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 받는 믿음에는 회개가 있습니다"
"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 한 것이라"(행 20 : 20, 21)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영적 진보나 유익을 위해서는 자신의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강권되어 공적으로 하든, 사적으로 축호방문을 하든지 간에 성도들을 부지런히 쉬지않고 가르쳤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정기적인 시간에 모임을 갖는 것보다도 오히려 가능한 모든 기회를 사용해서 성도들 가운데 찾아가 성장하도록 격려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결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채로 국가적인 편견에 얽매이거나 종교적인 배경에 얽매이지 않고 그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을 향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아울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필요성을 설교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요소들입니다. 모든 진정한 회심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 요소, 즉 회개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복음의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가 구원 받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이 분명한 회개 없이 구원받는 믿음을 갖는 것은 불가능 한 것입니다. 이 말은, 믿음이 확실하여 하나님을 향해 분명하게 일어난 회개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구원을 인정한 사람을 향하여, 전도자(사람인 자신)에게 회개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 다고 하는 이유로, ' 당신에게는 회개가 없으니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님을 유의하여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회개는 하였는데 그 회개에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이 수반되지 못하였다면 그 회개는 아무 소용이 없는 회개이고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근심"(고후 7 :10)은 회개가 아니라 단순한 후회입니다. 그것은 비통, 곤란, 절망, 그리고 마침내 종국에 가서는 사망을 낳게 됩니다. 가롯 유다의 삶에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악 된 행위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근심했던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로부터 자신이 받게 될 무서운 형벌 때문에 단지 후회했던 것입니다.
회개는 죄인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에 따른 죄책감을 분명하게 느끼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엎드리고 마는 그리하여 이른바 자신을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내어 맡기는 믿음을 드러내는 완전한 전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신약성경 본문에서 믿음은 구원의 유일한 조건인 것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일한 조건 되는 믿음은 회개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자신의 죄를 대속해 주실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이 죄를 자각케 하시는 사역으로 인해 자신의 끔찍한 상태를 깨닫고, 이 끔찍한 상태에 있는 자신을 정죄 할 때, 비로소 이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대한 소망이 완전히 상실 되어버렸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이 때 이 사람은 이미 들은 복음을 기억하게 됨으로서 자신의 구세주의 절실한 필요를 깨달아 알고서, 이 구세주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그 끔찍한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 바로 회개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 :10).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고린도후서 7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전에 보냈던 다른 서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이 편지는 우리가 알고있는 고린도전서이거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 다소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두 번 째 편지 일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바울은 고린도후서 이전에 보냈던 그 서신에서 어떤 문제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했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전에 그 서신이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 7 :9)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전 7 :9)과 "세상 근심"(고전 7 :10)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범죄 한 후에 죄에 대한 자각이 생기자마자 하나님을 생각하며 생겨나는 근심을 말합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상한 심령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과 자신의 죄에 대항하여 단호하게 하나님편에 서서 돌이켜 자신의 죄를 혐오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을 생각하며 생겨나는 근심이야말로 회개에 이르게 하는근심이요 회개에 이르게 하는진정성을 갖고 있는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 고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였는데,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회개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게 하는 것이요 For godly sorrow worketh repentanxe to salvation not to be repented of" (고후7 :10a)라고 말할 때, 여기에 나오는 구원이라는 말은 반드시 영혼 구원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 집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성도들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기서의 구원은 어떤 형태의 믿는 자들의, 속박,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의 고난으로부터의 "건짐" 곧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의 구원이 영혼 구원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는 것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도 여전히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식으로만 믿음을 고백을 하거나 거짓으로 믿음을 고백을 하고 성도라고 여겨진 무리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딤전 4 :1절에서도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에서 보듯이 여기서도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후일에 믿음에서 떠나는 일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 아주 확실한 사실임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에서 떠났거나 타락한 어떤 사람들이란 결코 그들이 구원 받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입술로만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였었지만 그들은 성도로 인정을 받았고 성도인 것처럼 교회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었음을 가리키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도 거듭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신약교회에서는 믿음을 고백한 자들이 믿음을 주제로 하는 여러 가지 가르침의 본질과 가르침의 특성의 진위를 철저히 가려야 할 때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믿는다는 것이 바로 순교나 모든 기득권을 박탈당하는 일의 핍박받음을 의미하는 초대교회 때에도 거짓으로 믿음을 고백한 성도들이 있었다면 순교의 위험이 없고 핍박받을 필요가 거의 없는 오늘날의 교회에는 거짓으로 믿음을 고백한 성도들이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고백한 자들이 그 믿음이 진정성을 갖고 있으며 삶에서 행위로 그 믿음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하여 그들의 믿음의 진위를 철저히 따져보아야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그래야만 교회에 거짓되고 무익한 신앙고백자,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신앙고백자들이 들끓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오늘날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모이고 있는 신약교회에서도 왜 그처럼 많은 위선적인 신앙이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경건하다고 여기고 있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성경에 비추어 보면 전혀 거듭난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성경적인 의미에 있어서 전혀 경건치 못한 사람들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성경적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잘못된 가르침이나 잘못된 성경지식에 미혹되고 있는 것입니까?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스스로 회개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신앙의 토대가 되는 성경적인 믿음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특히 참된 회개와 거짓된 회개를 올바로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히 구원받는 믿음은 참된 회개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사실들이 잘 가르쳐 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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