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라
사람을 따르는 신자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로마서 3:4)
우리는 앞에서 주님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위대한 신앙인들이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끔찍한 현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는 왜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알려면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파고들어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것은 사단의 끔찍한 전략에 의한 역사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창세 이래로 한번도 변경되지 않고 진행되어오고 있으므로 성경을 조금만 세밀하게 연구하면 즉시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대대로 사단에게 속고 있다.
그렇다면 사단의 탁월한 전략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부추기어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높이는 일이다. 간단한 이 전략이 놀랍게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을 지옥에 데려가는데 성공하였고 기독교를 3류 종교로 타락시켜 비참한 모습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람에 의해서 생겨났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유일하게 사람이 창시자가 아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시작하셨고 그의 아들, 즉 사람이 아닌 신께서 만드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 종교들은 사단이 인간 중에 명철한 사람을 택하여 자기 능력을 입혀주어 종교 창시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종교의 위력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것을 믿게 하여 지옥으로 데려가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영계(靈界)의 이와 같은 실상을 인간들이 한번만이라도 상상한다면 지옥에 가지 않게 될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은 사단이 기독교에도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실상이다. 기독교인들 중에 다른 사람보다 신앙심이 좋고 실력이 있고 외모가 나아보이면 곧잘 사단의 목표가 된다. 일단 사단은 자기의 목표를 정하고 나면 작업에 들어간다. 먼저 그를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능력자로 세운다. 성공하게 하고 남보다 다른 장점이 드러나게 하고 사람들의 존경과 신망을 받게 한다. 그는 명성을 얻으며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때가 되면 사람들은 그를 추앙하게 된다. 그리하여 특별한 사람으로, 특별한 지도자로 추대하기에 이른다. 이제 그는 점점 높아져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지배자로 나타나도 사람들은 당연시 여기는 것이다. 이단은 이렇게 나타나며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는 이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받은 종이라고 자기를 선전하기에 이른다. 주변에서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러분 주변을 살펴보라. 이와 같은 현상은 기독교에 만연하고 있는 모습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서두에 기록한 말씀처럼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 사람은 다 거짓되다. 다른 사람보다 나아도 나은 것이 아니며 특별하여도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사단은 사람을 높여서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님에게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주목하게 한다. 이렇게 하여 사람 우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사람 우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선량한 양들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마태복음 23장에서 경고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시니 곧 그리스도니라"(마태복음 23:8~10).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에는 선생이 없는 것인가? 지도자도 없는 것인가? 아비도 필요 없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교회에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가 필요하며 교회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비의 마음으로 자녀를 돌아보는 바울과 같은 지도자가 교회 안에 많아야 교회가 부흥한다. 그러나 그들이 선생으로 호칭 받으며 군림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지도자라 칭함 받으며 양들을 늑탈할 것을 막고자 한 뜻이다. 아비라 하여 양들과 격차를 두고 교회 안에 계급을 만들어내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는 오직 예수뿐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디모데전서 2:5).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날 기독교의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일은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다. 인간이 교회를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잘 운영한다는 미명아래 인간의 생각대로 만들어낸 제도일 뿐 우리의 왕 되시는 주님은 이 일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이것은 단정코 외칠 수 있는 불변의 진리이다. 교회는 유기체요 생명체이다. 교회는 가족이다.
첫째로, 사람을 높이는 사단의 전략은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이 일에 사울왕은 합당한 본이다. 그는 전쟁에 승리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만 영광과 존귀를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사무엘상 15:12). 이 일로 말미암아 주님은 슬퍼하시고 사울의 왕조를 철회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자신의 명예와 기쁨을 위하여 당연히 죽이라고 하였던 적국의 왕 아각을 죽이지 않았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사울을 슬퍼하시고 사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기념비를 세울만한 인물들이 많았던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기억하여 그들 중심으로 교파를 만들어 오늘날 수많은 교단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결단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사단은 이일을 주도하여 성공했고 그러므로 사울을 떠난 하나님이 오늘의 기독교를 떠난 것이다. 슬픈 일이다. 생각하여 보자. 루터, 칼빈,웨슬러, 무디 등 얼마나 많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었는가. 그러나 그들을 오늘날 교파의 우두머리로 추앙하는 일은 결단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일이 아니다.
둘째로, 사람을 높이는 사단의 전략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떠나시니 복음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다. 구원받는 역사가 점점 사라지다가 결국 오늘날은 구원을 말하는 것조차 이단시하는 데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는가?
어떤 교파에서 만든 이단 분별에 관한 책을 본적이 있는데 그 내용 중에 하나는 "당신은 구원받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면 이단이라고 써놓은 것을 보았다. 사도들이 구원을 외쳤고 구원을 받으라 하였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것이 성경말씀이 아닌가(사도행전 2:40, 4:12, 16:31, 에베소서 2:8, 유다서 3절 등).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구원을 강조하면 이단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구원이라는 뜻인데 도대체 구원을 강조하지 말라는 오늘의 가르침이 사단의 가르침이 아닌가? 구원을 말하지 못하게 하면 예수 이름을 우리 언어에서 지우라는 뜻이 아닌가?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기독교인들이여,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과 다른 기독교, 성경과 다른 당신의 교회는 잘못된 교회다. 주님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치고자 하는 순전한 신자, 성자 같은 신자들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잘못된 교회는 속히 떠나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이 떠나고 성령의 역사가 떠난 교회는 사람이 만든 조직으로 운영되고 거듭난 적 없는 교인들로 채워져 있다. 그곳에는 더 이상 하나님도 말씀도 성령도 없다. 기독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가 아니요 생명 그 자체인데 결국 사단의 전략에 의해서 종교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사람의 말이 교회 안에서 힘을 얻으며 교회를 운영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오늘의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성경을 배우고 있지 않은가?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 아니한가?"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필자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 그러나 분명히 알것은 성경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나 그 말씀을 순종치 아니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에 오늘의 기독교가 바른길로 가려한다면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모든 제도를 성경 안에서 찾고, 헌법은 성경으로, 지도자는 예수님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얼굴이 교회를 향할 것이며 예수님의 이름이 교회의 주인이 될 것이며 성령님의 역사는 교회 안에 살아날 것이다. 또한 십자가의 복음은 죄인을 구원할 것이며 거듭난 성도들로 교회당이 채워져서 교회는 사도행전의 기쁨을 회복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큰 예배당을 짓는데 교회의 모든 목적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큰 건물보다 큰 구원의 역사를 사모해야 할 것이며 많은 숫자보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끝으로 결론을 내리려 한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의 모든 기독교인을 다 지옥 자식으로 정죄하려 함이 아니다. 다만 필자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성경을 기준하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성자들이 지옥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여 섭섭해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경적인가 살피며 자신의 영혼의 문제도 겸손하게 점검해보아야 한다. 지옥에 가는 사람 모두 불쌍하지만 그 중에 더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평생 예수 믿는다고 종교생활하다 지옥에 가는 사람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린도후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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