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전략]
전도의 5단계
진단 해설(8)
- 허 윤욱
4. 지옥 ②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3:42).
지옥을 전하는데 대한 말씀의 조언들
(1) 죽으면 천사가 데려간다.
누가복음 16장 22절에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거기서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라고 기록되어있다. 또 마태복음 13장 41절에는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라고 기록 되어있다. 두 말씀은 죽은 자들을 데려가는 천사들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인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저승사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두 말씀의 공통점은 먼저 천사에 관하여 복수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즉 천사들이라 하여 둘 이상의 천사를 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 나사로를 낙원으로 데려간 사자는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옥의 사자는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는다고 증거하고 있다. "받들려"와 "던져 넣으리니"는 정반대의 언어이다. 천국에서 온 천사는 받들어 모셔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옥의 천사는 거두어다가 던져 넣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저승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하늘나라를 지칭한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온 사자는 천사(天使)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저승사자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면 도전이 되는 것을 볼 수있다. 대부분이 저승사자를 믿는다. 특히 높은 연령층은 더욱 믿는다. 성경에 천사는 남자다. 그리고 창세기 19장에 소돔과 고모라에 왔던 천사들은 두 명이었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알고 있는 저승사자를 구체적으로 성경을 보여 주면서 전도하면 반응이 좋다. 지옥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와 천국으로 데려가는 저승사자를 설명하여 전도하기 바란다. 죽어가면서 저승사자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용하면 좋은 효과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최근 필자는 여천교회의 한 부친의 소천을 보았다. 그는 "밤새 왜 이렇게 와서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가느냐? 무슨 말이라도 해라" 하는 말씀을 하셨다. 모친이 "아무도 없는데 누가 왔는가" 물으니 "당신 눈에는 안보여도 내 눈에는 보인다. 신사들이 와서 그냥 보고만 간다" 하였다.
앞에서 본대로 신사적으로 모셔가는 천국행 천사와 강제로 끌고 가는 지옥행 천사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모친에게 물었다. "두려워하셨습니까?" 모친은 드려워하지는 않고 그냥 신사들 이 왔다가 갔다고만 하였단다. 이틀 후 그는 주무시듯이 주님께 갔다.
다시 말씀 드리거니와 저승사자 이야기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전도에 잘 활용하기 바란다.
(2) 죽음의 정체를 풀어줘라.
죽음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모든 사람이 죽음앞에 있으며,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이 문제는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요 최대 관심사이다.
죽음은 "분리"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흙과 생기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흙과 생기가 분리되면 죽음이다. 세상 모든 것은 분리되면 죽음이다. 나무가 뿌리에서 분리되면 죽는 이치다. 사람도 뭉치면 살고 나누이면 죽는 이치다. 전선이 변압기에서 분리되면 죽어서 전기가 단절된다. 죽음의 이치를 잘 설명하면 전도에 큰 도움이 된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째는 흙과 생기가 분리되는 죽음이요, 둘째는 하나님과 영원한 분리로 지옥에 던져지는 영원한 죽음이다.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서 믿는 것만은 아닐지라도 전도자는 최선을 다하여 필요한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죽는 것인데 그 후에 두 길이 있음을 전하는 것이 좋다. 두 길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여 전도하면 사람들이 잘 이해하는 것을 필자는 수없이 보았다.
(3) 지옥이 있을 수밖에 없는 논리를 정립하라.
① 지옥이 없다면 지옥이라는 단어도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세상에 불신자들도 지옥이라는 단어를 얼마나 사용하는가. 저들은 지옥을 일반으로 이야기한다. 조금만 힘들어도 지옥의 고통이라고 한다. 차가 막혀도 교통지옥이라고 한다. 입시지옥도 이야기한다. 수많은 곳에 지옥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그러면서 지옥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모르는 가운데 저지르는 인간의 실수요 모순된 언행이다.
세상은 말이 현실로 나타나는 역사의 연속이다. 하늘을 날고 싶다고 말하고 비행기가 만들어졌다. 작은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고 말하여 스마트 폰이 만들어진 것이다. 세상의 이치가 사람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오고 그 후에 그것이 사실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온 역사다.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다.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지옥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지옥은 있으며 있을 수밖에 없다. 불신자들 앞에 지옥이 현실로 나타날 때 저들은 절망할 것이다.
