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7장

                                   하나님의 뜻 분별은?


   믿는 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분별하기가 종종 어렵습니다.

바울이 구원받은 후 첫 번째 던진 질문은 "주여 뉘시오니까? "였고, 두 번째 질문은 "주여 내가 무엇을 행하오리이까? "였습니다(행 9:5,6). 그와 같이 바울이 구원받은 후 첫째로 갈망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후, 그 소원을 실천에 옮기고 그 소원과  관련된 즐거움과 고난을 경험한 후에,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하나님의 뜻의 세 가지 주된 특징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첫째로, 축복이 된다는 의미에서 선합니다. 즉, 그분의 뜻을 행하는 데는 축복이 따릅니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행동강령을 고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유익한 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님의 뜻은 둘째로, 기쁨을 준다는 의미에서 기쁘게 받을만합니다. 즉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행하는 이의 삶을 기뻐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기에 아무것도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온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한번뿐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을 하려고 애쓰거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비극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힘쓰지만 자신이 그 뜻을 행하고 있는지 게속해서 의심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았다는 확신을 가진 듯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그들 자신은 왜 그런 확신을 갖지 못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1장 9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달라고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서, 그들은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 합당히 행하는 것은 주의 뜻을 아는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그 중 첫 번째 조건을 제시해줍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결연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분의 뜻을 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처럼 성별된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우리의 삶을 세상의 표준에 맞추기를 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원리와 표준대로 산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 두 가지는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을 드리고 세상과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시험할 수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삶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과연 그분의 뜻이 우리의 삶에서 분별될 수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경험해본다는 것은 얼마나 추구할만한 놀라운 목표인지요!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을 시험해보는 동일한 목표가 에베소서 5장 10절에서 발견됩니다.그 목표를 추구할 때는 어두움의 일을 멀리하고 세월을 아껴야 한다고 바울은 가르칩니다. 여기에 묘사된 그림은,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분 앞에서 살기로 굳게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조건들에 이어서,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우리는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감사의 대상은 좋은 일만이 아니라 모든 일입니다.

   에베소서 6장 6절에서는, 주인이 있을 때만 아니라 항상 성실하게 일하는 종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5절에서는 희생적인 헌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린 다음 그들의  물질을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고소할 것이 없도록 권세 잡은 자들에게 순복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는 감사와 성실한 직장생활과 희생적인 헌신과 복종이 우리가 매일 힘써야 할 덕목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행동지침으로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지요? 당신이 말한 자질들은 우리가 이미 노력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할 때는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하지요? "

   바울은 사도행전 16장에서 그런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그와 그 동료들이 직면한 문제는 앞으로 복음전도를 어떤 방향으로 진전시키느냐였습니다. 갈라디아를 여행한 후에 그들은 성령으로부터 아시아에 들어가지 말라는 제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어서 방향을 돌려 비두니아 쪽으로 가려 했지만 성령께서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령께서 그들에게 그런 쪽으로 가지 말 것을 알게 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그러한 여행을 불가능하게 만든 상황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 후에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 일행의 도움을 청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10절에서, 바울이 이 환상을  보았지만 무두가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음을 주목하십시오.

   어떤 근거에서 그런 결정이 내려졌을까요?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사도행전의 기자인 누가가 사용한 표현입니다. 그는 그 적은 무리 중에 있었으며, 그들이 마게도냐로 가기로 "인정했다(assuredly gathered)고 말합니다. 이 표현의 의미는, 그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본 후에 여행의 방향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사람들이 앞서 말한 조건들을 충족시켰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 적은 무리의 전도자들은 이 당시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적극 임하고 있었으며, 이제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한 길에서 다른 길로 방향을 돌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게으름 피우며 시간을 낭비하는 신자들에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힘쓰는 신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환상을 본 사람은 바울 한 사람이었는데 온 무리가 "인정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관련된 모든 문제를 검토하고, 우리의 계획이 성경에 위배되는 요소가 없는지 점검하고, 기도 가운데 모든 상황을 연결하여 결론에 이르러여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은 하나님 앞에서 심사숙고한 결과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모든 증거자료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열린 문과 닫힌 문, 개인적인 의무 사항, 충족되어야  할 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 등 모든 것이 삶의 결정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했던 다윗의 기쁨을 알고자 하는 바램을 우리 모두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시 40:8).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주저주저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는 것이 그에게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분의 뜻을 알고, 또 "주여, 내가 무엇을 하오리까? "라고 물은 바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해하는 기쁨을 알고자 힘써야 하지 않을까요?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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