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

                                         16장

                                직장이나 학교생활은?


   당신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든, 직장에서 일을 하든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소위 "세속적인 일"에 몸담게 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시간이 아주 기쁘고 보람이 있어서 아침에 출근시간이면 유쾌하게 집을 나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저 참고 견디는 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후자의 경우에는 시간이 빨리 지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빨리 집에 돌아가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임하든 고용관계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과제입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때보다 더 믿지 않는 자들과 많은 접촉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때 우리의 고용관계에 접근하는 태도가 바뀌게 되고, 그것을 단조로운 일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는 독특한 기회로 생각하게 됩니다.

   종(노예)에게 주어진 가르침에서 성경은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노예시대는 지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노예제가 일반적인 고용제도였으며, 따라서 성경에 종들에게 주어진 가르침은 오늘날 고용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먼저, 고용주를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아야 합니다(딤전 6:1). 우리는 흔히 "공경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고 말하지만, 여기서는 상급자를 무조건 공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 일에 실패하면,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훼방을 받게 됩니다." 믿지 않는 자는 당신을 당신의 하나님의 대리자로 보기에, 당신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고용주에게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하지, 맡겨진 것의 일부를 떼어먹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딛 2:10).

   종종 "부수입" 같은 것을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장이 아주 난처할 수가 있는데, 특히 정기적으로 부수입이 생기는 부서에서 일할 때 그렇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거절하면 동료들이 그 동안 부수입을 챙겼다는 것이 폭로될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특별한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당한 소유가 아닌 것을 받음으로써 당신의 입장을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그렇게 하면 당신의 간증은 무너지고 맙니다.

   만일 당신의 고용주가 믿는 자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특권을 얻으리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또는 믿는 형제이므로 남달리 가까운 관계가 될 줄로 기대할 수 있으나, 그러나 영적인 관계가 사회적인 평등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직장에서의 고용관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지역교회로 모일 때는 형제로 대할 수 있으나 (연장자일 때는 물론 연장자로 대해야 합니다), 일터로 돌아가면 다시 상사로 대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는 불평불만을 일삼고 상사에게 대드는 그런 사람으로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처음에는 뒷전에서 목소리를 내다가 불평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일을 선동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억울한 처지를 돕고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런 식의 태도로 인해 잃어버린 당신의 간증을 되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딛 2:20). 당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믿는바가 아름다운 행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하십시오.

   믿지 않는 자들은 매일의 삶의 긴장과 압박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다르다는 것과,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력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모범적인 고용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또 한가지 위험이 골로새서 3장 22절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눈가림" 으로 일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용주가 지켜볼 때만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아주 열심히 일을 합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의식한다면,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임을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늘 기억해야 할 사실 중 하나는, 그 일을 통해 당신이 주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월요일도 주일처럼 주의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주일에 교회에서 하는 봉사로만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일은 그보다 훨씬 의미가 넓습니다. 주의 일은 당신이 날마다 하는 모든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일터에 있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있든 항상 자발적으로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또 일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당신의 영적인 의무를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만일 당신에게 새로운 자리가 제시된다면 영적인 문제들을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그 자리를 수락하면 집회를 자주 못 나오는데도 굳이 수락해야 할까요? 보직이 바뀌어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회를 정기적으로 불참하게 만드는 자리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부득이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곳에 지역교회가 없다면, 당신이 굳이 거기로 가려는 동기가 무엇일까요? 그 지역을 복음화하려고 가는 걸까요, 아니면 돈과 승진 때문에 가는 걸까요?

   돈을 사랑함이 동기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십시오. 당신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일하기를 거절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살후 3:10). 그러나 그 목적이 당신의 필요를 채우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는 돈을 사랑함에 먹이가 된 사람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스릴 수 있다고 자신하며 유혹에 접근합니다. 그러나 그 유혹은 곧 빠져나올 수 없는 올무가 됩니다. 그 올무는 그의 마음을 찌르며 괴롭힙니다. 슬프게도 그는 마침내 "침륜과 멸망"에 빠져 이생과 영원세계에서 크나큰 손실을 당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려다가 그런 올가미에 걸려드는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부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부를 당신 스스로 목표로 삼는 것은 재앙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대학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해줄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에는 조용한 방법으로 그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동료들이 당신에게 함께 어울리자고 청할 때, 당신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인 당신이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사실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시 "아니요" 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앞으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별도로 복음전할 시간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근무 중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용주의 시간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구별된 삶을 통해 살아있는 설교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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