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하를 얻고도


                              99%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아주 좋은 명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중에서 마음에 맞는 것들을 골라 좌우명이나 가훈으로 삼곤 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니 "고진감래(苦盡甘來)" 니 하면서 좋은 글을 통하여 뜻을 기리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것중의 하나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라 하는 것입니다. 뜻은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입니다. 세상에 많은 글과 명언이 있지만 이처럼 좋은 글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자기 일은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하셨고 "심은대로 거둔다."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동의 귀중함을 말씀하셨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1) 고 하셨습니다. 농사를 짓는다거나 봉사를 한다거나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은 지극히 합당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는 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란 말처럼 무책임한 말도 또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한다." 하는 것은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아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하는 말은 어떻게 들으면 좋은 말 같지만 그렇게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하는 두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병원의 의사가 수술전에 항상 하는 말이 "최선을 다하겠다." 하는 말이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합니까? 의사가 밖에 나와서 고개를 떨구곤 "최선을 다 했습니다만." 하는 것을 여러번 보아 왔습니다.

   최근 우리 교회에 새로이 나오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6년전에 혈액암을 진단받고 투병중에 있을 때, 병원 의사로부터 골수이식수술을 받으면 99%  완치된다고 해서 막대한 돈을 들여 수술을 받았습니다. 얼마동안 낫는 것 같다가 도로 재발하여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99% 낫는다 했지만 99%는 100%가 아닙니다. 99%나 100%는 1%차이지만 99%는 뭔가 부족한데 비하여 100%는 부족함이 없는 그야말로 완전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100%가 어디 있습니까? 100% 낫는 약이나 100%고치는 수술이 어디 있습니까? 그저 "최선을 다한다" 뿐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구원에 있어서 언제나 100%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100%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천국과 지옥의 중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100% 순수함

   100% 의로움

   100% 온전함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조건입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방금 태어난 당신의 아들을 보고 "이 애는 99%가 사람이구만" 했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자기의 자녀들이 100% 하나님의 자녀이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히브리인의 욕설)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0-22)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러나 누가 그렇게 완전할 수 있습니까? "미련한 놈" 이라 했다해서 지옥 불에 들어간다면 우리 중에 지옥에 안 갈자 누구입니까?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으로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7, 28)

   음욕을 품어도 죄가 된다면 우리 중에 깨끗한 자 누구입니까?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6)

   이러한 것이 우리의 형편일진대 "최선을 다한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하셨는데 죄인이 최선을 다했다해도 이미 죄가 있으니 아무리 잘해도 99%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러면 99%신자는 어디에 가겠습니까?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큰 계곡이 있는데 절벽 이쪽에서 절벽 저쪽까지 거리가 100m입니다. 자동차로 달려서 그 계곡을 건너가는 시합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50m,또 어떤 사람은 60m에 떨어졌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99m를 갔습니다. 그 99m를 간 사람이 그보다 못한 사람과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 똑같지 않습니까? 100m가 아닌 사람은 다 똑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100%가 아니면 "0" 입니다.

   물에서는 큰 바위뿐 아니라 작은 모래알도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작은 모래알도 물보다는 무겁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도 우리를 지옥에 앉히기에는 넉넉할 정도로 무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롭게 되기 위한 육체의 노력을 그만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 4:2)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은혜를 힘입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는데 있어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대신 하나님 편에서는 막대한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구원하는데 있어서 온전한 제물이요 충분한 대가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 우리를 거룩하다 하십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영원히 온전케 되었다고 하십니다.

   "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7,18) 죄를 인하여 다시 제사 드릴 것이 없다 하시는 것은 죄값을 이제 다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주님의 희생과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누구이든간에 100%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7,28)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2:8,9)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도 그 못자국 난 손을 들어 우리를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김우종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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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미래를 생각하라

                                                                         -윌리암 맥도날드(William MacDonald)

 

   단 한 번뿐인 인생

 

   이 세상을 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외의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는 이 사실은 어떤 인생이 최선의 인생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9장 4절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생애를 보여 주는 말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생각은 삶의 위대한 동기를 부여해 주는 동력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때가 아직 낮이매", "밤이 오리니",

   "단 한 번뿐인 인생"

 

   마치 뜨겁게 달구어진 쇠도장을 찍듯 이런 말씀이 영혼에 불같이 타들어간다면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번 뿐인 삶! 단 한 번뿐인 인생! 지극히 엄숙한 선포입니다.

