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라, 그리하면 승리하리라!"

-William MacDonald

[제 8과] 인류 최대의 범죄

(본문 : 마 27:37-66 ; 막 15:26-47 ; 눅 23:38-56 : 요 19:19-42)

범죄 장면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곳은 사형수들이 끌려와 처형당하는 장소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로마인들은 사형수들을 나무 십자가 위에 달아 처형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곳에서는 죄수들인 사형수들의 처형이 집행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곳을 골고다(Golgotha)라 불렀고, 로마인들은 갈보리(Calvary)라 불렀습니다. 오늘 날에는 그곳을 해골의 언덕(Hill of a Skull)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성 시내로 들어가는 중심가 곁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날은 금요일 오전이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죄수 하나를 처형하기 위해 이곳을 향하여 예수님을 끌고가고 있었습니다. 그분 예수님은 이제 30대가 갓 넘은 젊은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곳 골고다를 향하여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고 있을 때 길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어떤 여인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뒤를 계속 따르며 예수님을 향하여 온갖 조롱과 저주와 모욕과 온갖 욕설을 퍼붓고 이를 갈며 예수님에 대한 극한 증오심을 들어내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마침내 처형 장소에 이르렀을 때 무리들은 더욱 큰 소리로일제히 "십자가에 못 박아라" " 십자가에 못 박아라"(crucify, crucify!) 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무리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범죄자로 끌려 온 이 분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분의 이름은 예수(Jesus)였습니다. 이분은 다윗 왕의 먼 후손으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의부 요셉의 뒤를 이어 목수가 되어 자신의 가족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약 30세 쯤 이르렀을 때 홀연히 자신이 사용해 온 목수 연장들을 내려놓고 현대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국 복음운동(Crusade) 의 불타는 사명을 갖고 천국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천국복음운동은 그 시작 초기부터 순탄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자신의 신성에 대한 주장은 당대의 기존 종교지도자들과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 자신들보다 날로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가 그분의 가르침과 기적에 더 이끌리고 있음을 보고 시기심과 극한 증오심에 차서 여러 번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중 하나인 가롯 유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예수님을 체포하는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여 예수님을 죽일 구실을 찾으려고 일련의 불법적인 인민재판에 가까운 비합법적인 재판을 감행한 후에, 결국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주장한다하여 참람죄를 씌워 로마인들에게 예수님을 넘기며 사형시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집행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수를 넘겨받은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리한 결과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 유대인들 간의 종교적인 문제임을 깨닫고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굽히지 않고 예수님의 처형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총독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예수님을 살리려고 힘써 보았지만 자칫 민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의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물을 담은 대야를 가져오게 하고 자신의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 :24).고 선언한 후, 예수님을 사형 집행 단에 넘겼습니다. 이상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개략입니다.

이사람은 누구신가? 왜 이 분은 죽으셔야 했는가? (Who Was The Man? Why Did He Die?)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 분 예수님에 대해서 좀 더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과 같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이분,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찾아오셨습니다. 만물은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그분은 자신이 만드신 온 우주와 만물을 붙들고 운행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요 1 :10 ; 골 1 : 17).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의 대속 제물(substitute)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마땅히 지불해야 할 모든 죄 값을 대신 다 지불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준비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만반의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합니까?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마 27 : 25).고 맹세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요구했던 종교지도자들과 여기에 동조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다음에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면서도 그분을 처형토록 허락한 로마 총독 빌라도와 그리고 로마 병사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우리들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지 않는 한, 신비한 그 십자가의 완전한 의미를 우리는 결코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벧전 3 :18 ; 요 1서 2 : 2). 기록된 성경말씀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 1서 2 :2).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 :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주님이 골고다 언덕에 이르셨을 때 그분의 십자가 처형식은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군병들은 먼저 예수님께 쓸개 탄 초(vinegar and gall)을 권했습니다."쓸개 탄 포도주(vinegar mingled with gall)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마27 :34). (*주 - 여기에서 식초는 예수님 당시에는 마취제 역할을 하는데 사용된 발효된 포도주를 의미하는 듯 합니다.) 쓸개 탄 포도주를 권하는 일은 사형수에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포도주를 받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데 반 마취 상태(half-drugged condition)로 임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전 9시, 병사들은 나무 십자가 위에 예수님을 눕히고, 예수님의 양손과 발에 쇠못을 박고 나서, 십자가를 들어 올린 후 이미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나무 십자가를 박아 넣었습니다. 그때 매 순간마다 얘수님의 손과 발이 찢기는 고통을 어찌 다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오후 3시가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갈증과 고통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손으로 만드신 피조물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다니! 이와 같은 만행은 여태껏 인간이 저지른 범죄 중 인류 최대의 범죄 사건이었습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께서

