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04 순교자와 전도자(6-8장)


요절 : 사도행전7장 56절, 8장 22절

요점 :

1. 그리스도인은 물질 문제에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2.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교회를 공격합니다.

3.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든지 죽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4. 교회의 박해는 유익한 것일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6.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스데반의 사역, 증거 그리고 죽음


1. 일곱집사를 택함(6:1-15)


이제 막 시작된 교회의 그 다음 어려움은 헬라인 중 몇 사람들이 불평을 할 때 오게 되었습니다. 이 신자들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신자들이 돈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않기 때문에 그 헬라파 유대인들의 과부들이 소홀하게 대해진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항상 어떤 것에서 불일치 하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열 두 사도들은 교회의 돈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그들이 말씀 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이 일을 위해 일곱 명을 지명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삶에서든 교회에서든 돈 문제가 적절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려움의 또 다른 형태는 또다시 교회 밖에서 오게 되었는데, 예루살렘에 온 순례자들 중 몇몇이 이 교리에 관해서 스데반과 논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논쟁에서 이기지 못하자 그들은 그가 성전에 대해 거스르는 말을 했다고 송사하였습니다. 논쟁은 좀처럼 어떠한 유익도 이루지 못합니다.


2.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응답함(7:1-8)


그들이 스데반을 고소하려고 공회에 끌고가자 스데반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유대 백성들의 죄악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이스라엘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12-25장에는 아브라함의 전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믿고 순종했다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주의 사자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거절한 사람들은 전혀 듣지 못했던 사람들보다 더 악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3. 요셉은 시기를 받았지만 영화롭게 됨(7:9-16)


그후에 스데반은 아브라함의 증손자였던 요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요셉의 열 형제들은 그들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말로 인해 그를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야곱의 아들들 중에 우두머리가 되도록 선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거절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 요셉에 대한 이야기는 창세기 39-50장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과 그 형제들의 자손들이었기에 스데반은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은 20에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고 그리스도는 은 30에 팔렸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높이셨습니다.


4. 처음에 거절된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됨(7:17-43)


이제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위대한 율법 수여자로 매우 높게 평가하는 모세의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교육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어느날 그는 이스라엘 사람 하나가 애굽인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자 자기의 형제를 돕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도우려했지만 그들이 "누가 너를 우리의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고 대들며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40년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의 속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려고 애굽으로 다시 보내셨습니다(43절). 그리고 이제는 그 백성들이 모세를 기쁘게 영접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백성들이 거절하지만 결국 그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오래전에 모세가 한 말인 하나님께서 어느날엔가 자기와 같은 또다른 선지자를 일으키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상기시켰습니다(37절).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요1:17) 이 약속이 성취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주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광야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셨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거절하여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는 복을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아들이기 원하십니까?


5. 처음부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함(7:44-53)


유대인들은 스데반이 그들의 놀라운 성전이 파괴될 것을 말했다고 고소했습니다(6:14). 그러나 지금 스데반이 나타낸 것은 성전조차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성령님을 거역했다고 분명하게 선언한 것입니다(51절).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였고, 지금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받은 율법 조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그렇게 말한 스데반의 용기를 찬양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들에게 자기를 죽일 권세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찌하든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자신의 엄청난 죄책을 깨닫고 용서받기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도 자기의 죄가 매우 악하다는 것도 끝내 깨닫지 못하고, 구세주에 대한 어떤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그것에 대해 영원히 벌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를 기뻐할 것입니다.


6. 스데반이 깊이 잠듦(7:54-60)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은 광분하여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스데반에게 하늘의 환상을 보이셨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셨습니다. 백성들이 이 말을 들었을 때, 큰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고 가서 죽기까지 큰 돌들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죽기 전에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과(눅23:34) 동일한 기도를 했습니다.

