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사는 인생들이여!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이여!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


   필자는 장례식에 참석할 때마다 관을 의탁하여 땅에 묻히는 시신을 보면서 인생의 여러 면들을 생각하곤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고집세고 자존심 강하며 아는 것도 많던 인생이 오늘은 어찌도 저렇게 얌전히 침묵하고 있는가? 참으로 인생은 무엇인가? 한줌의 흙 그것뿐인가?

   필자는 잠시 여러분과 함께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인생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인생은 흙으로 조직되었다.

 

   어떤 잡지에서 몸의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몸은 흙의 성분과 전혀 다를바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 흙을 사용하셨다. 또한 각종 짐승도 흙으로 만드셨다(전도서 3:19~21 참조). 오늘날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생명없는 물건도 사실 다 흙에서 나온 것들이 아닌가? 인간은 흙으로 조직되었다. 인간은 흙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인간이 생령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인격을 닮았음을 의미한다. 타락한 인간에게도 "선을 추구"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 닮았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1:27).


   둘째로 인생은 흙을 먹고 산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흙을 먹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식탁에 올라온 것 중에 흙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앞에서 살펴본대로 인간은 흙과 영으로 성립되어 있으므로 인간에게는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에 필요한 양식이 있고 또한 영에게도 양식이 있다. 흙은 흙이니 흙에서 나온 것을 양식으로 먹으면 당연히 만족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적인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많은 인간들이 육체적으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고독을 견디지 못하여 심지어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경우까지도 있지 아니한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흙으로 빚어진 육체에 양식이 있듯이 영혼에게도 양식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양식은 육에 속한 것이요 영의 양식은 영에 속한 것이다. 육의 양식은 땅에 속한 것이요 영의 양식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신명기 8:3).

   영의 양식은 무엇인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영의 양식이므로 겸손한 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기뻐하고 만족해 하며 변화가 일어난다.


   셋째로 인생은 흙을 위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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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조상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한 계명을 받았다. 그것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이 계명을 받은 아담 앞에는 두 길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악과를 따먹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과 계속 동행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누리는 것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고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대로 아담은 두번째 길,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러면 선악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인간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길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인생의 행복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범죄 이후 인간은 흙을 위해서만 살게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과 흙(선악과) 사이에서 흙을 택한 것이다. 이때부터 인간의 삶은 흙에 속한 것으로만 채워지기 시작했다. 먹는 것도 흙이요, 사는 것도 흙이요, 추구하는 것도 바로 흙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이 다 흙에서 나왔으니 물질주의적인 인간의 삶이 흙을 위하여 사는 것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지적하시고 교훈하셨다.

   "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한복음6:27).

   오, 인생들이여! 언제까지 흙에 속한 썩는 양식만을 위하여 살겠는가?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나름대로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한다. 그들은 피땀흘리며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간단히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어떠한 목적도 땅에 속한, 즉 흙을 위한 것이며, 흙에 속한 어떠한 일도 헛되고 무의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 약 3,000년 전에 온갖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려보고 세상에 속한 모든 선을 추구하였던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땅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도서 1:2~4).

   오, 독자들이여! 하나님 없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인간의 일들은 다 흙에 속한 일이요 헛된 일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임을 알기 바란다 (전도서 2:11).

   필자는 당신에게 성경 전도서를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도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인생론이다 (전도서 2:14~17, 6:1~12).

   흙을 위하여 사는 인생!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도 여러번 지적하며 경고한 바 있다.

   "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립보서 3:18,19).

   이들의 신은 배이며 배만 위해서, 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종노릇 하는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 중에는 땅의 생각과 수준으로 하늘을 판단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고 질문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그들의 문화는 흙의 문화요 그들의 사상은 흙의 사상이요 그들의 수준은 흙의 수준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나 하나님에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헛된 삶으로 인생을 허비하는 자들이다. 하나님 없이 만들어진 행복이 도대체 참 행복일 수 없음을 아는가? 하나님 없이 사는 희락이 참 희락일 수 없음을 아는가?

   "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도다" (전도서 2:2).

   독자여, 진정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당신의 삶이 흙을 위하여, 땅엣 것을 위하여 하나님 없이 살고 있다면 다음 말씀을 주의하여 묵상하기 바란다.

   "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넷째로 인생은 흙으로 돌아간다.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9).

