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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은 이 사람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고 싶었습니다만, 제가 게으른 탓으로 여지껏 올리지를 못했었습니다. 사실몇 시간동안 열심히 블로그에 쓴 적이 있었는데, 한 순간의 제 클릭 실수로 쓴 글을 모두 날려 버린 뒤 의욕을 상실했었습니다.
지난달 10일 퇴임한 칠레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Bachelet)의 이야깁니다.
지난달 9일 칠레 언론들은 한 여론조사를 신문 1면에 대서 특필했습니다. 바첼레트 대통령의 지지율이 84%를 기록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론조사가 왜 1면 거리냐구요.
그로부터 약 열흘전인 2월27일 진도 8.8의 대지진이 칠레를 덮쳤습니다. 그 10일동안 칠레 정부는 사망자 수 집계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혼선을 빚었고, 지진 초기 피해가 경미한 것으로 오판해 외국의 지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당연히 정부는 욕을 많이 먹었죠. 그런데도 퇴임을 하루 남겨 둔 바첼레트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진 이전과 같은 84%였습니다. 단 '싫어한다'는 비율이 10%에서 11%로 1%포인트 올랐더군요.
<그녀가 떠나가던 날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퇴임을 아쉬워했고(왼쪽, 출처 AP연합뉴스, 조선DB에서), 한수리중인 가게 앞에는'대통령 모든 것이 고마왔어요'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오른쪽, 조의준)>
일부에선 "중도좌파 대통령이니 퍼주기를 많이 했겠지. 또 중남미 사람들은 감정적이잖아"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칠레'라는 나라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칠레는 남미에 있지만, 국민성향은 독일과 비슷할 정도로 이성적입니다. LG와 삼성의 마케팅 담당자들도 칠레에서 만큼은 유럽식의 판매전략을 씁니다. 차량도 우리나라라처럼 흰색과 검은색, 은색차가 가장 많이 팔릴 정도로 보수적인 곳입니다.
피노체트 독재 경험을 가진 칠레는 우리나라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좌우대립이 심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하면 우파와 좌파 후보간의 지지율 차이가 2~3%포인트에 그칠 정도입니다. 20년만에 우파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현 피녜라 대통령도 3%포인트 차이로 이겼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길거리로 쏟아져 나가거나 국회에서 멱살을 잡지 않고, 표대결로 승부한다는 것이죠.
가톨릭이 국교로 6년 전에야 이혼이 합법화된 보수적인 나라에서 무신론자에다 이혼녀로, 아빠가 다른 아이 셋을 키우는 싱글맘인 그녀는 정치인으로선 약점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취임초기 지지율은 53%로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초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세계를 뒤흔든 대지진과도 싸워 이겨 84%란 경이적인 지지율로 퇴임을 했을까요. 단순히 외신에서 말하는 것처럼 호황 때 모아놓은 돈을 밑천으로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기 때문일까요.
제 개인적 생각으론바첼레트 특유의 '아줌마스러움', '엄마스러움'이 더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같습니다.그녀에겐 사람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다.
이번 칠레 대지진의 위기 상황에서 그런 그녀의 모습이 잘 나타납니다. 지진 발생 1시간 만에 TV에 출연해 지진 발생 사실과 정부의 대응을 설명한 뒤 곧바로 피해 현장 6곳을 잇달아 방문합니다. 구체적인 대책은 참모들에게 맡기고, 바로 현장으로 뛰어들어가 '엄마처럼' 피해자들을 다독였습니다.
그녀가 항상 강조하는 ‘여성적 리더십’도 빛을 발합니다.근업하게 대통령 궁에서대책발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부들이 주로 보는 TV아침 프로그램에 나가 진행자들과 아침을 먹으면서 정부 대책을 직접 설명했습니다.
임기를 마치기 하루 전인 9일 저녁에 방송된 TV프로그램에서는 “나의 어머니 집에도 물과 전기가 며칠전에야 들어왔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손자 자랑과 어머니와의 관계 등을 말하며 ‘수다’를 떨었고, 젊은 시절 팬이었다는 비틀스의 노래도 직접 불렀습니다.사회자가 “이런 대통령이랑 일하는 게 어떻냐”고 묻자 프란시스코 비달(Vidal) 국방부 장관은 “이제 (함께 일할 시간이) 48시간밖에 안남았네. 아주 좋네요”라고 말해 장내를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크게 소리 내웃기도 합니다.참 자연스럽고 소탈한 면모를갖췄습니다. /AP연합뉴스, 조선DB에서>
칠레 사람들은 그녀가 쓰는 어휘나 말투가 '아줌마' 그 자체라고 합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장을 보러 나온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하도 끊이지 않고 수다를 떠는 바람에 말을 건 사람이놀랐다는 얘기도 들어봤습니다. 영어, 독일어 등 4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의사출신의 엘리트이지만, 그녀에게선 엘리트의 도도함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춤을 춰야 하는 자리에서는 춤도 추고, 노래를 해야하는 자리에선 노래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제가 인터뷰를 갔을 때도, 서류는 양손에 가득 들고 비서도 없이 모네다 궁을 종종 걸음으로 다니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젊었을 땐 골수 공산당원으로, 20여년간 반독재운동을 하다 중남미에서 첫 여성 국방부장관을 지낸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진 사람치고는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솔직히 너무 '옆집 아줌마' 같았습니다.
물론 그녀는 단점도 많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바첼레트 정권 4년동안 분배에 중점을 두다 보니재임기간 칠레의 국가 생산성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 보육정책이나 복지정책을 빼고 실제 칠레가 새롭게 먹고 살거리를 찾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한 것은 없습니다.공공부문의 임금을 올려주다 보니, 사회 전체적으로 임금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봇물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실제 제가 살고 있는 하숙집의 주인은 "무척 좋은 사람이긴 한데, 딱히 한 게 없어. 바첼레트가 잘 한게 아니라 구리값(칠레의 주요 수출상품)이 저절로 올라줘서 잘된 거지"라고 말합니다. 운 좋았고,개혁을 안하다보니 사회적 논란을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구조조정과 일자리 창출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위대한 영도자'를 찾기란 불가능할 겁니다. 어차피 완벽한 지도자가 불가능하다면 엄마처럼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지도자는 어떨까요.언젠가 한 번쯤은 우리에게도 이런 지도자가 등장했으면 합니다.
바첼레트에 대해선 한 번쯤 더 쓸 일이 있을 것같습니다. 그녀의개인적인 삶도 상당히 재미있기 때문입니다.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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