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지식이나 의로운 행위나 종교적

열심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의 말씀은 누가 제시합니까?

전도의 말씀을 제시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가장 필수적인 사항은 1.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어야 하고, 2.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3.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5 :42). 그러므로 구원은 스스로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확신하고 체험한 사람이 전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체험을 한 사람들은 이 놀라운 체험을 스스로 마음의 장롱 속에 감추어 두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시 세상으로 나아가 내가 만난 이 그리스도를 "와서 보라"(요1 :46, 요4 :29)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또한 생명을 소유하고 새로 거듭난 모든 영혼들과 함께 주님의 약속대로 이 놀라운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날을 성도의 유일한 소망으로 여기며 그들과 함께 이 날을 기쁨으로 기다립니다.

그러나 구원은 복음에 대한 지식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구원 얻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개인의 지식이나 선행이나 공로 또는 종교적 열심을 보시고 구원하지 않으시며 또 구원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강조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순수한 복음의 말씀은 구원 얻기 위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어떠한 종류의 행위라 할지라도 행위가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편에서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사실을 전하는 자 자신이 지식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지르는 잘못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었을때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2.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인격과,그리고 3. 그분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주장하신 주장 등의 복음의 핵심진리를 통해 복음을 우리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는 이때에 거듭나지 않은 영혼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깨달아 알게 되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말씀으로 복음교제를 지속함으로써 구원 얻기를 원하는 영혼들을 도와 그들 스스로 마음으로 믿고 난 후에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까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많은 복음교제를 하고 난 후에 그들 믿지 않는 자들이 이제는 복음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충분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그들이 알고 있다고 하는 복음에 관한 지식 또는 정보를 복음을 듣고 배운 형식에 맞추어 다시 말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 결과를 통해서 이들이 복음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제 드디어 믿음을 고백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들이 구원 받았다고 선언을 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전도는 이와 같이 사람이 정해놓은 몇 가지 단계나 공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도 이와 같이 사람이 정해놓은 몇 가지 단계나 공식에 맞는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지식으로 믿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복음에 대한 완전한 지식은 사탄도 마귀도 다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을 시인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한다고 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닙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에 대한 순결하고 온전한 믿음을 보고 그것에 합당한 순종을 보일 때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해주시고 친히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친히 하나님의 생명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인 전도자는 단지 이 사실을 잘 분별해주고 인정해주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지 전도자가 생명을 주고 구원을 허락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면 그분께서 하나님이신 것도 알게 됩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 우리는 그분 거룩한 분 앞에서 완전한 죄인임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이 거룩하신 분 앞에서 우리는 회개하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서 우리 믿음의 진정성을 알아보시고 우리 안에 내주함으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자녀로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났다고도 말하고 믿고 구원을 얻었다고도 말하며,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도 말하며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각각 동일한 뜻과 다른 조명으로 다른 앵글(각도)에서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에서는 모두가 같은 말인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 :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의 허물과 형벌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이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포함합니다. 이 모든 우리의 죄들은, 우리 구주께서 2,000년 전에 죽으시고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그 모든 죄를 가리웠던 그 때에는, 모두 미래의 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명확한 진리 중 하나가 실제에 있어서는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받아들이기에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진리는 다름이 아니라 구원이 선한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리스도인 생활을 행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게 들릴지 모르지만 선을 쌓아온 착한 사람들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변함없이 증거하고 있는 바는 노력한다고 구원을 획득하지 못하며, 무슨 훌륭한 도덕적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엡2 :9, 롬3 :20, 4 :4,5 9 :16, 11 :6 갈2 :16, 3 :11) 사람은 선행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의 모든 의로운 행실은 하나님이 보실 때 더러운 누더기와 같은 것입니다(사64 :6). 사람은 그리스도인처럼 산다고해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으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 그 속에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착하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하고 믿고 구원받은 죄인들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선행이 구원을 얻게 하지는 못합니다. 선행이란 구원의 결과입니다. 참된 구원이 있으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선행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니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함을 좇아"(딛3 :5)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원은 "긍휼"이 행하는 일입니다. 공의가 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공의는 받아 마땅한 형벌을 내리라고 요구합니다. 긍휼은 그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의로운 길을 전해 줍니다.

구원은 종교적인 열심과 종교적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 :9).