② 세상에 인과응보의 법칙이 존재한다. 이것이 지옥이 있는 증거다.
사람의 사는 곳에는 법칙이 있다. 일을 하면 거기에 대한 대가가 있는데 이것이 월급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것이 고생이지만 그 열매가 결국은 인격적인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인간의 일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를 들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한 개미는 결과가 아름답다. 뜨거운 여름을 견딘 나무는 가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 식물들도 동물들도 노력에 따른 열매를 먹는다. 이것이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선하게 살거나 악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악한 사람이 잘되고 선한 사람이 망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것이 그것으로 끝난다면 선을 행하여야할 이유가 없다. 악인이 아무런 대가없이 죽어 끝난다면 선을 행할 이유가 무엇인가. 반드시 심판이 있어야 한다. 지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과응보가 불교용어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임을 알아야 한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되지 못하며 장수하지도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 이니라" (전 8:11-13).
③ 세상의 모든 것은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연결된다.
자동차가 있으면 어디엔가 이 차의 운전자가 있다. 집이 있으면 어디엔가 그 집의 주인이 있다. 학생들이 길을 걸어감을 볼 때에도 학교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학생들의 존재만으로도 학교가 있다는 것을 쉽게 믿는다. 맛있는 과일을 가게에서 사먹으면서 과일을 생산해낸 농부가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죄인들이 있으면 지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황당하고 무모한 것인가? 이것을 못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이상한 사람이다. 사실 전도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인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서 항복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깨닫고 보니 창조주를 믿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가? 얼마나 우리들의 믿음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고 논리적이며 인격적인가.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악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④ 인간의 본능이 지옥을 믿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옥을 알고 있다. 어떤 영국 사람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문명의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한 문자도 없는 부족을 만났다. 그들은 마침 장례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시체를 땅에 매장하지 않고 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놓아 새들의 밥이 되게하는 것이다. 이상히 여겨 질문하니 땅에 묻으면 지옥가고, 새들의 밥이 되게 하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 것이었다. 얼마나 놀라운가? 저들은 문명을 통해서 종교를 배운 적이 없음에도 양심으로 지옥 천국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옥을 믿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로 보통 언어 중에 하늘의 벌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나쁜 짓을 하면 벌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본능이 지옥을 믿고있는 증거들이다. 또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나쁜 짓을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 것도 본능에 속한 현상들이다. 죄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을 알지 않는가? 이러한 것들은 다 양심이 지옥을 믿고 있는 증거들이다.
⑤ 모든 종교는 심판과 지옥을 말한다.
모든 종교는 심판과 지옥을 이야기 하는데 다만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뿐이다.
본래 종교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만든 사탄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고 벌을 받으니 선을 행하라는 것이며, 선을 행하지 못하였으면 벌을 받거나 대가를 다른 방법으로 치루라는 것이다. 종교는 선을 가르치는 듯하나, 실상은 인간의 약점을 이용한 거짓말일 뿐이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종교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종교의 본질이 이러하므로 심판과 지옥을 말함은 당연한 것이다. 종교가 심판과 지옥을 말하는 데까지는 성경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용어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 받아 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죄와 심판에서 해방시켜주는 피의 속죄가 있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을 다루는 진리임을 강조해야 한다.
⑥ 지옥은 내세이기 때문에 잘 이해를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지옥을 전해도 잘 믿지 못하고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잘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경고한다. 실제로 우리가 보지 못한 내세를 담대하게 전하지만 온전한 은혜의 깨달음으로 전하는 것이지, 실감나게 지옥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지옥을 다녀온 경험으로 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지만 실제로는 저들이 믿을 수 있도록 주님이 도우셔야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이 아니면 우리가 내세의 어떠함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내세의 어떠함을 마치 경험한 사람처럼 당당하게 전하는 우리는 대단한 은혜를 입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성경도 믿을 수 없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 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행 13:41).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믿지 못할 것을 주님의 은혜로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전할 때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여야 할 것이다. 또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라 하는 것이니 인내심으로 저들을 긍휼히 여기며 전도하여야 할 것이다.*
필자와의 상담은
061-681-1638, 010-2615-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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