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 (본문 : 요한복음 8 : 2-11)
이른 아침,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이 종종 하시던 대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찾아오셔서 예수님 주위로 몰려든 군중들을 향해 가르치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언제나 예수님께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관심을 나타내는 군중들을 볼 때마다 시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런 태도를 보이는 군중들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던지 할 수만 있다면 그 백성들 앞에서 예수님을 나쁘게 보일 수 있는 계교를 꾸미고자 했습니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간음 현장에서 붙잡아 온 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이끌고 와 그 앞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 고 한 율법을 예수님에게 상기시켰습니다(레 20:10 ;신 22 : 22). 그리고 이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판결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의 진정한 목적은 예수님에게 올무를 놓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대답하기를 돌로 여인을 치라하면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랑을 가르치는 자비로우신 분이 아닙니다. 만일 이 여인을 놓아 주라 하면 예수님은 율법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어떻게 대답을 하던 간에, 모두 이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대답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몸을 구부려 자신의 손가락으로 땅 위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쓰신 이 글에 대해서 수 많은 추측이 제기 되었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의 모든 상상은 추측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영원한 신비일 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주님이 쓰신 글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소 자들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그치며 계속해서 예수님의 대답을 재촉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참소자들에게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혹은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은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예수님은 몸을 구부리시고 또 다시 땅위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아무도 알 수 없는 신비한 글을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쓰신 글을 추측하려는 노력은 모두 쓸데없는 일일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두 양심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에게 씌우려는 이 사람들의 올무는 오히려 자신들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젊은 이로부터 노인에게 이르기까지 모두 다 소리없이 조용히 그 자리에서 물러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느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여인은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아무도 없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죄를 지어도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가? (Is Sin Okay With God?)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조심성 없이 본 대목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여인이 지은 간음죄를 실제로 용납하시고 용서하신 것으로 쉽게 오해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두 번째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남녀 관계에 있어서 성적 차별 행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이끌고 와 잔인할 정도로 이 여인의 부끄러움을 사람들 앞에 공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간음은 남녀 두 사람간의 공동범죄입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남자는 보호하고 여자에게 모든 비난과 수치와 죄를 뒤집어 씌웁니다. 이 당시에 이러한 행위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들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종종 인간의 법도 본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간음의 범죄를 행한 경우에도 여인은 처벌하고 남자는 자유롭게 방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간음죄는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돌로 쳐 죽이도록 명령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주의하여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이 사건에 있어서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율법을 옹호하셨으며, 그 율법의 요구대로 시행하라고 그들에게 판결하셨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판결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무시하거나 혹은 마치 율법과 상관없는것처럼 행동을 취하셨다면 예수님은 의롭지 못한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율법을 굳게 하셨습니다.
"죄(간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그 진정한 의미를 다음과 같은 말로 해석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만일 너희 중에 이 여인과 같은 죄를 범한 자가 있다면 그 또한 마땅히 돌로 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너희가 이 여인에게 돌로 치는 형벌을 집행할 때에는, 이 여인과 동일한 죄를 범하지 않은 자만이 이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이 여인보다 더 의로운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양심에 가책을 받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그 자리에서 말없이 물러간 것입니다. 죄인은 다른 죄인을 정죄할 수도 없고, 또 그 죄를 처벌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라고 하는 11절을 주목해 보면 여인은 예수님께 주(Lord)라고 고백한 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이 여인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고백이 사실이라면, 이 여인은 주님을 향해 "저는 제 자신이 죄인임을 압니다. 저는 범죄 현장에서 잡혀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예수님께서 약속의 구주이심을 믿고, 이 죄인은 예수님을 이제 저의 주와 구주로 영접합니다. 저는 주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까지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과 동일한 고백을 내면적으로 행한 것으로 받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고백에 이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대답은, 위에서 언급한 고백처럼 이 여인으로 하여금 주님께 대한 참된 회개를 행하고 그리고 주님을 진정으로 믿는 믿음을 고백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가서 다시 죄를 범치 말라." 이와 같은 예수님의 대답은 주님의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하심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가서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심은 그분의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은혜와 함께 하시고, 진리라는 소금을 치십니다. 이 구절에서 첫째 부분은 은혜를 말하고 둘째는 진리(소금)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라" 하신 구주의 말씀은 누구든지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찾는 자에게 주시는 그분의 죄 용서함(Forgiveness)과 면죄(Pardon)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 8 : 1). 예수님은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 믿는 자들에게는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 5 : 24). 