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양육]

                                                       고등교육(4)

                                                                                                                       - 존 그랜트

       어떤 교회로?


   당신이 함께 하기에 적합한 지역교회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는 조언은 이미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학생으로서 저는 어떤 지역교회에 참석해야 할까요?" 당신이 천거 받은 그 지역교회가 가까운 거리에 있긴 하지만, 혹시 그 교회는 경험을 넓혀주지 못하며 가능한 한 많은 "교제" 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과정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자신이 새로이 누리는 그 자유가 가정에 머물 때는 가능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새로운 학생의 시간과 참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활동들과 관심사들의 범위 안에는, 폭넓고 매력적인 "그리스도인" 활동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집을 떠나온 그 신자에게, 자기가 충분히 관여할 수 있는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은 거의 이겨내기 어려울 정도의 매력으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다른 신자들과 더불어 교제를 갖기 원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네 가지의 대로가 열려 있습니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


   첫 번째는 당신의 지역교회와 허울뿐인 관계를 맺는 데서 그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나 다른 이들로 당신의 영적생활이 건강하다는 인상을 갖게 해줍니다. 하지만 집회에 이따금씩 참석하는 것 외에 다른 영적 활동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참석은 어쩌면 "이따금씩"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정기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에게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관심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가리어줄 뿐입니다.

   두 번째는 지역교회 참석과, 대학 안팎의 다른 "기독교" 단체들 및 활동들에 관여함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그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사귐을 즐기게 해주며 수많은 다양한 활동들로 아주 분주하게 살게 해준다는 점일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청년다운 활력과 에너지를 영적인 방향으로 돌리기 원한다면, 이것은 "구시대의 속박" 에서 "자유"를 가져다주는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가 아닌가요? 또 이러한 넓은 교제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영역들에서 섬길 기회를 가져다주지 않나요? 이것은 다른 이들이 믿고 있는 바를 배우며 또 새로운 섬김의 대로로 진입할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아닌가요?

   세 번째는 그 지역교회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 교회에는 청년들이 별로 없다는 아니면 그 교회의 교제는 빈약할 뿐 아니라 시대에도 뒤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들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다른 "교제들" 과 비교해 볼 때, 그곳의 교제는 영 재미없어 보이고 자신이 바라는 가슴이 설렐 만한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그 교회에서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이 그 학생으로 하여금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것은 대학이 있는 지역에서는 흔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네 번째는 그 지역교회에다가 당신의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증거와 교제를 돕기 위한 모든 영적 활동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집을 떠나 있는 당신의 영적인 집이 될 그곳에서 당신의 영적 생활을 진보케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여러 선택의 길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교회들과 단체들에서 훌륭하게 그리고 신실하게 섬기는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학생으로서 당신이 만나는 다른 청년들 중에는 자신들이 관여하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넘치는 열심을 품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청년들이 타인에게 전도하려는 불타는 소원을 지니고 있을 때, 그 열심은 커다란 설득력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활기와 헌신은 당신의 지원을 받을 만하다고 믿게 만듭니다. 이것이 특히 참될 때는 언제일까요? 가정에 머물면서 속했던 지역교회에서 진리의 자리를 전통이 차지했다든지 활력 대신에 냉담함이 만연하다든지 하는 경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선택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에서 영적생활을 위해 유효했던 원리들은 집을 떠나 살 때의 영적생활을 위해서도 똑같이 유효하다는 사실입니다.


   올바르게 선택하기


   첫 번째 선택인 그 지역교회와의 "이름뿐인" 결합은 어떤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학창시절을 무조건 세상 공부에 몰입하는 시기로만 보는 이들입니다. 그 몇 년이 끝나기까지는 영적인 문제들을 내버려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추구해야 할 다른 정당한 관심사가 있을 경우 제자의 삶을 위한 대가는 치를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영적인 일들에 관심을 가진 성도들에게 이런 견해는 유익을 끼치지 못합니다.

   두 번째 선택은 "기독교적" 으로 분류되는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에 순종해야 마땅합니다. 우리의 주님이라고 공언하는 그분을 섬기려고 힘쓴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이같이 행하는 것은 신령한 청년 형제 자매들의 소원이 아닐 것입니다.

   자신에게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 지역교회를 떠나는 세 번째 선택은 순전히 환경 및 개인적 기분에 기초한 결정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주님을 끝까지 추구하려고 소원하지 않는 당신의 그릇된 영적 추측에 근거한 결정일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선택은 천거 받은 그 지역교회에서 수고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취해야 할 최상의 방침입니다! 만일 그 교회의 성도 수가 적다면 그것은 기회입니다. 당신은 도움을 베풀며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이는 장래의 섬김에 유익을 끼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회는 다방면으로 섬길 수 있게 해주며 만약 다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섬길 수 있는 길이 결코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때 당신의 신앙은 성숙해질 수 있고 이전에 배운 바를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교회의 성도 수가 많다면, 그것도 기회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협력하는 것을 배울 수 있고, 당신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수가 많든 적든 그것은 장래를 위한 굳건한 기초를 놓을 배움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본질적으로 당신이 내리는 결정은 반드시 가정에서든 다른 어떤 상황에서든 유효한 그 동일한 기준을 따라서 내려져야 합니다.학창 생활은 당신을 제자의 책임에서 빼내주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의 교제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성경적인 원리들이 순종되는지에 근거를 두고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컨대, 자매들이 자신들의 머리 덮기 및 집회 시간에 잠잠하기를 거부하여 교회 안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성경적인 원리들이 제켜지고 있는 것입니다(고전 11장과 14장). 혹은 만약에 은사주의 운동이 밀려들어오고 "방언" 등으로 말하는 것이 주장된다면, 늘 위험스러운 "체험' 을 지지하는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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