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
자기부인
- 마일즈 스텐포드
그리스도인이 자아 생명의 끔찍한 압제를 발견하고 그러한 압제에 대항하여 끝없이 투쟁하기 시작하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자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시도하는 방법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가지 길만을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는 먼저 사람이 중심이 되는 방법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육신을 죽이기
자기에게서 잠시 동안(또는 심지어 언제나) 어떤 것들을 부인하려는 시도는 옛 본성이 어떤 상황에서든 적응하고 번성할 것이기 때문에,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데 대한 해답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자기에 대한 죽음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시도도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자연적 관계와 인간적 관계를 거부하고 사막이나 산속 같은 은둔장소로 들어가 금식하고 노동하며 육신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들의 의도는 선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방법은 추천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옛 아담의 본성이 이런 방식으로 정복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옛 아담의 본성은 십자가의 죽음 외에는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질기기 때문에 몸을 괴롭히거나 육정을 굶기는 방법으로는 죽일 수 없다." (A. W. Tozer).
정복하기
아마 모든 것 중에 가장 진이 빠지게하고 지치게 하는 시도는 이 반항하는 자아를 정복하고 통제하려는 투쟁일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더 많은 집회, 더 많은 성경공부, 더 많은 기도를 끝없이 시도하지만, 어떤 것도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 되지 못합니다.
훈련
이 방법은 오랜 세월동안 시도되었지만, 자아 생명으로부터 벗어나기에는 부족한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가정과 교회에서 훌륭한 기독교식 훈련방식과 문화를 만들어서 옛 본성을 억제하고 올바로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부흥주의
또 다른 실패 방법은 1년에 한두 번씩 특별집회를 여는 관행입니다. 이러한 일은 외부의 지도자(회중의 개인적인 문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를 초청해서 집회를 열고, 부흥집회의 관례(고백, 새로운 결심 등)를 회중들에게 시행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은 이것을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로 시행하는데, 사실상 그런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더라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성장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언젠가는 자아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무수히 많은 교회 활동과 의무들의 관행을 좇아 터벅터벅 걸어가고(또는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아는 결코 변화되지 않고 항상 그대로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요 3:6).
"화를 내거나, 앙심을 품고 있거나, 불친절하거나, 불공정하며, 신실하지 못하고, 사랑스럽지 않고, 악의적인 말을 할 때 자아는 철저하게 악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자아가 그럴 듯한 모양을 띠고 있기 때문에 악한 마음이 가려지게 된다. 우리가 우리의 겸손을 뿌듯하게 여기고, 우리의 섬김으로 만족하고 있을 때, 또는 우리가 정통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 때와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우리는 선두에 서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의 목소리로 인해 느끼는 자만심으로서 많은 기도집회를 망치고 있다."
씻음
끝없는 자백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씻음이라는 방법 역시 대중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요한일서 1장 9절은 이미 지은 죄들과 관련된 말씀이지 그 죄들을 유발하는 근원되는 자아와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나의 죄들을 씻을 수 있지만, 나의 "옛 사람"을 씻을 수는 없다. 그것은 죄인인 나를 못 박을 십자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처리되지만, 우리 자신은 십자가로 처리된다. 보혈은 우리의 죄 용서를 가져오지만, 십자가는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온다. "
체험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날 가장 유행하는 시도들 중에 하나는 방언을 포함해서 "성령 세례"를 받으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들보다 가장 위험하고도 애처로운 함정이며, 종교적으로 만연해 있는 자아의 나타남입니다.
"갈보리는 오순절보다 앞에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은 성령의 충만함보다 앞에 있다. 능력!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옛 피조물에는 즉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능력을 베풀지 않으신다. 사탄은 '옛 아담'에게 능력을 주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인간이 취해온 이런 방법들이 비록 의도는 선할지 모르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실패야말로 하나님의 길로 들어가는 통로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이제 그렇다면 자기부인에 대한 하나님의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단지 한 가지 방법만을 갖고 계시며, 이것은 그분의 모든 다른 길들의 기초 위에 서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완결된 사역의 원리입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길은 그분께서 이미 다니셨던 길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정복하시고 완수하신 길입니다.
십자가 - 하나님의 길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들이 흘러나오는 본성인 자아를 완전하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처리하신 것은 바로 갈보리의 십자가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새롭게 되지 않은)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죄의 도구가 된 우리 몸)이 무력화되어 우리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롬 6:6, Amplified Bible 번역). 자아가 부인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있어서 그분과 연합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육신은 오직 십자가에만 복종할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수양회에서 하는 결심이나 어떤 종류의 자기노력에도, 자기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는 어떤 시도에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에만 복종할 것이다(갈 2:20). 이것은 여러분 자신을 죽음에 넣음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그분과 연합된 자리를 믿음과 복종으로 취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과 육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안전하고 복된 장벽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 (G. Watt).
갈보리의 십자가는 주 예수님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주님의 죽음은 죄를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죄에 대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죄에 대해 죽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죄의 영역으로부터 나오셨고, "생명의 새로움" (롬 6:4) 즉 영원한 생명의 영역 안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갈보리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죽음 안으로 인도되어 무덤으로 내려갔고 다시 생명의 새로움 안으로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먼저,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았고" (롬 6:3), 그 다음에는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으며" (롬 6:4), 그 다음에는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입니다. 또한,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으며" (골 3:3),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자로 여겨야" (롬 6:11) 합니다.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이 모든 일이 갈보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갈보리에서 우리의 죗값은 지불되었고. 우리의 죄인됨이 다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죽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의 완결된 사역을 단순히 받아들임으로써, 즉 믿음으로써 십자가 사역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우선,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에 대해 행하신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철저하게 확신하게 되고 그것을 분명하게 깨닫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이루신 사실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할 때 우리는 완결된 사역의 혜택을 경험으로 받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을 때에도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자아 생명의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는 문제에 있어서도 이 원리가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하늘에 있게 만들고 죄책을 지우며 하나님과의 사귐을 회복시킨 십자가의 강력한 효과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서 사람에 대한 죄의 권세를 무너뜨린 또 다른 효과와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십자가가 우리로 하여금 희생을 하고자 하는 소원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행하고 완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고 가르쳐준다. 이 사실은 갈라디이서에서 놀랍도록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어떤 곳에서 십자가는 죄책을 위한 화목으로 제시되어 있다(갈 3:13). 하지만 다른 세 곳에서는 십자가가 죄의 권세에 대한 승리라고 훨씬 더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십자가는 자아 생명과 관련하여(갈 6:14), '나'를 죽음의 자리에 붙둘어 둘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동일시)은, 그리고 그러한 연합에서 기인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일은 십자가에 의하여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위에서 나타나는 능력의 결과라고 설명되어 있다." (Andrew Murray).
우리가 갈보리의 완결된 사역의 기반 위에 서는 것을 배워갈수록 성령께서는 십자가의 그러한 완결된 사역을 자아 생명에 신실하고 효과적으로 적용시키시고, 그럼으로써 성령께서는 자아 생명이 작용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죽음의 자리에 묶어 두시며, 우리로 하여금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 인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갈 2:20).*
'횃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리등대] 교회의 징계 (2) (0) | 2020.05.26 |
---|---|
[기쁜 소식] 천국은 공짜다! 공짜를 모르고 지옥에 간 사람들 이야기(10) (0) | 2020.05.25 |
[예배와 기념] 왕과 그의 영광 (0) | 2020.05.23 |
[권두언] 꾀임(2) (0) | 2020.05.22 |
[생각해 봅시다] 간추린 교회사 (0) | 2020.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