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아이들이 책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

입력 2017.02.01 03:01 수정 2017.02.01 03:29 댓글 1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나한테 진료를 받는 한 6세 아이는 엄마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정말 싫다고 한다. 엄마는 놀아 달라고 할 때는 놀아 주지도 않다가 포기하고 혼자 잘 놀고 있으면, 슬며시 다가와 자꾸만 책을 읽어 준다며 옆에 앉으라고 한단다. 잘 가르치고 싶어서 그림책을 읽어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잘 안다. 하지만 아이의 욕구나 관심에 반하는 일이 너무 빈번해지면 아이는 화가 나다 못해 스트레스도 받는다.

 보통 유아기 아이들은 얌전히 앉아서 책을 보는 것보다 산만하게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물론 책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있기는 하다. 아주 소수지만 자신의 성향에 책이 맞는 경우다. 그 외 다수는 책 자체보다는 책 읽어 주는 그 시간이 즐거워서 책을 자꾸 찾는 경우다.

 부모들은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아 달라고 하는 것보다 그림책을 들고 와서 읽어 달라고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 줄 때보다 그림책을 읽어 줄 때 더 최선을 다한다. 등장인물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생애 처음으로 성대모사에 도전하고, 중간중간 아이를 쳐다보며 재미있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리도 재미있게 상호작용을 해 주니,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이다.

 또한 부모들은 아이가 자꾸 책을 읽어 달라고 하면, 귀찮다고 하면서도 안도한다. 어쩐지 공부의 청신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의 이 은근한 생각이 이후 아이가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조금만 크면 부모의 “책 좀 읽어라”라는 말을 “공부 좀 해라”로 듣기 때문이다. ‘책=공부’가 되면 아이는 책 읽으라는 말에 짜증부터 난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처음 접하는 유아기는 ‘책=즐거움’이 돼야 한다. 그림책은 교육적으로 참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이에게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학습은 크게 보면 외부의 새로운 정보나 지식, 자극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좀 유쾌해야 정보나 지식, 자극이 안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그림책은 부모가 생각하는 시점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때에 읽어 줘야 한다.

 만약 아이가 책을 싫어한다면 서점을 활용해 보자.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 서점에 가면서 아이와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장난도 친다. 아이스크림이나 핫도그 같은 것을 사 줘도 좋다. 서점에 도착하면 “엄마는 이것 좀 보고 있을 거니까, 너도 골라 봐” 하고는 아이에게 서점을 둘러볼 시간을 준다. 그리고 아이가 조악한 애니메이션 그림책을 골라 와도 되도록 사준다. 서점에 자주 가서 읽어 보고 골라 보도록 하는 것이 책을 좋아하게 하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다. 유아기는 책과 관련된 기억이 즐겁고 재미있는 추억이면 된다. 그래야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책이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초등학교 이상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책 좀 읽어라”라는 말부터 삼가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방바닥에서 뒹굴고 있거나 TV를 보고 있거나 한창 게임을 하고 있을 때 “이제 그만 좀 하고 책 좀 읽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책은 아이에게 체벌의 의미가 된다. 책 읽으란 말이 꼭 혼내는 말 같아서 책이 더 싫어진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빠르고 화려한 시각 자극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한 가지 바탕에 점점의 형태로 되어 있는 책이 몹시 지루하다. 좀처럼 진행도 되지 않고 대화도 없는 아주 졸리는 영화 같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꼭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아니고는 책을 보지 않는다. 지겹고, 재미없고, 봐도 무슨 말인 줄도 모르겠기 때문이다.

 “책 좀 읽어”라는 말 대신 가족회의를 통해 온 가족이 함께 책 읽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다. 10분도 좋고, 30분도 괜찮다. 그 시간은 컴퓨터나 TV도 다 끄고, 온 가족이 책을 읽는다. 단, 그 시간에 아이가 한 장을 읽든 한 장도 못 읽든 상관하지 않는다. 앉아서 책을 펴고 있는 연습만 해도 된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는 안 읽으면서 만날 나한테만 읽으래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전화로 수다를 떨면서, 재미있는 TV 프로그램 보면서, 스마트폰을 하면서 “넌 들어가서 책 좀 읽어라” 한단다. 이러면 아이는 억울하다. 억울하면 딴생각이 날 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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