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라. 그리하면 승리하리라!"
- William MacDonald
[ 제 9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얻은 생명 (본문: 눅 23 : 32, 39-43)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때, 예수님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양편에 다른 두 강도들도 그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주전 약 7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로 예언한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으리라"(사 53 :12)고 하는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이제 그 당시의 생생한 현장 장면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다른 군중들과 더불어 예수님 곁에 달렸던 두 강도들 또한 처음에는 예수님을 향하여 조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 두 강도들은 자신들마저 십자가의 형벌로 그 참혹한 고통을 받고있는 와중에서도 아무 죄 없이 자신들의 곁에서 함께 고통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 예수님을 향해 조롱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도 참 기이한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조롱하였습니다. "만일 네가 주장하는 사실대로 이스라엘 왕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아니면 너의 아버지 하나님이 친히 와서 너를 구원토록 하게 하라. 그 때 네 자신도 구하고 그리고 나서 동시에 우리도 구원하라.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믿겠노라"
그런데 잠시 후, 두 강도 중에 한 행악자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돌이키며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이 사람은 자신의 동료 죄수를 꾸짖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는 네가 곧 죽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와 같이 말하는 네 자신이 두렵지도 않느냐?"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너와 나는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마땅한형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 사람은 결코 아무 죄도 행한 것이 없도다."
그리고 이 회개한 강도는 곧 주 예수님께로 그의 얼굴을 돌이키며 이처럼 간구했습니다. "주님, 당신이 왕으로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죽어가는 한 사람이 역시 현재 자기와 함께 죽어가는 사람을 향하여 이와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놀라운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강도의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참회하는 강도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있을 진실이며 곧 진리이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분명 하늘나라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일의 첫 번째 열매는 이와 같이 한 강도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형 집행 처분을 받아 죽어가는, 그렇지만 회개한 이 강도의 죄를 깨끗이 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이 강도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완전한 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다시 본문 이야기의 중심으로 되돌아가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중한 교훈들을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곁, 곧 하나님 편에 서 있을 수 있는 방법은? (How To take Sides With God)
첫 번째 우리가 알아야 할 교훈은, 인간은 모두 본성적인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강도는 동일하게 자신들의 죄가 들어났었고, 그리고 자신들의 죄 값에 따라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강도는 자신들마저 죽음의 순간에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하여 대담하게 조롱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성경이 인간은 본래부터 죄인이다라고 말할 때 이말은 진정 옳은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말로서 자기 자신의 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3 :10-18).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고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 하도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이러한 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음 둘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만일 어느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이 사람은 무엇보다 제일 먼저 반드시 자신의 (지은)죄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야만 합니다. 회개한 강도가 그렇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완전히 말하자면 180도로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이 회개한 강도는 자신이 부인할 수 없는 죄인임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이 회개한 강도는 죄악중에 살아오던 자신의 생애로부터 완전히 그 마음이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이 회개한 강도는 옛사람으로서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의탁했습니다. 회개한 강도가 보인 태도는 우리 모두가 또한 마땅히 행하여야 할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이 죄인이며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르러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천하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그들 자신들의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할 것을 명하셨습니다(행 17 :30-31).
그러나, 하나님 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데에는 단지 회개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나의 주님(Lord)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이 말은 그분을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의 주인(Master)으로 모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죽어가던 강도는 자신의 곁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믿었고 또한 예수님을 향해 자기 자신의 분명한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 10 :29)
회개한 강도의 믿음은 자신의 놀라운 고백을 통하여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왕국에 이르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여기에서 우리는 이 회개한 강도의 놀라운 믿음을 보게 됩니다. 이 강도는 죽어가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장래에 어느 날 다시 오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릴 것을 믿었습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께 장차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자신이 왕으로 계실 그 왕국에서 곧 하늘나라에서 자신을 기억해 주실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참으로 이 강도는 구주께 대한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게 이곳에서 알게 되는 분명한 교훈은, 우리는 자신의 선행을 통하여 구원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 강도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선행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면, 구원받는 문제에 관한 한, 도저히 선행하고는 거리가 먼 이 강도에게는 결코 구원의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강도의 지난 과거는 오직 악한 행실들로 가득 찬 삶을 살아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이 강도가 마지막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을 돌이켜 선한일을 하기 원한다 했을지라도 당시의 이 강도는 자신의 양 손과 양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전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거듭거듭 우리 인간은 어떠한 선행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선행에 의해 구원함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참고: 에베소 2 :8-9 ; 디도서 3 :5). 우리 인간의 의는 인간의 눈에는 그것이 아무리 의롭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다만 헌 누더기와 같을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사야 64 :6). 한번은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6 :28-29). 이것이 믿음에 관한한 우리 모두가 그곳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믿음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선한 행위는 우리가 구원을 받은 다음에 따라오는 것입니다. 즉 선행은 구원의 결과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선행은 구원의 열매이지 그 구원의 뿌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는 구원을 받음으로 마땅히 선행을 열매로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에베소 2 :10)
죽어가던 강도의 구원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우리는 침례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 받은 강도에게 있어서 침례를 받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에게 침례를 무시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침례에 의하여 자기 자신의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구원 받은 강도 역시 그가 가능했다면 마땅히 침례를 받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요점은 침례는 구원을 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침례는 구원을 받은 후에 그의 믿음을 증거하는 고백과 순종의 행위입니다.
