. 인천과 전국 각지를 연결하는 해상 통로의 전진기지로서 서울의 관문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이곳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한국에 들어오는 길목이었고, 서울에 머물다가 선교여행이나 선교지로 떠나는 출발지였다.

양화진은 천주교 박해와도 관련돼 있다. 조선에서 천주교에 대한 모진 박해가 있자 프랑스는 1866년(고종 3년) 군함을 파견하고 양화진에 들어와 군사 활동을 했다. 외국의 군함이 왕실 코앞까지 들어왔지만 그것을 물리치지 못한 것을 치욕으로 여긴 대원군은 무장 군인을 배치해 그해 10월 다시 강화도에 온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가 머물던 자리를 한강물로 씻어내기도 아깝다. 오랑캐를 끌어들인 천주교도의 피로 깨끗이 씻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곳에서 1만여명의 천주교 신도의 목을 베고 한강물을 붉게 물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양화진 근처 봉우리가 ‘사람의 목을 자른다’는 뜻의 절두산(切頭山)이란 끔찍한 이름이 붙게 됐다.

선교사묘원 자리는 원래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1890년 7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이자 고종의 시의, 광혜원 2대 원장으로 있던 존 헤론(1856∼1890)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헤론은 개척선교사로 조선 말 성경번역작업과 전염병 예방에 힘쓰던 중 시골 환자를 치료하다가 자신도 감염돼 안타깝게도 34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미국 공사관은 조영수호통상조약을 근거로 한양 인근에 묏자리를 제공해 달라고 조선정부에 요구했다. 조영수호통상조약에는 ‘외국인이 통상지역 안에서 사망할 경우 조선정부는 적당한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관리를 외국인 단체에 맡긴다’는 조항이 있었다.

당시 도성 안에 시신을 매장하는 일은 엄격히 금지돼 있었다. 그렇다고 무더운 여름철에 인천 제물포항 해안 언덕에 있는 외국인 묘지까지 시신을 운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양화진 근방의 빈터였다. 헤론이 양화진에 묻히게 되면서부터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의 묘비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사 자신을 내게 주셨다”고 기록돼 있다.

생명을 바친 선교 앞에 저절로 숙연해져

이때를 기점으로 2005년까지 총 15개국 417명의 외국인이 양화진에 안장됐다. 이 중 선교사는 90명(남자 36명, 여자 54명), 선교사 가족은 55명이며, 나머지 272명은 비선교사다. 선교사는 장로교가 36명으로 가장 많고 감리교 25명, 성공회 8명, 구세군 8명, 캐나다연합교회 4명, 군소교단 8명이다. 국적별로는 총 6개국으로 미국 66명, 영국 10명, 캐나다 9명, 스웨덴 3명, 남아프리카공화국 1명, 일본 1명이다.

비선교사라 하더라도 ‘매일신보’를 통해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영국인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 대한제국의 애국가를 작곡한 독일인 에케르트(1852∼1916), 우리나라 근대 사법제도 수립에 기여한 그레이트하우스(1846∼1899) 등이 안장돼 있다.

1984년까지 쓰레기와 잡초가 무성했던 이곳을 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중심이 돼 기념관 설립과 기념사업을 추진했고, 2006년 현재의 명칭이 부여됐다. 2005년부터는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가 1만3224㎡(4000평) 묘원관리 및 안내, 기념관 운영 등을 책임지고 있다.

선교사묘원은 A구역부터 I구역까지 9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묘지와 비석, 주요 선교사들의 소개글을 게시해 놨다. 묘원에 들어서면 왼쪽엔 공주 영명학교 등에서 가르치며 선교와 계몽활동에 힘썼던 찰스 A 사워(1891∼1972) 선교사와 아내 마거릿(1896∼1981), 아들 로버트 G 사워(1925∼1995)의 묘비가, 오른쪽엔 영국 출신 언론인으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베델의 묘가 있다.

이국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선교사들의 헌신적 삶은 140여개의 묘비에 축약돼 있었다. 100여년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비석과 흐릿한 글씨를 보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짤막한 묘비 문구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의 목적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나는 다시 일어나 나의 하나님께 돌아가리라.” “그리스도인, 어머니, 선교사, 모두의 벗.”

켄드릭 선교사 강렬한 묘비 문구

특히 루비 레이첼 켄드릭(1883∼1908) 선교사의 묘비 문구는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렬했다. “만일 내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켄드릭은 1907년 9월 엡윗청년회의 후원을 받아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해 개성 여학교에서 기도회를 인도하고 영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자신의 선교사역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지 평소 동료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나의 사역이 너무 짧게 끝나면 나는 보다 많은 조국의 젊은이들에게 이곳에 와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처녀 선교사였던 켄드릭은 안타깝게도 한국에 온 지 9개월 만인 1908년 6월 급성맹장염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의 장례예배에서 와슨 선교사는 이렇게 설교했다고 한다.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오히려 감사하고 더 큰 뜻을 바라봅시다.” 켄드릭 선교사의 별세 후 그녀를 파송한 텍사스 엡윗청년회는 12만 달러를 모아 켄드릭추모기금을 조성했고, 숭고한 선교 모범에 따라 다수의 청년들이 선교사로 자원했다.

선교사묘원에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128명이 묻혀 있다. 그중 선교사 자녀가 47명이다. 성인들의 경우도 여선교사가 남선교사보다 많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는 조선 땅에서 선교사역이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가늠케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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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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