성경말씀은 분명하게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앞 절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에 대한 부연 설명입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교리를 염두에 두고 말 한 것이 분명합니다. 실로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믿음 이외의 어떠한 인간 편에서의 조건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의 교리가 믿음에 있어서 최소한의 의로운 행위나 최소한의 종교적 열심도 필요 없는 것이지만 인간 편에서 선택을 결정하는 순종적인 행함의 필요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순종적인 행위 즉 믿음을 받아들이고 순종을 결단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약2 :26). 우리는 선물을 받을 때 손을 내미는 행위를 논쟁을 위한 논쟁을 제외하고는 선물 얻기 위한 행위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생긴 이후에 믿고 순종을 결단하는 행위는 믿고 구원을 얻기 전에 구원 받기 위하여 행하는 의로운 행위와 종교적 열심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구원이 행위에 의하여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논쟁적으로 반응할 때 흔히 믿음도 일종의 믿는 행위가 아니냐고 말한다면 이는 떳떳한주장이 아니라 궁색한 자기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도덕적이든지 종교적이든지 일이나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구원은 사람들이 어떤 수고나 고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다음의 것들은 행위 자체로는 칭찬 받을 만하고 훌륭한 행위 일지라도 다음과 같은 행위 곧 1. 서원 2. 세례 3. 성직 안수 4. 교인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 5. 교회에 참석하고 성수주일하는 것 6. 성만찬에 참석하는 것 7. 십계명을 지키려는 노력 8. 산상보훈에 따라 사는 삶 9. 새벽기도 10. 구제 11. 좋은 이웃이 되는 것 12.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 등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음에 행위를 더해서 구원받지도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단 몇분만이라도 구원을 받기 위하여 또는 영생을 위해서 일을 행한다면 당신의 구원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닙니다(롬11 :6). 행위가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배제된 이유 중에 하나는 인간의 자랑을 막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자기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롬 3 :27). 그러므로 성경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완전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과 이유를 분명하게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고 하여 부정적인 표현으로 강하게 강조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반영하여 긍정적인 면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목적과 이유는 '이는...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 :6)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역사이므로 인간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갈 2 :21).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죄인이 죄인 편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른 어떠한 길도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는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구세주가 되며, 그렇게 된다면 그는 또 스스로 자기 자신을 경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은 이를 율법으로 금하셨습니다(출20 :3).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또 자기 행위를 더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보다 그럴듯하게 말을 한다면 거기에는 죄인과 구세주라는 두 구원자가 공존하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죄인도 자기행위로 자신을 구원하였으므로 구원자가 되고 주님도 구원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그 영광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어야 하는데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사 42 :8). 더하여서, 만일 어떤 사람이 선한 행위로 말미암아 자신의 구원에 동참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빚진 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으십니다(롬 11 :35).

행위와는 반대로 믿음은 자랑을 배제합니다(롬3 :27). 왜냐하면 믿음은 자랑 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신뢰한다 해도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자연적이고 이성적이며 단순하고 합리적인 순종의 결단이자 순종의 표시입니다. 자기의 창조주와 구세주를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것만이 피조물인 인간의 편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결단입니다. 만일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인간이 누구를 신뢰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생의 씻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은 진실로 새로운 창조이며(고후5 :17), 여기 디도서 3 :5절에서는 새로운 창조는 목욕에 비유해서 나와 있습니다. 이는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거듭나는 데는 단 한번 목욕하면 되지만 더렵혀지면 여러 번 씻을 필요가 있다고 가르쳤을 때 사용하신 비유와 동일 하신 것입니다.(요13 :10) 이 중생의 목욕이라고 함은 세례와 전혀 무관합니다. 이것은 물로 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덕적인 씻음을 받는 것입니다.(요15 :3)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주장은 잘 못된 것입니다. 세례는 이곳에서 말하는 목욕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이 목욕의 상징조차도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어 죽은 것을 묘사해주는 것입니다(롬6 :4).

우리의 중생을 가리켜 또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옛 사람에게 새 옷을 입혀주는 것이 아니라 한 새 사람에게 그 새 옷을 입혀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중생을 이루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중생 곧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 되는 것이지 지식이나 의로운 행위나 종교적 열심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엠마오성경학교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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