   신자가 깊이 잠들었다고 하는 것은 죽었다는 말에 대한 또다른 표현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위해 순교한 첫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수 천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당신도 필요하다면 주님을 위해 기꺼이 순교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매일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 사마리아와 아프리카까지 전파됨


1. 사울의 핍박과 빌립의 기적(8:1-8)


우리는 사울에게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도울 때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가 어떻게 하나님께 회심했는지와 그의 이름이 어떻게 바울로 변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때 사울은 니고데모처럼(요3장) 유대인의 랍비(선생)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새로운 가르침이 사단에게 속했다고 확신하여 그들을 진멸하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울은 길리기아성 다소사람으로, 아마도 6장 9절에서 스데반과 논쟁했던 자들중의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흩어버리고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하는 대로 감옥에 던져 넣었고 사도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여러 나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복음을 더 멀리 전파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에 관해서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핍박은 그들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려고 필요했을 것입니다. 어쨌든간에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듣고 구원을 얻게 되는 복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교회의 물질을 관리하기 위해 사도행전 6장에서 선택된 집사들 가운데 한 사람(스데반)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 빌립은 지금 사마리아 성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게 되는 또 다른 특별한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 도시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8절).


2. 시몬이 믿고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음(8:9-17)


이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사단의 능력에 의해서 사람들을 속이는데 사용되었던 시몬이라 불리는 마술사였습니다. 이제 그도 말씀을 듣고 믿어 침례를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 9절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의 지역(유대)에서만 아니라 사마리아에서도 주님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 그래서 지금 그들의 아주 오랜 대적의 땅이 복을 받았다는 것을 듣게되어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내려갔으며 그들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심으로 그 사마리아인들을 받으셨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또한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며 우리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때문에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거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3. 시몬이 하나님의 선물을 사기를 원함(8:18-25)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본 시몬은 놀라워 했습니다. 그가 갖고 있던 돈은 아마도 그가 전에 사단적인 힘으로 사람들에게서 번 것일 것입니다. 지금 그는 사도들의 특별한 특권을 사서 자기가 사용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회개하지 않는다면 돈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하였고 시몬은 베드로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한 것은 시몬이 행한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안에는 돈으로 어느정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선물에 대해 값을 지불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던지 모욕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신 구세주를 영접하기를 원하시며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은혜에 대해 주님께 사랑을 나타내려고 우리의 물질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4.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남(8:26-29).


지금 이러한 모든 복과 기쁨이 사마리아에서 보여지고 있을 때 빌립은 갑자기 광야로 가도록 불리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일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빌립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프리카의 큰 나라인 에디오피아로부터 온 권세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의 나라로 병거를 타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에 관해서 들었겠지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평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에는 신약성경이 아직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구약으로 된 성경을 읽으며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은 빌립에게 병거에 있는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거룩한 도성으로 알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진리를 참으로 알았던 유일한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성공적으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까지 온 이 사람은 만족함 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종(빌립)이 있었기에 이 내시에게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빌립이 예언의 뜻을 설명해 줌(8:30-35)


지금 그 에디오피아 사람은 구약성경 가운데 다른 어떤 책보다도 예수님에 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는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53장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해서 말하고 있었지만 에디오피아 사람에게는 그것이 선지자 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지 확실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내시에게 그 선지자는 참으로 영광에 들어가시기 전에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받으신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받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셨더라도 주님께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영광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홀로 하늘에 영원토록 계셔야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은 어떤 죄도 들어갈 수 없는데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슬픈 일은 주님께서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을 겪으셨는데도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이 당신에게도 헛된 것입니까?


6. 빌립이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침례를 주고 돌아감(8:36-40)


에디오피아 사람은 주 예수님에 관한 장엄한 이야기를 즉시 믿었으며 자기의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바로 침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빌립은 기쁨으로 침례를 베풀었고 그 일을 마치자 성령님께서 그를 데리고 가심으로 에디오피아 사람은 더이상 그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예수님을 알게 된 기쁨으로 그의 길을 계속 갔습니다. 우리는 그가 고국에 도착했을 때 고난 받으시고 영화롭게 되신 구세주에 대해 여왕과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한 사람 빌립의 충성스러운 순종을 통해서 아프리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8장에서 사도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복음을 퍼뜨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보내시든 주님께 기꺼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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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2과    하나님의 진노

                                                      (1장 18절~3장 20절)


   복음이 사람들에게 왜 필요한가?


   간단히 말한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저버린 인류는 지옥의 선고를 받아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1.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버림 받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러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19절~32절의 말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ㄱ)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19,20절).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해와 달과 별과 인체와 동물과 식물의 존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를 창조주로 깨닫고 자기를 경외하며, 또한 그가 우리를 위해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며, 여러 가지 형태의 축복을 주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ㄴ)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 하는 만물의 증거를 거부하였습니다(21,22절)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은 이것들을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삼았습니다(23절).


