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2장
침례는?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면 침례를 받았나요? 이 질문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구원받는 즉시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원과 침례 사이에 기록된 가장 긴 기간은 다소의 사울의 경우의 3일이었습니다(행 9장). 아마 당신은, 다소의 사울도 상황만 허락되었다면 구원받은 즉시 침례를 받았을 것이라고 동의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침례가 꼭 필요한지, 침례를 받지 않으면 영적인 생활에 손실이 있는지 자문해보기 바랍니다.
그런 질문들에 답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때때로 발견하는 오해들을 다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침례받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성경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침례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성경을 좀더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성경은 침례를 받기 전에 어느 정도의 성숙이나 성경지식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간수는 구원받은 직후 온 가족과 더불어 침례를 받았는데, 이 온 가족은 믿은 가족들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침례를 영적인 생활의 하나의 전환점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침례를 받은 후에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영적인 삶을 살게 될 줄로 기대합니다. 마치 침례 이전과 침례 이후로 영적인 삶의 수준이 구분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구원받을 때 삶이 변화를 시작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어린아이로서 영적인 성숙이라는 평생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신자들은 침례를 받으면 이러저러한 제한이 많을 것이므로 침례를 받기 전에 젊음을 만끽해야겠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구원에 대해 근본적인 오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침례는 또 하나의 영적인 새 출발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변화를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바로 새 생명의 특징이 당신의 삶에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구원과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복종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 중간기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성경이 침례가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는데 왜 내가 침례를 받아야 하며, 또 침례를 거절하면 어떤 손실을 당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침례는 순종의 첫 번째 표입니다. 그것은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의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가서, 제자를 삼고, 침례를 주라고 예수께서 명하셨습니다(마 28:19). 침례를 거절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불순종이 우리에게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순종을 요구하셨든지 그 뜻을 다 이해하든 못하든 우리는 순종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주라는 우리의 고백의 진실성을 시험하는 결정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분을 순종하는 것은 그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불순종하는 것은 그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성장의 비결은 순종이며, 만일 우리가 첫 시험에 실패한다면 앞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모든 시도들도 적당히 타협하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인 진보가 이뤄지기 전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로 우리 양심에 계속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결단력에 대한 시험입니다.
둘째로, 침례는 보이지 않는 계약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구원받았을 때 일어난 일을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변화를 경험했으나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침례는 그 때 일어난 일을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문제는 당신이 주 예수님을 위해 공적으로 증거할 준비가 되었느냐 여부입니다. 만일 이 최초의 증거가 실행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증거하리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직장과 기타 장소에서 주님을 공적으로 증거하는 일은 때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린 신자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대적하고 비웃을 때 당황할 수 있습니다. 침례는 당신이 증거의 삶을 그 위에 건축할 수 있는 훌륭한 성경적인 기초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에 대해 자주 말할수록 장애가 적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세 번째 사실은, 침례는 그리스도와 동일시 되는 행위이며, 우리는 그 교리적인 의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침례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했음을 상징으로 나타내며, 그로써 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우리의 삶에 미친 영향을 인정하게 됩니다. 침례의 그러한 면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고백한 후에 물 속에 완전히 잠기는 성경적인 방법으로 침례를 받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물을 뿌리거나 그밖에 다른 방법으로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유아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스스로 결정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세례(침례) 베푸는 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 생명 가운데 살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죄에 거하겠느뇨," 즉 우리가 구원받기 이전의 삶을 게속 살아야겠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침례 문제를 거론합니다.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과, 구원받기 이전을 특징짓는 옛 생활방식에 계속 거하는 삶은 함께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죄에 대해서 죽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은 죄가 지배권을 갖는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장사된다는 것은 죽음이 일어났음을 최종적으로, 공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될 때, 우리는 자신이 옛 생활에 대해 죽었고 세상과의 관계를 청산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당신이 침례 받는 그 순간부터 구원이 가져다준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당신이 구주를 영접했을 때 변화가 이미 얼어났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새 생명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닌데, 이는 죽음이 모든 의무를 폐하고 죄에 대한 모든 종노릇을 끝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침례 받아야 한다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자마자 분별했듯이(행 8:26-39) 당신의 침례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일 침례가 행해지지 않았다면 방해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이제 당신을 위해 죽으신 주님께 머리 숙여 복종을 표하고, 침례를 통해 그분에 대한 당신의 충성을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책을 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4장 나의 은사는? (0) | 2017.03.04 |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3장 교회생활은? (0) | 2017.03.03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1장 구원받았다! 이제는? (0) | 2017.03.01 |
하나님이 당신을 아십니까??? 11. 천국과 지옥 (0) | 2017.02.26 |
하나님이 당신을 아십니까??? 10. 하나님이 당신을 믿으십니까? (0) | 2017.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