 

   우리는 한 번뿐인 인생의 가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여러분의 인생의 가치는 어는 정도입니까? 값을 받고 여러분의 인생을 판다면 얼마를 매길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감히 인생에 가격표를 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또한 각자의 인생에 잠재되어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요한이 될 수 있는 반면 유다가 될 수 있으며, 바울이 될 수 있는 반면 빌라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선함과 악함, 가치와 무가치, 행복과 절망 사이에 경계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도 흘러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절대 낭비되지 말아야하며 반드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일에 부어져야 한다는 것과 이 사실을 확신하는 신성한 여정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죄악은 현실이기에

          인생은 허비할 것 못되리라.

          사람의 연수는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고,

          떨어지는 빗물방울과 같아

          허비하며 세월 보내기엔 너무 짧은 인생이리라.

          이 땅에선 오직 진실해야 할 뿐이니

          많지 않은 인생, 오직 한 번이 있을 뿐

          한 번, 오직 한 번뿐인 인생.

          그 한 번의 인생, 그 좁은 막간,

          아, 얼마나 성스러워야 하리요!

          새로운 복된 수고로 채워져야 할 나날,

          새로운 수고로 채워지는 나날이 있을 뿐이라!

 

                     - Horatius Bonar (호라티우스 보나르)

 

   이 시를 보면 어니스트 타담(C. E. Tatham) 이 한 번 뿐인 인생의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예화가 떠오릅니다.

 

   식료품점에서 장을 보고 있던 한 어린 소녀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물건을 다 구입하고 나서 소녀는 어머니로부터 과자를 사먹으라고 돈을 조금 받았습니다. 이 소녀는 진열장 앞에 서서 많은 유리상자에 들어있는 과자를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마침내 소녀는 한 과자상자를 가리키며 "이거 하나 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가게 점원이 상자를 집으려 하자 소녀는 다른 과자상자로 시선을 돌리더니, "죄송하지만 그거 말고 이걸로 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소녀가 여러번 결정하지 못하고 점원에게 수차례 반복해서 부탁하자 화가 난 어머니는 "애야, 그만 빨리 정해야지!"라며 소녀를 나무랐습니다. 소녀는 아주 재치있게 대답했습니다. "엄마, 그렇지만 이 동전 하나로는 하나 밖에 살 수 없잖아요."

 

   "동전 하나로는"

   "단 한 번의 인생으로는"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동전 하나의 인생을 꼭 현명하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동전 하나의 인생이라는 진리를 되새겨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대영제국의 왕이었던 조지 5세는 책상 위에 좌우명을 하나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이 좌우명은 19세기 초 미국의 퀘이커파 신자였던 스테판 그렐렛(Stephen Grellet)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단 한번만 살아가리라.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선행이나 친절을 베풀 일이 내게 있다면 결코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 두 번의 기회는 없기에 결코 미루거나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아비스 B. 크리스챤센(Avis B. Christiansen)의 시에서도 동전 하나의 인생에 대한 엄숙한 선포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 뿐인 나의 삶, 나의 주 나의 왕께 드리리라

          하나 뿐인 나의 입, 찬양하며 그 자비를 노래하리라

          하나 뿐인 나의 헌신, 아! 나의 구주시여

          비할 수 없는 영광에 온전히 드려져야 하리라

 

          내게 속한 찰나의 시간, 이것조차 드려져야 드려져야 하리라

          모든 순간이 영원한 나의 주께 헤아려져야 하리라

          세상 모든 혼은 죄와 부끄럼 속에 죽어 가니

          나를 도우사 갈보리의 흘린 피로 모든 혼을 인도하소서

 

          하나 뿐인 나의 삶, 사랑하는 주님 거둬주소서

          나의 주님 주신 일, 지체 없이 순종하리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예수님,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 이 삶을 사용하소서

          모든 순간을 사용하소서     EMM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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