   ㄷ) 물론 이런 죽은 우상들은 사람을 감화시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참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새겨 만든 우상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저희를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24절). 이와 같이 사람들은 점점 불신앙의 흑암과 부도덕 속에 깊이 빠져서 마침내는 26절과 27절에 나타나 있는 성적 타락에 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은 29절~31절에 나타나 있는 무서운 죄로 가득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이방인을 가리켜 버림받은 죄인이라고 한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의 경우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합니다(2:1~3). 물론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고 해서 정죄함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ㄱ) 유대인들은 이웃 이방인들을 비방하면서 자신들도 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1절).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즉시 벌하지 않는 까닭에, 그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3절).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4절), 그들은 계속 죄를 지으므로 심판 날에 임할 그들의 죄의 대가를 가중시키고 있었습니다(5절).


   ㄴ)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2절~6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본 원칙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내함으로 계속 선하게 살면서 영광과 존귀와 영생을 구한다면, 그는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7~10절). 그러나 이 말씀은 이와같은 방법으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3장 19절과 20절의 말씀은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을 만한 육체가 하나도 없음을 결론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ㄷ)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절대 공평할 것입니다(11절). 율법을 받은 자들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12절),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옳고 그름을 말해 주는 그들 자신의 양심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14,15절)


   ㄹ)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여러 특권들을 자랑하였습니다(17~20절).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전했던 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1~23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24절). 그들은 할례와 같은 종교의식은 거기에 따르는 실제 생활이 없는 한,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25~29절).


   ㅁ) 유대인도 버림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은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뜻(3:1)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맡겨졌습니다(2절). 하나님은 그들을 불성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한결같이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묵과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3~8절).


   3. 그러면 결론은 무었일까요? 결국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3:9~23절)


   ㄱ) 구약 성경은 죄가 전 인류에게 감염된 사실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10~12절).


   ㄴ) 또한 구약 성경은 죄가 사람의 몸 즉,목, 혀, 입술, 입, 발 그리고 눈, 기타 모든 부분에 다 감염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3~18절).


   ㄷ)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정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정죄하고 있습니다. 19절의 말씀은 하나님 앞에 유대인이 전 인류의 좋은 본보기가 됨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보기인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시험하셔서 그들이 죄인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므로 그 본보기를 근거하여 전 인류를 죄인이라고 선고하셨습니다. 율법은 전 인류의 유죄성을 노출 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전혀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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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개 요


                          제12과 밖을 보고, 위를 보라!


                                         히브리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확실치 않으나, 본서를 바울 서신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바울 서신에 포함시키지 않고 제 12과에 본서를 배치했습니다. 결국 본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확실히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가장 무난할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파되는 복음을 듣고 이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고백한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지극히 단순하여 유대교의 복잡한 예식과는 지극히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대부분은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 기독교를 버리고, 성전이라든가 제단이라든가 제사장이라든가 제물 등의 볼 수 있는 유대교로 돌아 가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히브리서 저자는 이제껏 세상에 있던 어떤 종교보다도 기독교가 우월하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이들에게 보여 주려 했던 것입니다.

   1.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장막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 성도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가 예배를 드립니다.

   2. 사람들은 죄인으로서 언젠가는 죽게 될 사람을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으나, 우리들은 거룩하시고 불의가 없으시며 쇠하지 않고 죽지않는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습니다.

   3. 유대교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으로서, 일시적이고 불완전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그림자요, 모형이요, 그림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것은 없을지라도 참되고 영원합니다. 기독교는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으며,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도 없습니다.


                                     야고보서


   본서는 우리 주님의 형제로 생각되는 야고보가 당시 세상 끝까지 흩어져 있던 유대인 성도들에게 쓴 서신인데, 서신서 중에서 최초의 편지로 분별됩니다. 아마도 본서는 교회 성도의 대부분이 유대인이었고, 그래서 유대인의 관습이 많이 남아 있던 초대 교회 시대에 씌어진 듯합니다.