   필자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눈시울을 적실 때가 있었다. 예컨데 어떤 사람이 버려진 갓난 아이를 데려다 양육하였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혈육이 없음으로 그 아이를 친 자식 이상으로 사랑을 주며 키웠다. 그의 모든 정성을 그 아이에게 쏟았다. 그 아이의 본래 성씨는 모르지만 지금 양부모의 성씨는 박씨라고 하자. 이 양부모는 오로지 이 자식 하나만을 위하여 사랑으로 온갖 정성을 다쏟아 양육하였다. 이제 이 아이는 성인이 되어 실력있는 사회인으로 양육되었다. 물론 양부모는 자식을 키우느라 늙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청년은 자기의 친부모가 따로 있다는 것과 그 친부모의 성씨가 김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수소문 끝에 친부모를 찾았고, 냉정하게도 그동안 양육시켜준 양부모를 버리고 친부모에게 가겠다고 고집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상식이나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것이지만 실상이 그러했다. 아무리 만류하고 사정하고 울어보아도 소용없이 가겠다는 것이다. 양부모는 할 수 없이 그를 보내면서 통곡할 수 밖에 없었는데 마지막 떠나는 날 양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 너는 김씨니 김씨로 돌아갈지니라."

   오, 독자여! 무슨 뜻인지 아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생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인생을 사랑하시고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인생들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사야 1:2).

   자식을 평생 양육하고 자식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양부모를 버리고 간 청년이 정죄받아 마땅하다면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한 당신은 정죄받아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또 질문하시거니와 "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있느냐" (말라기 1:6) 하셨다.

   우리 조상 아담이 자신을 친히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버리고 흙을 택한 것처럼, 금일에 수많은 인생들이 흙에 속하여 모든 쾌락과 정욕을 좇아 죄를 지으며 하나님을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고 있다.

   "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6,17).

   사랑하는 독자여, 흙속에서 헤매고 있는 독자여!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바란다. 당신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새 생활로 전개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전도자 허윤욱-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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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천하를 얻고도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것은


   저는 선악과 얘기만 나오면 꼭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셨나요? 안 만들었으면 죄도 없고 다 좋았을텐데, 혹시 사람이 그 선악과를 따 먹을 줄을 하나님이 모르신 것 아닌가요?"

   이런 질문입니다. 저는 여러번 이런 질문을 받았는데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이 똑같은 의문을 갖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것은 사람을 시험하거나 또는 무슨 곤경에 빠뜨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동물이나 짐승들과는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을 주셨는데 그 영혼은 인격입니다. 인격이 있기에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육체와 본능뿐이라 그런 것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없고 예배할 수도 없는 하나의 존재일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의 마지막날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인격체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격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으며 그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자유와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길도 만들어 두셔야만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없다면, 오직 그 한길뿐이라면 선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외길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아무 기쁨도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계와 같고 또 건전지로 움직이는 인형과도 같은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 책임은 죽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창 2:17). 아담은 그 선악과를 따 먹을 자유도 있지만 따 먹지 않을 자유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때 사탄이 뱀을 통해서 하와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된다." 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고 결정하는데 있어서 구태여 하나님께 물어 볼 필요가 없으며 네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이것은 악한 것이고 저것은 선한 것이라고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가르쳐 주셨지만 지금부터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선악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영적인 생명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육체적인 생명도 죽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결정보다 자기의 결정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품을 온 인류에게 유전시켰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런 아담의 성품을 가졌습니다.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가 왕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습을 보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 기록 되었든지간에 '내가 좋으면 좋고 내가 싫으면 싫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의 의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선악과를 따 먹고 있습니다. 내 인생, 나의 미래, 나의 종교는 '내가 결정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결정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하셔도 들은체도 안합니다. 또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 라는 말씀도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저 내 생각과 나의 결정만 옳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 먹었다.' 라고 하는 죄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덮어둔채 자기의 생각을 따라서 열심을 내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하고 있는지요.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 3)

   일전에 저는 어느 모친을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 모친은 성경은 안 읽어보고 날마다 기도서를 읽고 외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모친께 "구원의 확신이 있으십니까? 하늘나라에 가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라고 여쭈니 모친께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도 많고......,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모른채 자기 생각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신혼부부가 저희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들이 왔는데 왜 늦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끼리 찾아 볼때까지 찾아 보느라 늦었다는 것입니다. 동쪽일 것 같아서 동쪽으로 갔다가 못찾고 이리저리 헤매느라 늦었다는 것입니다. 왜 전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자기들 힘으로 찾아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미련한 생각입니다. 모르는 집을 어떻게 자기 힘으로 찾는단 말입니까? 집을 잘 찾아가려면 먼저 찾고자 하는 집에 전화를 걸어 자세히 물어보고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먼저 집주인의 말을 잘 들어보는 것이 순서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저렇게 하면 되겠지 하는 것은 다 자기 생각입니다.

   이제 선악과를 따먹은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지 겸손한 자세로 무릎꿇고 말씀을 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8,29)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선악과를 따 먹은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주님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자기의 뜻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8~40)

   주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스스로 주인된 우리를 되돌이키시고자 자기의 뜻과 모든 영광을 다 버리시고 종처럼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4~25) 그러므로 자기 생각과 주관을 좇아서 사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 자요, 자기를 주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주님께 속한 자입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8,19)

   당신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김우종 著-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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