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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개성

횃불 2016. 4. 25. 12:16

                          가정의 개성

                                                                                     -톰 웨스트우드


   개인은 개성을 지니며 이것은 그의 혹은 그녀의 도덕적인 영향력을 주위에 미칩니다. 이와 꼭 마찬가지로 어떤 가정에 들어갈 때도 우리는 그 가정의 개성을 실제적으로 느낍니다. 좋든 나쁘든  그것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가지의 근본적인 태도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태도들은 그 가정의 도덕적인 특성을 이루는 기초가 됩니다. 가정의 이 세 본질적인 행동 원리들은 이렇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 가족 구성원들을 향한 태도, 다른 사람들을 향한 태도 등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태도


   골로새서 3장은 신약성경 중 가정생활을 많이 다루어주는 아름다운 장입니다. 거기에는 한 보석같은 진리의 표현이 나오며 그것은 그 귀중한 배경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성히 거하게 하여"(골 3:15,NKJV). 이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바라시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이와 같이 된다면 평온함과 고요함이 깃들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혼란과 불화일 것입니다.

   이런 가정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즉각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 어머니는 사랑받고 존중받습니다. 자녀들은 훌륭한 품행의 본보기들로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정 안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안에서 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오래 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갈림길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인도자인 여호수아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책임을 일깨웠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로 이스라엘 진영 곳곳에 울려 퍼졌습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이렇게 그들에게 도전한 후 곧바로 그는 다음과 같은 공개적인 선언으로 본을 보였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모든 그리스도인 부모 편에서는 자기 가족을 위하여 이러한 태도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무엇을 의미할까요? 가정 안에는 부모의 말보다 훨씬 더 높은 명령이 존재함을 뜻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이는 부모의 권위를 말씀으로 대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씀은 오히려 아버지와 어머니의 권위를 세워줍니다.  이는 주 예수님께서 지니신 보다 높은 권위에 모든 가족이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 위에 머리" (엡 1:22, 흠정역)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성히 거하게 하여." 이 구절은 가정의 역할과 매우 실제적으로 연관됩니다. 이것은 그저 하나님께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신 존재로 인식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가정의 자비로우신 주인이 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흘리신 피는 집 바깥의 설주들과 인방에 상징적으로 뿌려졌습니다.

   이것은 식탁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식사를 구주께서 친히 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고 정기적으로 읽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 가정의 머리가 되고 계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우리의 삶을 지도하는 최고의 가치로 두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는 가정은 거룩함을 얻을 터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가족들이 모여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책은 반드시 위엄과 존중과 공손함으로 읽어져야 마땅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종교적 의무처럼 하루에 한 장씩 후다닥 읽어나갈 그런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책은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거룩하다는 의식 하에 주의 깊게 읽어야만 합니다. 성경을 부주의하게 읽는 것은 우리 자녀의 마음에 그것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주지 못합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극적이고 흥미로운 책입니다. 그 표현은 완벽합니다. 그 장면들은 역동적입니다. 그 문체는 탁월합니다. 이 책을 가족의 책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우리의 가정생활에 빛깔과 특색을 빚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훌륭한 습관과 행동에 있어서 풍부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성경을 읽는 습관은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와 우리 이웃과 우리 도시와 우리 국가를 위한 놀라운 투자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친구 사이인데 대화가 도무지 오가지 않는다면 친밀감이나 우정이 깊어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주님의 관계에서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성경 읽기 외에도 가족적으로 주님과 대화 나누는 것이 규칙적인 활동이 되어야만 합니다. 가족의 관심사, 무거운 짐, 슬픔, 기쁨, 체험, 성공과 실패 등을 그분께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가족 단위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의 이같은 기도가 종교적인 의무감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면, 그 결과는 커다란 선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들을 향한 태도


   이제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서 서로를 향한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성경이 우리를 위해서 대략적으로 말해주고 있는데 특히 에베소서 5장 21절이 그러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 상호간의 복종 부족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더 가족들 간의 많은 불화를 가져왔습니다. 자기본위는 그것이 통제되지 않을 때 모든 영역을 황폐화시킵니다. 또한 그것은 틀림없이 가정 안의 평화를 즉시 깨뜨립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은 남편과 아내와 자녀의 서로를 향해 확립된 관계들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가정의 유익을 위해 서로를 존중해주는 공통된 태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은 주로 사소한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들을 통해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그럼으로써 커다란 불화를 조장하는 듯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5:1). 이 말씀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정말로 참된 잠언입니다.

