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강단]


                                                          요한복음

                              일곱 기적(6)


                                                                                                                                     - 피터 위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요 6:14-15).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그들은 아주 흥분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예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신 18:15).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먹게 한 인도자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이 같은 선지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 1:21). 그런데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그 선지자"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선지자" 는 "메시아"이며 또한 "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 6:15).

   그들은 왕을 원했고, 자신들을 먹일 왕을 원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 능력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롭게 하고 독립된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시대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러한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이미 왕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왕이 되실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왕이 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주님을 왕이 되게 힘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유대인의 왕으로 그들을 통치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죽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유대인과 세상의 왕이 되실 때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억지로 왕이 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그래서 그들을 보내시고, 그리고 제자들을 배로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보내시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네 번째 기적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 같은 기적은 주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이 곡식과 물고기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입니다. 주님께서는 물을 만드시고 물을 다스리셨습니다. 주님은 식물 즉 나무와 채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식물들을 사용해 빵을 만듭니다. 주님은 또한 동물들, 물고기를 만드시고 다스리십니다. 여러분은 아마 물고기와 연관된 주님의 기적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했습니다. 그 전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밤이 맟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깊은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4-6).

   베드로는 경험이 많은 어부였고 주님은 목수였습니다. 목수가 어부에게 물고기를 어떻게 잡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네 명의 어부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그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물을 하나만 내렸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을 반만 믿었고 반만 순종한 것입니다. 반만 믿고, 순종해도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갑자기 많은 고기들이 그물로 들어왔습니다. 그 많은 물고기로 인해서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당황하여 급히 다른 사람들을 불러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을 온전히 순종하였다면 네 개의 그물울 모두 내렸을 것입니다. 네 명의 어부가 있었으므로 네 개의 그물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그물을 내렸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훈 받게 됩니다. 어떻게 이 고기가 그물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고 그 물고기들을 다스리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물을 내린다고 해서 항상 물고기들이 그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 물고기들을 그물로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로서의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만물을 통제하시는 주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리고 또한 다른 물고기들과 다른 동물들을 다스리는 기적들이 여러 번 기록되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기록한 네 번째 기적이며,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다섯 번째 기적과 연결됩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 6:16-21).

   이것이 그 다음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그들은 이제 밤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한 밤중에 갈릴리 바다에 폭풍우가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물 위로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절대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장비를 만들어서 하기도 합니다. 발에다 아주 큰 페달을 만들어 물 위를 걷는 것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발자국을 갈 순 있으나 곧 물에 빠지고 맙니다. 이 배는 이미 육지에서 약 3.5마일쯤 되는 그 바다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전체가 10마일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있는 배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은 3.5마일 정도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거리를 걸어서 가신 것입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물의 원소들마저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물과 바람과 파도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주님은 바다의 파도와 바람을 다스리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폭풍우가 일어나자 이 배가 잠기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아주 두려워하여 주님을 흔들어 깨우며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은 일어나셔서 뱃머리로 가셨습니다. 파도와 바람과 물결에게 잠잠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파도는 멈추고 물은 잠잠해졌습니다. 참으로 주님은 폭풍우를 다스리고 원소들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흔들어 깨울때, 주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그들은 몰랐습니다. 아마도 주님이 단지 물을 배 밖으로 빼는 작업을 도와주시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고 말씀하셨고, 폭풍우가 멈추자 그들은 놀라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런 일을 행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분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일을 행하시는가? 이 분은 어디서 오신 분이기에 이런 일을 행하시는가? 그들은 아주 놀랐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 보면, 이때는 주께서 배 안에 계시지 않고 밖에 계셨습니다. 바다 건너 해변에서부터 걸어오신 것입니다. 주는 물 위를 걷는 것에 대해서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땅을 걷듯이 걸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처럼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물은 견고한 물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떠한 사람도 3.5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물 위로 걸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 중력을 다르게 작용하였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중력을 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물을 걸어서 배 위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전처럼 풍랑의 위험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자 아주 두려워하였습니다.

   주께서 다가오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내니"는 아주 중요한 표현입니다. 영어로는 "I am" 입니다. 일곱 번 이상 주님은 요한 복음에서 "I am"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는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 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힘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 8:53-58).

   주님은 사역 전체에 걸쳐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기적 가운데서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막 2:1-12).

그리고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으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이를 거부하였고 주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다시 한 번 주는 자신이 하나님 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큽니까?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 생각합니까? "아브라함은 2000년 전에 죽은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6). 이 말은 유대인들을 분노케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30세가량 되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50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라고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 주님은 그들에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I am", 이것은 주님께서 영원토록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시고, 현재에도 계시고, 영원 후에도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I am"이라고 말씀하실 때 출애굽기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4).

"스스로 있는 자" 는 "I am" 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의 때를 보았고 즐거워 하였다" 에 대해 유대인들은 창세기 18장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 18:25). 여기서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온 땅을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처럼 나타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장면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 세 분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시며 세 인격을 가지신 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사람의 모양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모양을 가지지 않습니다. 아들 하나님만이 사람의 모양을 입으시는 것입니다. 아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I am" 즉 내가 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척 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요 6:21-22).

   주님께서 그 배를 타셨을 때는 육지로부터 3.5마일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배에 오르자마자 그 배는 땅에 도착한 것입니다. 요한이 그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모든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육지까지 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일초 안에 배는 육지로 도착해 버린 것입니다.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자연의 원소들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까요? 요한은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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