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넓은 길로 가는 신자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13,14)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섭고 놀라와 가슴이 떨리는 내용이 많다. 앞에 기록한 말씀도 그 중의 대표적인 말씀이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고 있지만 그러나 진정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지극히 적은 숫자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수 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 앞에 기록한 말씀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계속 읽어나가면 거짓 선지자에 관한 말씀으로 연결되어져 있다. 그 거짓 선지자들은 이 시대 기독교의 거듭나지 못한 지도자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전 생애를 드리며 고생하며 충성을 다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은 거짓 선지자요, 멸망의 자식이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으며 찾는 이가 많다는 말씀이 두렵지 아니한가. 생각하여보라.

   기독교의 지도자로서 소경의 눈이요, 길 잃은 자의 안내자요, 상심한 자의 위로자요, 양들의 목자라고 자처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이 멸망의 지옥 불에 떨어져서 끔찍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들 자신은 (지옥을 진실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의 지옥에 떨어지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은 하나님을 향하여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천국이 있다면 들어감은 물론이고 각종 면류관을 받게 되리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멸망의 지옥에 떨어졌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무서운 일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가 누구인지 필자는 모르지만 이 글을 통하여 자신을 점검해보기만 한다면 하나님의축복이 그대에게 함께 할 것이다.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큰 교회, 유명한 교회, 유명한 목사님들이 목회 하는 교회, 큰 교파에 속하여 있는 자신을 스스로 위로한다. 그와 같은 교회에 속하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필자는 대규모 교회의 유명한 목사님을 자랑하며 자신은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소경을 수없이 만나보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을 만나보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자기의 경력이나 자기가 속한 교회의 자랑을 늘어놓기 일쑤이다. 거짓 목자들은 거짓 목자로 살았기 때문에 멸망의 지옥에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들을 따라가다가 지옥 불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어찌 한단 말인가.

   그들은 왜 성경에 대해서 무지하냐고 물어보면 우리 교회 목사님이 성경을 잘 가르치고 훌륭한 믿음으로 인도하니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직접 그렇게 말하지 않을지라도 그런 태도로 이야기한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다시 말하건대 이와 같은 거짓 목자가 참 목자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된 하나님의 종은 정말 찾아보기 힘든 것이 기독교 역사요, 우리의 현실이다.

   거짓 목자 밑에서 배운 불쌍한 양들은 목자를 잘못 만나서 지옥에 떨어진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혹자는 필자에게 말하리라. 어찌 자신 있게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구원의 진리는 비밀이라고, 비밀은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편적인 지식도 아니다. 극히 적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비밀이다. 성경은 구원을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이번에는 성경을 중심으로 구원 받은 자의 적음을 알아보고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서두에 기록된 말씀이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예수님 사역의 초기라고 생각이 된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참된 진리를 증거하며 불의를 지적하고 선한 양심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지 아니할 것을 이미 아셨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십자가의 현장에서 보듯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들은 적은 무리였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에 동조하였다.

   두 번째로는 누가복음 17장에 기록된 말씀이다. 26절에 보면 마지막 시대가 노아의 시대와 같다 하였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세상에 취해 있었다. 그들은 노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결국 멸망의 지옥에 떨어졌다. 그들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인가. 성경은 겨우 여덟 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베드로전서 3:20).

   얼마나 떨리는 말씀인가. 겨우 여덟 명이라고 하지 아니한가. 혹자는 그 당시 인구를 5억 정도로 이야기한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 한다면 5억의 인구 중에서 겨우 여덟 명이 구원받았다. 기가 막히지 아니한가. "겨우"라는 말에 주목하라.  오늘의 한국 기독교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는 너무 적으므로  "겨우"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지 아니할까. 필자는 믿는다.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다. 지극히 적은 수가 구원받은 것을... .

   누가복음 17장에는 또 다른 말씀도 있다. 롯에 관한 말씀이다.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극적으로 건짐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지옥 유황불에서 구원받는 성도들의 이야기이다.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그들에게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 성읍에서 구원받은 자가 4명이지 아니한가.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에 몇 명이나 건짐 받았는가. 기생 라합과 그의 가족뿐이지 아니한가.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마지막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의 한국에 천만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 중에 과연 얼마나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필자는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 범주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삼분의 일이라 하여도 성경은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 필자가 어떻게 감히 숫자를 다 말할 수 있을까마는 성경의 전반적인 내용은 극히 소수가 구원받을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왔을까?

