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우리는 빼앗겨왔다


프린스 목사님은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빼앗겨왔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이 장을 다 읽고 보니,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유대감을 빼앗겼다는 말이었다. 4장에서는 우리가 왜 이것을 빼앗기는지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지금까지 들어왔고 또 믿어왔던 하나님은 우리를 만족스러워 하실 때도 있지만 우리에게 노하실 때도 있는 하나님이었다. 우리가 바르게 행할 때는 만족스러워하시고 우리가 그릇되게 행할 때는 노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이런 신자들은 은혜의 새 언약이 아니라 여전히 율법의 옛 언약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율법 아래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의를 요구하지만, 은혜 아래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의를 공급하신다. 율법 언약의 강조와 부담은 사람의 행함 위에 있지만, 은혜 언약의 강조와 부담은 하나님 자신의 행함 위에 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은혜의 새 언약을 세우러 오셨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8장 12절에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우리 죄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즉, 우리에게 더이상 노하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 너그러워지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처벌을 남김없이 철저하게 다 행하셨다. 어디서? 십자가 위의 예수님 위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화와 진노는 십자가의 예수님 몸 위에서 이미 다 소진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노하실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신자들이 패배의 삶을 살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하신다는 거짓말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프린스 목사님은 말한다. 그들은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하신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피한다. 해결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해결로부터 달아나버리는 꼴이다.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신 일 덕분에, 더이상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에 따라 우리를 만족스러워 하실 때도 있고 우리에게 노하실 때도 있는 옛 언약 아래 있지 않다. 오늘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늘 우리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러워 하신다. 프린스 목사님은 이 진리를 앎으로 더이상 사랑이신 하나님과 자애롭고 너그러우신 우리 구주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빼앗기지 말라고 권한다.


이 진리를 아는 것은 사람들의 삶을 방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격하게 변화시킨다. 여기 한 형제의 간증을 소개한다.


이 형제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은혜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부모님의 강요로 할 수 없이 억지로 교회를 다녔었다. 고등학생 때는 이미 폭력단에 들어가서 범죄, 절도, 공공시설 파괴 등 온갖 악행을 일삼게 되었다. 부모님, 선생님, 상담사가 다 그를 도우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곧 퇴학을 당했고 이제 아예 전업 폭력배가 되어 심한 음주와 흡연은 물론 무장 강도질까지 하게 되었다. 그의 인생이 점점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간절히 그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마귀에 의한 이 속박은 한 아가씨를 만남으로써 끝이 나게 되었다. 그 아가씨는 그에게 은혜의 복음을 전해 주었고 교회로 인도했다. 그는 예배 중에 사람의 사랑을 뛰어 넘는 사랑을 느끼고 울다가 마지막에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죄인의 기도를 드렸다. 그 후 그의 삶은 과격하게 변화되었다. 예수님 안에서 그의 행위에 상관없이 그가 여전히 의인임을 고백함으로써 수 년간 계속하던 음주와 흡연을 끊을 수 있었고 여러 가지 다른 나쁜 습관으로부터도 구원받았다.


그 형제는 그를 변화시킨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설교하면 사람들이 나가서 죄를 더 많이 지을 것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증거한다. 그는 이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복된 소식을 널리 전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용서하심을 더 많이 깨달을수록, 우리는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들과 우리가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들을 다스리는 능력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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