   이 야고보서는 아주 실제적인 편지로서, 저자는 계급적인 차별이나 길들이지 못한 혀나 시기나 다툼이나 가난한 자에 대한 압제 등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저 입술로만 믿는다는 믿음과 선한 행실이 동반하는 믿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야고보의 가르침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믿음이 있으면 선한 행실은 따르게 마련이라고 주장할 따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고난 중에 인내하며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면서 본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베드로 전서는 핍박으로 인하여 말할 수 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던 소아시아 지방의 유대 성도들에게 씌어진 편지로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고난 저 편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게 될 때에는 아무리 현실이 어려울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큰 핍박이 몰려온다 할 지라도 그리스도의 보혈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누리게 될 성도의 기업은 결코 쇠하지도 아니하고 빼앗아 갈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거룩하게 생활하셨던 주님을 본받으라고 강조하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 때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한 가정의 남편이나 아내로서, 종으로서 충성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장로들에게는 충성할 것을 권면하는 동시에 청년들에게는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 후서


   베드로 후서는 데살로니가 후서나 디모데 후서와 더불어 완전히 타락하게 될 기독교계의 말세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분명히 임할 것이며, 선악 간에 행한 것을 따라 상급을 받게 될 터이니, 모름지기 성도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라고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2장에서는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할 것이지만, 필경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으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3장에서는 마지막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나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심판은 너무나 자명한 진리라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더욱 부지런해야 하고 거룩해야 하며 믿음을 굳게 하고, 주 예수님의 오심을 고대하면서 은혜 주시는 대로 자라가야 한다고 권면하였습니다.


                                            요한 일서


   이 책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성도가 지닌 특성에 관해 상세히 기록해 줍니다.

   인간적으로도 자식은 부모를 닮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과 닮은 성품은 어떤 것들일까요?

   1. 성도는 어두움 가운데 행하지 않고 빛 가운데 행합니다. 성도라면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2. 성도가 범죄했을 때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그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3. 성도는 모름지기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합니다.

   4. 성도는 성도 상호 간에 형제애로써 사랑합니다.

   5. 성도는 언행심사를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6. 성도는 성령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7. 성도는 세상을 능히 이깁니다.

   아울러 사도 요한은 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오해를 지적하면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신에대한 모든 개념은 이방 종교라고 했습니다.


                            요한 이서와 요한 삼서 


   요한 이서와 요한 삼서는 그 내용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자못 흥미롭습니다.

   요한 이서에서는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이러한 자들을 용납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반면, 요한 삼서에서는 참 신자들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러한 자들을 접대하며, 이들에게 친절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요한 삼서에는 세 인물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이오는 경건하고 손님을 잘 접대함으로 칭찬을 받았고, 디오드레베는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으며, 데메드리오는 꾸준한 생활 간증에 대해 칭찬을 받았습니다.


                                         유다서


   유다서에는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멸시하는 배도의 죄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저자는 타락했던 이스라엘과 타락했던 천사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등의 세 가지 사건을 인용하여 배도자들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되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아울러 유다는 구약 인물들을 인용하여 세 부류의 배도자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가인은 인위적인 종교를 고집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했습니다.

   2. 발람은 신령한 일을 핑계삼아 돈 벌 궁리만 했습니다.

   3. 고라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규칙을 어기고 반역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공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면서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사도 요한이 본 계시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완성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미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분별에 도움이 될까 하여 본서를 몇 부분으로 분류해 보았습니다.

   1 - 3장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당시의 교회들에게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교회사에 나타나게 될 여러 교회의 모습을 간략하게 묘사해 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4,  5장에서는 하늘에서 성도들이 보좌를 중심으로 모여 어린 양께 경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많은 성도들은 이 사건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의 백성들을 데려 가신 후에 일어날 것으로 분별하고 있습니다.

   6 - 19장에는 야곱의 환난의 때요, 대환난으로 알려진 기간에 불신 세상에 쏟아지게 되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심판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상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최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심판들로 대적들을 진멸하시기 위하여 친히 오실 것입니다.

   20 - 22장은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무저갱에 감금하시고 천 년동안 세상에서 통치하실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끝나게 될 때 주님은 창세 이래의 모든 악인들을 심판하시어 불못에 던지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마지막이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음에 반하여, 신약 성경의 마지막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이라는 말씀으로 끝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결국 신구약 사이에 갈보리 십자가가 있었음으로 저주가 은혜로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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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경  개 요


                                          제10과 바울 서신(1)


                                                    로마서


   사도행전이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음에 반하여, 서신서들은 교회에 관한 위대한 진리와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음은 그 좋은 실례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은, 죄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 나라에 가기에 합당한 자로 보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로마서를 통하여 바울은 두가지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1.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 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오직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은 세 가지 사실을 부연했습니다.

