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소박하지만 풍요롭다 ..'대지의 젖줄' 메콩강이 준 선물
껀터의 새벽 수상시장엔 삶의 활기가 넘치고..
영화 '연인'과 꽃의 도시 사덱에는 낭만이 흐르고..
한국경제 입력 2016.12.25 16:32 수정 2016.12.26 14:25
베트남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시 탐방, 열대의 뜨거운 하늘 아래서 바다 만끽하기, 소수 민족의 삶을 엿보는 고원 방문 등 다양한 주제로 떠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황톳빛 메콩강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느끼는 것이다. 중국, 티베트,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 흘러 온 메콩 강은 바다로 빠져나가기 전 베트남 남쪽 도시들을 통과한다. 강 주변 도시 사람들은 강이 주는 풍요로움 속에서 삶을 일구고 있다.
수상시장에서 맞이한 아침
베트남의 경제수도인 호찌민에서 남쪽으로 약 170㎞ 떨어진 곳에 껀터(Can Tho) 시가 있다. 메콩 강의 하류에 자리한 껀터는 ‘메콩 델타’로 불리는 메콩 강 삼각주 지역의 최대 도시로 거주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다. 껀터에는 메콩 델타 지역에서 가장 큰 수상시장인 까이랑(Cai Rang) 시장이 있다. 오전 4시에 시작해 점심 이전에 파장하므로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오전 5시. 밤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시간. 하늘에는 아직도 별과 달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까이랑 수상시장으로 데려다줄 사공을 만나 서둘러 작은 배에 올랐다. 탈탈대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배는 앞선 배들이 일으키는 큰 물결을 넘어갔다.
어둠을 천천히 가르던 배가 30분쯤 달렸을까, 강 저쪽 너머 하늘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일출은 어디든 근사하지만 배 위에서 보는 일출은 왠지 더 뭉클한 느낌을 줬다.
1시간여를 더 가자 까이랑 시장에 도착했다. 오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인데 장은 이미 북적이는 시간을 넘긴 듯하다. 여전히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조금은 여유로움이 흐른다. 흔들리는 물결을 따라 너울대는 파도를 타던 배는 엔진을 끄고 시장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 이쪽 배에서 저쪽 배로 옮겨지는 과일이며 채소들, 활기찬 흥정 소리,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 물건을 건네고 쌓는 바쁜 손길. 메콩 강 여행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이 풍경은 베트남을 더 특별하게 기억하도록 만든다.
과일·채소 등을 장대에 걸어둔 배
메콩 강 위에 둥둥 떠 있는 채로 물건을 사고파는 수십 척의 배는 배의 앞머리에 긴 장대를 세우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장대 끝에 뭔가가 달려 있다. 어떤 배는 호박을, 어떤 배는 수박을, 또 어떤 배는 파인애플을 매달았다. 배에서 팔고 있는 채소와 과일이다. 멀리서도 무엇을 파는 배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장대 끝에 걸어둔 것이다. 살아 있는 싱싱한 간판인 셈이다. 배들이 꽉 차 있어 무엇을 파는지 일일이 다가가 확인하기 힘들어서 나온 아이디어였으리라. 하지만 이것이 까이랑 시장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장에 나오기 전 새벽, 오늘 장사가 잘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며 걸었을까.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장대는 마치 풍어와 풍년을 기원하는 솟대 같다. 배들 사이로 베트남식 바게트인 반미를 파는 배를 비롯해 국수 배, 밥을 파는 배가 지나다니며 장사꾼들의 허기를 달래준다. 물건을 다 팔고 먹는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의 맛은 어떨까 궁금하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살아 있는 아침, 잠시 메콩 사람들의 삶에 들어간 듯했다.
메콩 강의 작은 지류를 가다
메콩 강의 큰 줄기를 따라갈 때는 엔진으로 배가 달리지만 작은 지류를 지날 때는 물이 얕고 지류의 폭이 좁아 엔진을 끌 수밖에 없다. 열여섯 살부터 노를 저었다는 사공이 엔진을 끄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를 젓는다. 작고 낮은 다리를 피해 배에 눕다시피 하기도 하고, 강가에 듬성듬성 있는 집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메콩 강의 작은 줄기를 지났다.
