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을 아십니까???

                                          10.

                                하나님이 당신을 믿으십니까?


   기독교인들의 "믿습니다!" 라는 부르짖음은 코미디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말을 안 해도 마음만 보시고도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독교인들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외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혹시 귀가 어두우셔서 못 들으실까봐 그러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 자신의 믿음이 못 미더워서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자기 최면을 위해 그러는 것일까요?

   아무튼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각종 언행들에 열중합니다. 사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깊은 의미에서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을 체험적으로 알면 자연히 믿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어도 자연히 믿게 됩니다. 물론 상대방이 의롭고 선하고 확실히 믿을만한 사람일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믿음은 그저 지적인 믿음(Believe)이 아닌 '의지한다'는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믿음(Trust)을 의미합니다. 또한 믿음은 상호 의존적입니다. 즉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믿음은 한 쪽에서만 믿어서는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도 그렇지 않습니까? 한 쪽에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한 쪽에서는 관심이 없어하면 그것은 짝사랑으로 끝나는 것이지 사랑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상대방을 믿는다고 하는데 한 사람은 상대방을 못 믿겠다고 하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성립되겠습니까? 이것은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이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의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입에서 하나님이 빠진 적이 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도리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던 유대인들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살아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출 22:10-11).

   이렇게 해야만 상호 신뢰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인데 그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을 믿지 못하신 것은 그들에게 진실성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23)고 하신 것입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법을 어긴 것, 법대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불법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요일 3:4).

   '믿음의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롬 3:27).

   이 '믿음의 법'대로 믿어야만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믿으시는데, 기독교인들 중 많은 사람이 그저 막연하게, 맹목적으로, 목사가 시키는 대로, 자기 생각대로 행위에 의지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법'은 인간적인 모든 요소를 배제합니다. 온전히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전능하신 팔로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든지 놓고 있든지, 내가 자고 있든지 깨어있든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관계에서의 죄 사함이기 때문에 '영원한 속죄' (히 9:12)이고, 그런 관계에서의 믿음이기 때문에 '믿는 자는 영생' (요6:47)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의 팔은 영원한 팔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신 33:27).

   여기에 인간의 행위가 눈곱만큼도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이며 선물이지 행위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구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가장 이상적인 부부관계란 서로 온전하게 믿는 관계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부들이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계는 불안한 관계이며 깨어지기 쉬운 관계입니다. 아내는 어떤 남편을 믿겠습니까?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 (잠 31:23).

   이 장로는 오늘날의 종교적인 장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장로입니다. 남편이 그 가운데 앉아 있습니다. 얼마나 믿음직스럽습니까?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은 어떤 아내를 믿겠습니까?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잠 31:10-11).

   현숙한 여인의 값어치는 진주보다 더하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고통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보석같이 더 빛이 나는 여인, 그런 여인이 현숙한 여인이고 남편은 그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룻과 같은 여인이 바로 현숙한 여인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네가 현숙한 여인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룻 3:11)고 했습니다.

   고난 중에도 뒤로 물러가거나 굴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간 여인... .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 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 1:16-17).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교회를 나가는 기독교인이 된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고, 세례 받은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고, 교회 직분(집사, 권사, 장로, 목사)을 맡은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종교적인 신비한 체험 좀 한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올바른 믿음을 갖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의 최고 지도자이며 율법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고 하신 것입니다. 즉 올바른 믿음이란 자연인으로 한 번 태어난 사람이 회개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태어난 사람(나)은 죽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한 번 자연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비로소 그는 '믿음을 가진 삶'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종교 수준에도 머무르지 못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스스로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7).

   기독교는 풍성한 물질적인 번영과 외적인 성공, 정치도 무시 못 할 위세에 스스로 도취해 있습니다. 공룡 같은 큰 건물, 셀 수 없이 많은 교인들, 왕성한 활동들을 모두 하나님의 축복으로 선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현세에서 부자가 되었고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 부요 속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세속적, 물질적, 육신적으로 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보셨을 때 그들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유명한 어떤 목사님은 "한국 교회는 자정 능력을 일었다" 고 했습니다. 물이 자정 능력을 잃으면 식수는 고사하고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방송 설교에서 "자기가 볼 때 한국 교회 교인 중 10% 정도 밖에 거듭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90% 정도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아예 모르거나 안 믿는 사람들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나름대로는 다 열심히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잘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고 하시고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며,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있는 자들이며,

   -수십 년 먹고 살 재물을 쌓아놓고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앵무새처럼 기도하는 자들이며,

   -세상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리면서도 하늘나라 가서까지도 복을 누리겠다고 하는 이기적인 자들이며,

   -하나님도 못 알아들으시는 방언을 하면서 영적인 체 하는 자들이며,

   -하나님 말씀보다 목사 말을 더 신뢰하는 자들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조차 온갖 비방과 조롱과 고발을 당하면서도 교회에 나와서는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7:2,9-11).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 1:10).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헛되이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말씀대로 하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 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 21: 15,16,17)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믿습니다.

   사랑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얻습니다.

   이제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할 차례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잠 8:17).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믿으실 것입니다.

   "누가 이런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영적 자녀를 둔 하나님은 그를 믿나니... ."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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