한 인간으로서 인간을 위해

저주가 되셨네.

그분의 거룩한 손가락으로 지음을

받은 그 나뭇가지들은

가시나무 덩굴로 자라 그분의 이마 위에

가시관이 되었네.

그분의 설계하심을 따라 비밀한 곳에

깊숙히 매장되어 감추어져있던,

그분의 손으로 만드신 광물은

그 분의 양손을 찌르는 못이 되었네.

그분이 만드신 아름다운 수풀 속에서

자라난 나무들, 그 나무 십자가위에

그분의 몸이 달리셨네.

그분은 나무 십자가위에서 죽으셨건만,

그분이 우리를 위해

지극히 사랑해 달리셨던

그 나무 십자가 서있던

그분이 만드신 저 언덕

예처럼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네.

사형수의 옷을 나누는 것은 병사들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호지 아니하고 통으로 짠 속옷은 빼내어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는 일찍이 다윗에 의해 다음과 같이 예언된바 있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 22 :18).

예수님의 머리위에는 그의 범죄한 죄명을 적어놓은 푯말을 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죄명보다는 단순하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푯말을 달았습니다. 많은 백성들은 이렇게 적어놓은 푯말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바꿔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를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죽을 때, 그의 가족이나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은 그가 임종 시에 남기는 마지막 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가상칠언이라고 하는 7가지 중요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 첫째의 말씀은 "아버지여, 그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눅 23 :34). 라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자신을 죽인 범죄한 살인자들인 원수들을 위한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는 그분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참 의미는, 주님을 배척하는 저들 일찌라도 만일 훗날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아와 주님을 믿게 될 그때 저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대신 벌을 받다(Taking The Rap For Others)

이처럼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온 성난 군중들은 조금도 자신들의 만행에 대하여 참회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너는 성전을 헐고 3일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네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면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을 구원해 보라."라고 조롱하며, 종교지도자들 또한 예수님을 희롱하기를 "이 사람은 거짓으로 남을 구원한다고 말한 자다. 이제 이 삶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하라. 이 사람으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내려옴으로써 스스로 참 이스라엘의 왕인지를 증명해 보이라고 하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노라. 이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좋다 그게 사실이고 이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아들이라고 한 다면 이제 하나님으로 이 사람을 구원하시게 하자. 그리고 하나님이 실제로 구원하시는지 지켜보도록 하자. 그러면 모든 진실은 들어 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의 요구대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셨다면 여러분이나 저나 결코 구원 받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면 그 일은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한 우리의 몸값에 해당하는 속죄제로서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자하신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에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오른 편 강도가 예수님께서 구주되심을 믿고, 구주되신 자신에게로 겸손히 나아와 주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소서." 라고 믿음으로 이 한 마디의 고백을 했습니다.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순간, 그곳 십자가 위에서 간구하는 불쌍한 강도를 향하여 자신이 구주이심을 밝히 보이시고 그에게 "오늘 너는 천국에서 나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구원의 약속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다음 과인 제 9과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군중들 틈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동정어린 눈길로 자신의 어머니를 내려다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동정하지 않으셨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넓은 바다 넓은 대양과도 같은 한없는 사랑과 동정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정오로부터 오후 3시까지, 태양은 빛을 잃고 십자가 주변의 온 세상은 깊은 암흑으로 덮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연과 온 세상 만물마저 중앙에 있는 그 처참한 십자가의 광경에 그분에 대한 슬픔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옛 찬송가의 한 구절처럼,

인간을 위해,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들의 죄를 지시고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셨을 때

밝은 태양마저 어둠속에 숨어버렸고

그분의 영광 마저 그 속에 갇혀져 있었네!