구원은 어떤 이상한 특별한 감정이 따라 오는 것을 의미하는가? (Is Salvation A Strange Feeling?)
다음으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감정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는 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 자신의 구주로 믿게 될 때 감정적으로 행복한 느낌이나 혹은 어떤 신비스러운 체험을 해야만 자신들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아주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십자가 위에서 구원받은 강도에게 "당신은 구원받을 때 무슨 느낌이 있었느냐?"고 묻는 다면 아마 그 구원받은 강도는 대답하기를 "특별한 느낌이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 나는 십자가 위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느낀 모든 것은 오직 큰 고통뿐이었습니다."라고 대답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강도는 어떻게 그 자신이 구원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구원 받은 강도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도 이와 동일한 원리입니다. 오직 한 가지 다른 점은, 오늘 날의 우리들은 직접적인 예수님의 음성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님의 말씀 곧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직접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구원함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참고 요 5 :24 ; 롬 10 :13). 이와 같은 사실은, 구원은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적인 즐거운 느낌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 The Bible)을 통하여 알고 또 확신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믿는 자들은 자신들이 죽은 후 곧 바로 그리스도에게로 올라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 :43 말씀 속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Today-최선의 시간에(the best time)
나와 함께(With Me)-최선의 동반자와 함께(the best company)
낙원 안에(In Paradise)-최선의 장소에(the best place)
우리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진정으로 이와 같은 최선의 것 모두를 얻은 자들입니다.
다음으로, 이 이야기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구원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한 사람만이 구원 받은 것은 아무도
절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네.
오직 그 한 사람만이 구원 받은 것은
아무도 헛된 기대나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네.
예수님의 곁에 있던 자들 중에 한 사람은 하늘나라를 가게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십자가의 두 강도 중 어느 강도 편에 속한 자입니까?
또한가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최후의 순간에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 받은 강도는 영원한 세계의 바로 문턱 앞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강도처럼 자신의 구원을 자신의 삶의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는 것은 사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최후 순간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접할 시간이며,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 이로다"(고후 6 : 2).(Now is the accepted time, behold, now is the day of salvation)
이제 끝으로 이 이야기를 통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교훈입니다! 이 교훈은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는 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교훈은 참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을 안겨 주는 일입니까! 다른 편에 있던 한 강도는 예수님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자 이었지만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님과는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느 사람이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침례(*유아 세례도 포함)를 받고, 교회에 매주일 참석하고,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 성가대나 주일학교 교사 혹은 교회의 제직의 직분등)에 참여 하였지만, 그러할지라도, 만일 그 사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경험이 없고 거듭난 경험이 없었다면 그는 여전히 구원에서 잃어버린바 된 자입니다. 만일 이 사람이 여전히 주 예수께로부터 자신의 모든 죄를 사함 받지 못한 상태로 죽게 된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부지런히 교회에 출석하였다고 해도,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지옥에서 그 자신의 영원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 7 :22-23).
또한 성경의 다른 한 곳에서도 "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누가 13 :26-27)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엄숙한 경고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강도 중에 한 사람은, 자신이 구주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나 이 사람은 그 자신의 구원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한 강도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최후 순간에 구원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 받은 강도의 믿음을 잘 요약한 찬송 가사의 일부입니다.
임마누엘 보좌에서 흐르는 보혈의 샘,
이 보혈의 샘에서 모든 죄인들
죄 씻음 받도다.
죄 씻음 받도다. 죄 씻음 받도다.
이 보혈의 샘에서 모든 죄인들
죄 씻음 받도다.
저 죽어가던 강도도 이 보혈의 샘에서
죄 씻음 받았네.
저 강도 같던 이 몸도 죄 씻음 받았네.
저 강도 같은 이 몸도 죄 씻음 받았네.
죄 씻음 받았네. 죄 씻음 받았네.
저 강도 같던 이 몸도 죄 씻음 받았네.
(찬송가 19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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