태양은 뜨겁지만 물 야자나무 밑을 지날 때면 잠시 시원해진다. 이따금 나타나는 집들 마당에는 물이 찰랑찰랑 들어와 있고, 집 앞에는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작은 차고 같은 공간이 있다. 그 안에 소중하게 배를 보관하는 것이다. 땅보다 물길이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 배는 얼마나 소중한 도구일까. 어느 집에서 나온 엄마와 딸은 지나가는 만물상 배를 세우고 물건을 사고 있다. 메콩의 평온한 아침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꽃과 영화 ‘연인’의 도시
호찌민에서 ‘꽃의 도시’로 불리는 사덱(Sa Dec)까지는 145㎞ 정도를 가야 한다. 버스를 타면 3시간 정도 걸린다. 이곳은 작은 화훼마을이다. 설날 즈음이면 장식용 꽃나무를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시장에 내다 팔 꽃을 포장하고, 물을 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향긋해진다. 사덱 근교에는 끝없이 펼쳐진 연꽃밭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꽃은 2~3월에 만개한다.
사덱이 외국인에게 유명해진 건 영화 ‘연인’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연인’은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베트남에서 겪은 중국인과의 사랑을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로 되살려 낸 자전적 작품이다. 사덱에는 말년에 작가인 뒤라스가 실제 사랑한 사람의 집이 남아 있다.
사덱 시장 끝에 있는 프랑스풍의 고택(古宅)은 1895년에 지은 것이다. 작가와 후인가(家) 아들인 후인투이레가 사랑을 나눈 장소다. 고택 앞에는 강이 흐르는데 나룻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너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모습이 떠올라서 뭔가 낭만적인 기분이 든다. 껀터의 빈투이 고택(Nha co Binh Thuy)에서도 ‘연인’의 일부 장면이 촬영됐다. 두 고택을 비교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베트남戰의 비밀요새에서 평화를
사덱 근처에는 쎄오?이라는 특별한 유적지가 있다. 베트남 전쟁 때 쓰이던 호찌민의 비밀요새 구찌 터널과 같은 곳이다. 전쟁의 흔적을 이 깊은 메콩 강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베트남 전쟁 당시 쎄오?에는 비밀 군사시설이 숨겨져 있었다. 이곳에 있는 수로는 지하갱도, 공사관, 임시처소 등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수로 옆에는 부엌, 회의장, 비밀 지하통로 등이 남아 있다. 전쟁 당시 미군은 끝까지 이곳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쎄오?의 수로는 수상시장에 갈 때 탔던 배보다 훨씬 작은 나무 카누를 타고 돌아볼 수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은 전쟁의 아픈 역사를 까맣게 잊게 한다. 밀림을 뚫고 깊게 들어온 햇살, 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 가끔 들려오는 청량한 새소리. 희귀한 동물과 처음 보는 나무, 보라색 꽃을 피운 부레옥잠, 그 속에 숨겨진 참호들. 나무 덩굴이 만든 울창한 숲은 참호를 감쪽같이 가려준다. 이 멋진 수로를 통과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만으로도 쎄오?은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덱에서 쎄오뀟까지는 택시나 차로 갈 수 있다. 거리는 24㎞ 정도로 멀지 않지만 연락선을 타야 하므로 1시간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껀터만의 특별한 음식들
메콩 강의 도시답게 껀터의 음식에는 해산물이 많이 등장한다. 바인까인게(banh canh ghe)는 게 한 마리를 통째로 얹어주는 요리다. 국수의 일종인 분맘(Bun mam)은 생선살과 부화 직전의 오리알까지 넣어 먹는 진한 국수다. 코코넛 밀크를 뿌려서 먹는 달콤한 국수 바인떰비(Banh tam bi)는 더위에 지친 오후에 간식으로 좋다. 껀터의 대표 음식 바인꽁(Banh
cong)도 맛있다. 녹두와 새우를 넣어 튀긴 빵을 갖은 채소와 향채에 싸 먹는다. 2~3개 정도면 배가 부르니 작다고 얕잡아보면 곤란하다. 바키아(Ba Khia)라는 민물 게도 유명한데 저녁 때 일명 ‘바키아 거리’라고 하는 딘띠엔호앙(Dinh Tien Hoang) 거리로 가면 맛볼 수 있다. 바키아 요리에 한잔하거나 전골을 끓이며
저녁을 먹는 껀터 사람들 옆에서 밤을 즐겨 봐도 좋겠다.
진유정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저자 nauan@naver.com
여행 메모
호찌민에서 껀터까지는 현지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수상시장 투어는 숙소에서 연결해 주거나 강가에서 직접 예약할 수 있다. 대부분 오전 5시에 출발해 점심때 돌아온다. 까이랑 시장 구경을 먼저 하고, 1시간 정도 더 달려서 좀 더 규모가 작은 퐁디엔(Phong Dien) 수상시장을 들른다. 두 곳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메콩의 작은 지류를 따라가 쌀국수 면을 만드는 곳과 과일농장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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