이 3시간 동안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진노를 담당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님의 고통은 장차 우리가 지옥으로 가서 영원토록 당해야 할 모든 고통을 함축한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인내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셨던 그 모든 고난을 어찌 그 누가 능히 다 측량하리요! 예수님에게있어서는, 우리 인간들의 손에 의해 당하신 고통은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손에 의해 당하는 그 큰 고통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꼭 비교한다고 하면 손으로 어루만져주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 큰 고통은 바로 당신과 나를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분이 성취하신 일은 무엇인가? (What It Took to Finish The Job)

이제 흑암 가운데 있은 3시간이 끝날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예수님의 기도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은 우리들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양 어깨위에 모두 지워졌던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움은 모든 죄에 대한 완전한 심판을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위에 놓인 우리들의 죄를 보셨을 때 우리 죄를 지고가는 자신의 아들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 예수님 자신이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목마르다"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두 가지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적어도 6시간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심으로 인한 극심한 육체적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그분의 목마름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영적 갈증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목마름의 호소를 육체적 갈증으로 생각한 한 병사는 스폰지가 달려 있는 장대에 초(*신 포도주)를 가득적셔서 그분의 입가에 대었습니다,

예수님은 초를 조금 맛보신 후 "다이루었다!" (It is finished)라고 외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을 때 우리 주님으로 하여금 다 이루라고 부탁을 받으신 인간의 구원을 위한 모든 구속사역을 주님께서 다 이루어 완성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완전한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에 대하여 요구하시는 그 모든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키셨습니다. 주님이 구원을 위한 일을 다 끝마치시고, 다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 더 보탤 것도 없고, 우리가 거기에서 더 필요를 요구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전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통하여 다 완성해 놓으신 그분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되고 또한 그분이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최후로, 구주께서는 "아버지여, 아버지의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외치신 후, 그분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주님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스스로주관하고(controlled)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이 오면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릴 수 있는권세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요 10 :18).

로마 병사의 백부장들 중에 한 사람은 무엇인가 아주 범상치 않은 중요한 일이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당시에 알아차려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당시에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23 :47)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 :39). 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셨을 바로 그때, 두 가지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는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 존전으로 직접 나아가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히 10 :19-20).또 다른 사건은, 지진이 일어나 무덤들이 열리며 많은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로마의 군인 장교인 백부장은 심히 놀라며 "이 사람은 분명 무죄한 사람이었도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관례에 따라, 병사들은 죄수들의 죽음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하여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으로 다가 왔을 때 그가 이미 운명하신 것을 알고 그분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한 병사가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매 피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예수님의 한 숨은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을 받아내리고 나서 바위 속에 바위를 깨트려 파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관한한 여기가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3일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는 무덤으로부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40일이 지난 후,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다시 승천하셔서 우리의 왕과 구주로 지금 하나님 우편 보좌 위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참된 종교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죽었고 그들의 시신은 여전히 무덤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에 지금 살아계십니다.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이 죽은 사람을 자신들의 신으로 믿고 바로 이 죽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들은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명의 주와 영광의 주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그 때에 우리 인간들이 저질러 온 범죄 가운데 인류 최대의 범죄 행위가 자행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신 자비로 말미암아 우리가 저지른 이 인류 최대의 범죄 행위에 대하여도 유죄 선고의 원심을 파기하고, 뒤집어서 이를 우리의 영원한 축복으로 판결문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께서 나의 대속자로 죽으신 사실을 깨달아 믿고, 나의 삶 가운데 이분 그리스도를 영접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우리의 범죄에 대하여도 유죄 판결을 하는 대신에 우리의 영원한 축복으로 바꾸어 주는 판결문을 선고해 주실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