   '복종'과 "순종"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순종은 내가 다른 사람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복종은 좀 더 자발적입니다. 그것은 심지어 권위가 부재할 때조차 스스로를 질책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때때로 자신을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바람에 복종할 의무하에 둡니다. 이것은 결코 그의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자기 부모에게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 지당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부여하신 권위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종은 그것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복종은 가족의 화합을 위하여 자신의 방식 고집하기를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서 피차 복종합니다. 그들은 화평과 질서를 사랑하는 이들이고 가정 안에서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태도


   세 번째로 생각할 점은 다른 이들을 향한 그 가정의 태도입니다. 이것은 필수적이면서도 어려운 주제입니다.  우리는 어떤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정이라는 도덕적인 기관을 세우시고 거기에 속한 이들이 모두 유익을 누리기를 원하셨으나, 그 기관을 파괴하기 위하여 사단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가정 안에서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사단의 역사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가 별거와 이혼과 격렬한 말다툼과 다른 지독한 일들을 통해서 가정을 무너뜨린 데서 나타납니다. 그것들은 원수가 가정이라는 기관을 파괴하려 한다는 증거들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단은 훨씬 더 교활한 계략을 구사하는데 이를 간파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허무는 데에 실패한 가정들을 자기중심적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그는 가정들을 가족 자랑과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게 했고 이는 거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도의 자기만족이라는 원리를 따라 행하는 그리스도인 가정이 허다하다고 말해야 함은 슬픈 일입니다. "우리 집은 괜찮아요. 질이 안 좋은 애들은 다 저쪽 거리에서 살아요. 그 남자애들은 천박하고 고약한데 우리 아들들은 그렇지 않답니다. 또 이웃집 여자애들이 짓는 그런 죄도 우리 딸들은 상관이 없어요." 이것은 자기 가족은 잘못된 일을 행할 리 없다는 식의 흔히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가정생활이 그러한 자부심으로 가득 채워질 때 그것은 참으로 그릇된 상태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런 허풍스런 사고방식을 지녀서는 안 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알던 한 그리스도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집의 현관문 바로 안쪽에는 액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무언가를 되새기도록 하기 위해서 거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액자에는 다음과 같은 한 단어가 기록되었습니다. "타인들." 그들은 자기 가정에만 파묻히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업적과 성취에 몰두하는 대신, 그 가족은 언제나 다른 이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이지 않고 접대를 잘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이 다 그래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롬 12:13)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 13:2). 가정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볼 때 우리 자신에게 지나치게 사로잡히는 것보다 더 위험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평온하도록 복주셨나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의 구성원들이 화목을 누리도록 복주셨나요? 만일 그렇다면 그와 같이 해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분은 우리 가정이 천국의 대기실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가정을 찾아오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평안과 기쁨의 분위기를 맛보게 되는 그런 가정을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성히 거하게 하여." 이 구절이 우리의 가정에 정말로 적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 가정 안에서의 교제를 단 한 번도 즐겨보지 못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가정이 풍요로워질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축복을 얻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머무셨습니다. 그 때 그분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거절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명성을 얻지 못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다니에 한 가정이 있었고, 그들은 그분을 기꺼이 자기 가정 안으로 모셔들였습니다. 주님은 이웃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주님은 또한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을 자기 가정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면서 마르다와 마리아는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그들이 그리스도를 자기 집에 영접함으로써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사 가족에게 돌려주어 저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주님은 그 사건이 있기 바로 얼마 전에 그 가정을 찾아가셨던 그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접대를 베풂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얻게 되는지릃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주 예수님을 직접적인 손님으로 모시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의 백성들을 초대하여 우리의 가정생활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로 이루어진 대가족의 한 지체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히 묶여진 그런 관계입니다.

   우리 가정의 참다운 개성은 어떠한지를 생각해보도록 주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가족 피차간에, 가정 밖에 있는 이들을 향하여 우리는 합당한 가족적 태도의 기초 위에서 도덕적 특성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가정의 하나됨을 이룰 수 있을까요?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할 때에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오직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할 때에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때에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이기심과 자랑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좀 더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해주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는 여호수아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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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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