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왕의 체포당하심과 고난 당하심
(마태복음 26장)-1
범죄자들처럼 처형되실 것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져갈
때 제자들의 마음에는 어떤 두려움과 낙담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체포되
는 정확한 시간과 방법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모든 일을 주님이 주관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 분은 주님으로서 죽으셨으며 그 분은 스스
로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두 무리(26 :1-13)
이제 증오심을 가진 예수님의 대적들과 사랑을 가진 예수님의 친구들의
두 무리가 등장합니다. 대제사장의 관사에서 있었던 음모는 앞으로의 파란
을 예고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지만 명절에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폭동이 일어나고 그 폭동
이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도시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에 유
월절은 피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미 "이
틀을 지나면"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에 돌아가실 것
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 그 분이 얼마나 정확하게 모
든 일을 주관하고 계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무리는 요한복음 11:1에서 요한이 "마리아와 마르다의 촌"이라고
묘사한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한 사람들입니다. 이 저
녁식사는 "유월절 엿새 전에" 있었습니다(요 12 :1). 따라서 이 일은 시간상
유월절 이틀 전에 있었던 사건들에서 제외됩니다. 아마도 마태는 유다의 증
오와 배반에 대조적으로 사랑과 충성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 일이 있
은지 나흘 후에 그 이야기를 소개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유다가 나흘
동안 예수님을 배신할 기회를 찾고 있었지만 권세자들에 의해 명절에는 일
으키지 말라고 경계받은 것을 보여줍니다.
마리아의 자신을 드린 헌신은 제자들의 둔한 마음과 세속적인 생각과는
분명하게 대조됩니다. 그 향유는 일년치 월급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지극히 비싼 향유" 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요
12 :3). 슬프게도 제자들은 가룟 유다의 말에 동조하여 "허비한다" 고 외쳤습
니다. 마리아만이 임박한 예수님의 죽음의 진실을 이해하고 있는 듯 했으며
그녀의 값비싼 보물을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와 같은 행동은 예수님의 장사를 예비하
는 것으로 예수님에 의해 해석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처형되신 후
에는 그 몸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을 염려하여 미리 이 아름다운 일을 했을 것
입니다. 마태와 마가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했
으며 요한은 예수님의 발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양쪽의 기록이 모두
사실이지만 마태가 강조했던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왕의 머리되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헌신적인 예배를 그냥 지나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온 천하 어디서든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마리아의 행
한 일을 말하여 계속해서 기념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로 수많
은 영혼들에게 새로운 경배의 향기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내게 얼마나 주려느냐?(26 :14-16)
요한은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 "허비"라고 했던 유다의 진정한 마음의 동
기를 드러내었습니다. 유다는 속으로는 그 향유를 돈으로 바꾸어 돈궤를 맡
은 자신이 관리하기를 바랐습니다. 유다는 도둑이었습니다(요 12 :16). 돈을
훔치려는 생각이 뜻대로 되지 않자 배반자 유다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가서
주님을 배반하여 노예의 값을 받고 그들에게 넘겨주기로 했습니다(출
21 :32). 탐욕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치명적인 암입니다.
여기에서 베다니의 집에서 주님을 대했던 세 부류의 행동을 볼 수 있습니
다. 마리아의 경배, 제자들의 비난 그리고 유다의 배신입니다. 나의 자세는
이 세가지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다락방(26 :17-30)
매년 유월절 뒤에는 칠일간의 뮤교절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우리 주님과
열 두 제자들은 저녁시간에 함께 식사를 나누려고 앉으셨습니다. 다음날 저
녁이 되기 전에 예수님은 참된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지식을 강조한 것을 주목하십시오.
