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CEO의 한식만들기] ⑥ `운동하기 전 된장찌개 꼭 먹어요`
체력 소모 많을 때 좋은 발효 영양식
“해외 한식당, 대규모 체인점으로 해야”
[중앙일보]2010.04.02 19:50 입력 / 2010.04.02 19:52 수정
| | | 매튜 디킨 한국HSBC 행장이 본인이 만든 된장찌개를 맛보고 있다. 정치호 기자 | | | “저는 한식당에 가게 되면 꼭 된장찌개를 주문합니다. 짭조름한 된장찌개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을뿐더러 입맛을 돋우는 데도 최고의 음식이죠”
한국 HSBC 매튜 디킨(48) 은행장은 한국 토속음식인 된장찌개 애호가다. 지난해 5월 서울에 부임한 그는 주말에 골프를 치러 나가면 항상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두부가 들어간 된장찌개에다 밥 한 공기를 먹고서야 라운딩에 나설 정도다.
“골프는 장시간 걷는 운동이라 체력 소모가 많은데 티오프 전에 영양가 높고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된장찌개를 먹으면 끄덕 없습니다.”
디킨 행장은 “발효식품인 된장이야말로 건강을 지켜주는 지름길”이라고 극찬하며 특히 고추 양념과 차돌박이가 듬뿍 들어간 매콤한 된장찌개를 즐겨 찾는다고 했다.
영국 국적인 그가 된장찌개를 처음 맛본 것은 지난해 봄이다. HSBC 멕시코 지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한국에 처음으로 온 그가 비빔밥 다음으로 맛본 한식이 바로 된장찌개이다. 첫 숟갈을 뜨는 순간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었던 오묘한 맛에 매료됐다. 그는 그 뒤로 한식당에 가면 줄곧 된장찌개를 찾고 있다.
“영국에는 그다지 맛있는 음식이 많지 않습니다. 샌드위치와 ‘피시 앤드 칩스(생선튀김과 감자칩)’이 그나마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죠.”
궂은 날씨 때문에 다양한 향신료가 발달하지 못했고 신선한 재료가 부족해 음식의 맛이 밋밋해 영국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된장찌개처럼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각종 양념으로 여러 가지 맛을 내는 음식을 접하고 반해버렸다는 것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뒤 찌개 맛국물을 뽑아낼 멸치 다듬기를 시작으로 디킨 행장은 본격적인 된장찌개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는 맛국물을 뽑아낼 멸치 손질이 쉽지 않은 듯 서툰 한국어로 “어려워요”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요즘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간씩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박창우 주방장의 도움을 받아가며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찌개에 들어갈 호박·두부·파 등을 차례로 가지런히 썰어놓았다. 냄비에 재료를 넣어 찌개 국물을 끓이기 시작하자 박 주방장은 멸치국물을 10분 이상 끓이면 국물이 탁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디킨 행장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럼 된장은 언제, 얼마나 넣어야 하나요”라고 묻자 박 주방장이 “입맛에 따라 넣는 양이 다르다”고 알려줬다. 된장을 국물에 풀어 넣을 차례가 되자 디킨 행장은 “된장찌개가 국물 (liquid)이 맛있는 음식이라면 HSBC도 현금 유동성(liquidity)이 많아 좋은 회사”라고 조크를 던지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식 세계화에 대해서 그는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해외 각지에서 ‘포커스 그룹(시장 조사를 위해 각 계층을 대표하도록 뽑은 표본집단)’을 만들어 외국인들이 실제로 어떤 맛의 한식을 좋아하는지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몇 개의 음식을 선정해 이를 한식의 대표 메뉴로 널리, 집중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대규모 체인점의 한식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멕시코 음식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미국에서 ‘타코벨(Taco Bell)’이라는 ‘텍스멕스(Tex-Mex: 미국식 멕시코 요리)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문을 연 뒤부터”라며 “한식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현지화된 한식당 체인망을 본격 가동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다 끓자 디킨 행장은 “이 냄새가 너무 좋다”며 한 숟갈 맛을 봤다.
“맛있어요. 지금까지 제가 먹어본 된장찌개 중에 가장 맛있어요.”
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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