역시 요한 복음 3 : 17~19 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가라, 그리고 다시 죄를 범치 말라"고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참된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들 생각과 말과 행동속에서 날마다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새로 구원함을 얻고 새생명을 얻은 여인 앞에 구주이신 주님 자신의 완전한 표준을 세워두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들이 전혀 죄를 짓지 않기를 원하십니다(요 1서 2 : 1).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으십니다. 만일 예수께서 "가라 그리고 다시 죄를 지으려 하거든 조금만 짓도록 하라."고말씀 하셨다면 당장 우리는 이분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어떠한 죄도 용납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하박국 1 : 13).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거룩함"을 따라야 하는 것이 주님이 기대하는바 가장 이상적인 표준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벧전 1 : 16)하신 주님의 뜻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이 말의 연장선상에서 사도 바울 또한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한 말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현행범이며 죄인인 여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으면, 이 여인으로 하여금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도록, 거룩한 삶의 표준을 제시하고 그 가운데 살기를 원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바르게 하지 않을 경우? (What Happens When You Don't Go Straight)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진정으로 거듭난 참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그의 삶 가운데 죄를 범하고, 그 죄를 바르게 하지 않을 때 이 사람의 구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떤 이들은 "만일 그리스도인이 구원함을 받은 이후에 다시 죄를 범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이 사람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실제적인 여러가지 중요한 주제에 대해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죄 없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옛 성품인 죄악 된 죄 성품이 없어진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죄를 덜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롬 6 :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6: 14)
2.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할 때 그의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그는 자신의 구원의 기쁨을 잃게 됩니다(시 51 : 12). 여전히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행복한 가족으로서의 그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믿는 자들의 죄의 형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에 의해 이미 지불 되었습니다(이사야 53 : 6).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는 미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죄를 위해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내 죄의 빚을 갚아주셨다면 내가 더 이상 갚아야 할 빚은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중으로 지불청구서를 요구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거기에다 이중 유죄판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 할 때 그 결과에 따른 징계에도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범죄 한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믿는 자로서의 그분의 구원에 대한 보상을 잃지 않으며, 구원의 안전성이 영원히 보장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땔감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그의 장작 헛간(woodshed)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그의 자녀들에 대해서 그의 징계를 위한 대비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 값이 이미 다 치루워졌다고 말 할 때 이 말은 나는 결코 지옥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믿는 자가 범한 죄는 믿는 자의 생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도 여전히 참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범죄는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는 징계란 질병, 혹은 어떤 슬픔, 혹은 상실(친구, 가족, 재산등)이나 사고, 혹은 심지어 자신의 죽음의 형태 일 수도 있습니다.(참고 고전 11 : 27-32).
5. 믿는 자의 생활 가운데에서 고백하지 않은 어떤 죄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고전 3 :12-15). 또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이에 잃게 되는 교제의 공백 기간은 곧 자신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 가운데 그 일부를 잃고 낭비하는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범죄 했을 때를 위한 대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 1서 2 : 1 이하에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 자(변호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변호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녀들의 죄를 "내게로 계산하라."(Charge that to my account)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죄를 범한 믿는 자들을 위한 대언자로서, 자신의 죄를 그 앞에 자백하는 그분의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은혜의 보좌 앞에서 중보로 제사장의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참고 잠 28 :13; 히 4 :14-16)
7. 믿는 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순간 믿는 자의 죄는 사함받고, 그리고 다시 영적으로 행복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과의교제의 회복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약속하여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고 의로우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며, 또한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다"(요 1서 1 : 9).
8. 한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와 함께 거하게 되십니다.(고전 6 : 19). 그리고 성령은 믿는 자에게 시험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믿는 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라던가 혹은 "사탄이 나를 그렇게 죄를 짓도록 만들었다."라고. 성령은 그를 시험하려는 자에게 "아니다"(NO) " 물러가라"라고 거절 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만일 그가 불같이 격렬한 유혹과 시험의 순간에도 주를 부르면, 주께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반드시 주십니다. "주의 이름은 강한 성이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언 18 : 10).
간음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의 이야기 속에는 역설적으로 흥미로운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참소를 당했던 여인은 하늘나라에 가게 되고, 반면에 여인을 참소한 자들은 (*만일 그들이 후에 회개하지 않았다면)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세리와 창기가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자신은 태어나기를 날 때부터 멸망 받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로 태어난 패배자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입증된 것처럼 죄에서 자신을 돌이킨 후 그녀는 구원받은 자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고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She probably thought she was a born loser. As it turned out, she was born to win,)
오늘이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구원함을 얻고 다시 태어나는 승리의 날이 될 수 있습니다
(엠마오성경학교 발행 엠마오로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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