마태의 기록은 능력있는 왕의 음성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구하지 않으셨
습니다. 이제 21절의 주님의 완벽한 미리 아심과 25절의 배신자를 나타내
시는 주님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경의 예언이 사람들에게 그들의
개인적인 책임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기록되어진 예언대로 정확히 죽으실 것이지만 배신자에게는 그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이 내려질 것입니다. 유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 하였더면 좋
을뻔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이 만유의 화목제물이라는 교
훈을 주장하셨기 때문에 결코 그러한 무서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
려 유다가 태어나는 것(거듭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짐-역주)이 더
좋았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가엾은 유다는 비록 그리스도의 참 사랑
을 받는 자로서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녔지만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
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불렀는데(22절) 유다는 단순한 존경
의 호칭인 "랍비"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25절). 배신자는 유월절 음식은
함께 먹었지만 그 후의 새로운 만찬에는 분명히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유월절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실체가 이미 주어졌기
때문에 그림자로 주어진 그 상징물은 더 이상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옛
것은 새 것의 길을 예비하기 때문에 그들이 먹는동안에 예수님은 식탁 위
의 떡과 잔을 취하셔서 새로운 중요성을 덧입히셨습니다. 나뉘인 떡은 주님
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고, 잔은 주님의 고귀하신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늘 사용된 그 떡이 이제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그 떡을 먹고 그 잔을 마셨습니다. "피의 새 언약"으로 주님은 거룩한 관계
를 부탁하셨습니다. 그것은 옛 것과는 분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에 "새로운"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 역시 피로 이루어진 것이며, 피는 범죄자의 죽음을
상징하지만(출 24 :8 ; 히 9 :19, 20), 그러나 주님의 피는 범죄자를 용서하는
피입니다! 이 피흘림은 예수님께 죽음을 가져오겠지만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 흘리는 피입니다. 범죄자의 피를 요구하는 율법에 대한 해결책과 만족
을 죄없는 대속자의 피에서 찾게되었습니다. 그 기념 잔은 이 영광스러운
진리를 상징합니다(이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엠마오 성경학교의 "두 가지 예
식"을 추천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선택된 남은 자를 나타냅니다. 이제 메
시야는 이 세상의 기쁨을 나타내는 어떤 포도주도 온전한 기쁨으로 들어가
시는 날까지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9절). 그 때에 이스라엘은
주님께로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이방인 역시 복을 받을 것이며 하늘과
땅은 모두 그리스도의 높으신 권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은
기뻐하는 백성들과 함께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심으로 큰 기쁨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하늘의 나사렛인은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다락방 사역은 찬미-아마도 시편 113-118편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시편
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마쳐졌습니다. 만일 이와같은 추측이 옳다면, 열 두
명과 함께 찬양하며 목소리를 높이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통해 흐르는 생각
은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주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시며 십자가로 나
아가는 것을 견디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재난으로 보았지만 주님께는
영원한 승리로 정해진 곳이었습니다.
동산으로 가는 길에서의 대화(26 :31-35)
여기에 우리 주님의 예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있습니다. 그들 모
두는 예수님으로 인해 몇시간 동안 실족하게 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입니다. 수세기 전에 스가랴는 이것을 내다보고 목자를 치면 양들
이 흩어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슥 13 :7).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치시는
것은 제자들을 낙담시키고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통당
한 예수님은 다시 사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그 분의 사랑은 쇠하지 않을 것입
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들에 앞서서 이방 도시인 갈릴리로 가심으로 그
흩어진 무리들이 다시 모일 것이며, 예수님은 여전히 그들의 중심과 인도자
로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실족하리라"고 주 예수님은 경고하셨습니
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님은 모든 지식과 능력을 소유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체포되고
고통받는 모습에 보게되면 충격을 받아 그들의 믿음이 무너질 것을 아셨습
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33, 35절). 저녁이
될 무렵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경고하셨고(눅 22 :31-
34 ; 요 13 :37, 38). 이제 동산으로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도 주님은 반복하
여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강경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럴지
라도 자신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진심이었을지 몰라
도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슬픈 사실은 그는 참으로 실패하여 주님을 부인하였던 것입니다! 잠시 후
의 세 번째 부인은 이러한 뿌리에서 나온 쓴 열매였으며, 적게나마 그날 밤
자신만만해 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그들은 "교만
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잠언 6 :18의 말
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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