   1.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율법을 지킨다거나 선을 행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2.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원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를바가 없다.

   3. 신약 시대나 구약 시대나 구원을 얻는 방법은 동일하며, 예수의 이름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없다.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를 설명하고나서, 바울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된 자로 여기고, 이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일편 단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심령에 거하셔서 성도가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한편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언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젖힘을 당하고 있는 현재 상태는 완성적인 상태도 아니며, 최종적인 상태는 더더구나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잔존자들이 주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성취하신다고 주장했습니다.

   12-16장은 특별히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서나 국가에 대해서나, 세상에 대해서나, 성도 상호간에 있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로마서는 가장 기본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치는 서신이라고 분별됩니다.


                                                   고린도 전서


   고린도 전서는 고린도 교회에 어려운 문제들이 있으며 ,이에 대해 성도들이 궁금해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이를 해결할 목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아래에 열거하는 내용을 보게 되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이에 대해서 바울이 어떻게 처리했던가를 알게 될것입니다.

   1. 분파를 일으키며 분쟁하고 있었습니다(1-4장). 고린도 성도들은 지도자된 인간들을 각기 높이고 있었으므로, 육신적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2. 범죄하고 있는 성도가 있었습니다(5장). 이에 교회가 이를 방치해서는 안될뿐더러 회개하고 죄를 버릴 때까지 그 성도를 출교시키라고 명했습니다.

   3. 성도 간에 송사하고 있었습니다(6:1-11). 이에 성도 간의 문제는 성도 간에 해결해야 하고 송사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4. 순결을 지키지 않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6장). 이에 성도의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전으로서, 음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처사라고 했습니다.

   5. 결혼 문제에 관해 무분별했습니다(7장). 이에 바울은, 결혼이 의무는 아닐 뿐더러 때로는 독신으로 생활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쳤습니다. 동시에 바울은 부도덕을 예방하기 위해서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는 것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분별했습니다.

   6.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습니다(8-10장). 이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잘못일 것까지는 없지만, 다른 성도들에게 걸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7. 공중 예배에서 여자들의 태도가 무질서했습니다(11:1-16). 이에 여자들은 머리에 너울을 씀으로써 권세 아래 있는 것을 천사들에게 증거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8. 주의 만찬을 행함에 있어서 질서가 문란했습니다(11:17-34). 이에 먼저 자신을 살핀 연후에 이 예식에 참여하라고 책망했습니다.

   9. 신령한 은사들에 대해 그릇 생각하고 있었습니다(12-14장). 이에 대하여 바울은 특별한 은사라고 해서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이 아니며, 사랑이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10. 부활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15장).이에 대한 바울의 해명인 15장은 몸의 부활에 관한 진리를 가장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1. 가난한 자의 구제를 소홀히 하고 있었습니다(16장). 이에 대하여 바울은,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연보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본서의 끝을 맺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고린도 후서에는 두 가지 주요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과 사도로서의 사역을 변호하였습니다. 당시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은 주 예수님의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바울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의 중대성을 설명한 뒤에,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얼마나 가혹한 시련을 당했던가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봉사를 거짓 교사들의 활동에 비교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들 자신이 바울 사역의 증거들임을 상기시켰습니다.그들은 바로 바울로 인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2.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성도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주도록 호소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부유하신 분이면서도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가난해지셨던 주님을 본받아 너그럽게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갈라디아서


   바울이 갈라디아를 방문하여 교회를 세운 후, 갈라디아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며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잘못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강경하게 반박했습니다.

   1. 자신의 사도 직분은 오직 주 예수께서 주신 것이므로 자신이 증거한 말씀은 거룩하다.

   2.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지 율법을 지킴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하거나 정죄할 수는 있어도,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주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일단 구원을 받게 되면 율법의 저주에서도 속량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이제 율법 대신 그리스도께서 곧 생활의 규범이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라고 격려하는 동시에, 더이상 율법 아래에서 종노릇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또한 십자가는 구원을 얻기 위한 인간적인 모든 노력에 종지부를 찍어 주고, 이제는 육신적인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친다고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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