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단]
벧엘(1)-야곱과 에서
- 짐 베이커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둘을 잃으랴?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창 27:41-46).
이삭에게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첫째 아들이 에서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두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어머니 리브가에게 두 아들의 운명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째 아들 에서가 둘째 아들 야곱을 섬길 것"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아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여러 사건들이 창세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젊은 두 형제 사이의 장자권 거래와 각각의 결혼입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왔을 때,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픈 에서는 팥죽을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과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약점을 이용해 장자권을 샀습니다. 그후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41절에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 때문에 미워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움이 장자권을 거래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 야곱과 에서 모두에게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에서의 발자취를 좇거나 야곱의 발자취를 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특별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은 하나님의 계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계보를 이어가게 하기 위해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창 28:1-5).
여기 하나님의 계보가 야곱으로 흘러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결정적인 요소가 나와 있습니다. 이삭은 야곱이 아닌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이 부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의해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인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를 기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까 의논하고 27장 마지막에서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킵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사용하셔서 야곱으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게 하십니다.
28장 1절에서 이삭이 야곱을 부릅니다. 그리고 2절에서 이삭은 명백하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일어나서 가라." 3-5절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그에게 확정해줍니다. "네가 가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로 번성케 하실 것이다. 너로 가족을 이루고 거기서 많은 자손들을 낳게 할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나그네가 됩니다. 이삭의 가정에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이삭의 가정을 강하게 해서 하나님의 뜻-야곱을 멀리 보내게 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1절에서 5절까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일한 주권이 에서에게도 역사하는 모습이 6-9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창 28:6-9).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고 거기서 아내를 취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에서는 이미 27장에서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로 취한 가나안 여인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 후손으로 아내를 삼습니다.
이스마엘은 성경에서 육신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에서는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잠간 멈춰 적용을 하고자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정말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님께서 우리안에 내주하십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다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과도 구분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구원하실 때 성령을 주셨고 신의 성품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과 제 안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구원을 받았고 이런 축복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천연적인 성품이 있습니다. 이는 육신적인 성품입니다. 이와 같은 육신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갈 5:17).
만일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려 다가오면, 거듭난 성도에게 있는 새로운 성품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언젠가 주님께서 오시면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입니다.- 성령에 거슬려 반응하게 됩니다. 주님은 육체로 이 땅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요14:30). 이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육체를 갖고 사셨으나 죄를 범하지 않은 유일한 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과 에서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계속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야곱은 아직 자신이 스스로 온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접근해 갑니다. 우리는 이 두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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