   첫째는 구조적인 모순에 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였거니와 오늘날 교회 일꾼들을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거듭남을 체크하고 있는가? 필자가 만나본 신학생들의 대부분은 거듭남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후배 목회자는 신학생 시절에 거듭났는데 동료들에게 거듭났느냐고 물어보고 다니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교수님에게까지 왕따 당한 슬픈 간증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으로 참된 하나님의 종을 양성하려면 우선 거듭남부터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냥 신학교에 지원하면 합격하여 졸업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성직자로 세움을 입는다. 거듭나지 못한 일꾼은 거듭나지 못한 양들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주님이 친히 경고하셨다.

   또 다른 나의 친구 목회자는 집사로 재직시에 구원을 받았다. 문제는 이와 같이 구원이 무엇인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집사로 임명되어 교회 일을 참여하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라. 디모데전서를 읽어 보라. 집사는 얼마나 말씀 충만, 성령 충만하였는가.

   두 번째로 오늘날의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에 문제가 있다. 한국의 교회 대부분은 기복신앙에 잡혀 있다. 예수 믿어서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필자가 얼마 전까지 휴대하고 다니던 교회 안내 전도지가 있었는데 제주도의 어느 교회에서 작성한 것이었다. "부자 되기 원하는 사람은 우리 교회로 오라! 교회 출석하여 도장 받아 오면 선물을 주겠다." 어떤 장로가 교회 명의로 내보낸 전도용 안내서였다. 노골적으로 예수 믿어서 부자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헌금 잘 내고 십일조 떼어먹지 아니하며, 또한 열심히 충성하면 축복 받아 잘되고 부자 된다고 말하고 있다. 가난한 것은 축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받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건강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예수 믿어서 병 낫고 건강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다. 실제로 병 고침 받기 원하는 자는 기도원으로 오라는 전단지를 심심찮게 본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이 부자 되는 것도 필요하고 건강한 것도 필요하다. 필자도 성도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와 같이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이다. 성경은 영원한 멸망의 지옥과 천국을 경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거듭나지 아니하면 멸망의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박하리라. 나와 나의 동료 교인들은 다 천국을 믿으며, 천국에 갈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은 기본이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집사님들이 나에게 그렇게 반박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집사님, 지옥이 있습니까?" 하니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서 "정말 지옥이 있습니까?" 하고 되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하였다. 그래서 또 묻기를 "지옥이 어떤 곳입니까? 어떤 사람이 갑니까? 여기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얼버무렸다.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지옥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모르고 있다. 그들의 지옥에 대한 믿음은 막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구체적으로 물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어떤 집사님은 끝까지 지옥을 믿는다고 주장하여 그렇다면 누구에게 지옥을 증거했느냐고 물으니 대답을 못하였다. 정말 지옥을 믿는 사람이라면 지옥을 경고할 것이다. 슬픈 일이다.

   강단에서 지옥을 전하지 않으니 양들이 지옥을 알겠는가? 지옥을 알지 못하니 그들은 구원을 알지 못하고 그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은 적도 없다. 오래 전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목자와 그를 따르는 양들에 대해서 예언한 적이 있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예레미야 5:30,31).

   그 당시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는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속이는 자들이 있었으며, 자기 취향에 맞는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좋아하고 따르는 어리석은 백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오늘날에도 성경의 중심 내용과는 관계없는 기복신앙을 전하여 복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충성하며 헌금을 많이 내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된다고 양들을 속이고 있다. 양들은 그것을 좋게 여겨 천국의 소망과는 아무 관계없는 그와 같은 가르침을 따른다. 그들의 삶은 성경과는 아무 관계없는 죄악된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의 문란한 삶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영적인 삶도 성경을 깨닫고 성경을 사랑하며 성경에서 능력을 얻고 성경을 전하며 성경이 가르치는 소망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 빠져서 적당히 살아가다가 주일날 헌금 좀 잘 내고 목사님 설교 듣고 지은 죄 회개하고 돌아오면 마음이 조금 평안해지며 위로를 받으니 그것이 신앙생활인줄 안다.

   사도행전을 보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러하였는가? 그들이 그렇게 살았는가? 신앙의 깊이는 먼저 내적인 변화에 있다. 영원한 멸망의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모든 죄를 용서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주신 것이다. 모든 죄라는 말에 주목하기 바란다. 그대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된 것이다. 십자가의 능력은 여기에 있다.

   이제 결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에는 많은 사람이 천국에 갈 것으로 생각하였다가 영원한 멸망의 지옥에 떨어지는 참담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땅에서 죽도록 충성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지옥에 떨어졌다.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이러한 비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진정 거듭난 소수의 무리만 천국에 이를 것이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누가복음 12:32).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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