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을 아십니까?
5.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죄에 대하여 인간은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죄는 인간의 깊은 곳, 즉 육체와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는 그 죄를 떼어낼 수도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진지하게 도를 닦아도, 거룩해 보이는 종교생활을 해도, 자기 몸을 학대하는 고행을 해도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 사실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 (렘 2:22).
"구스인(흑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렘 13:23).
이와 같이 인간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고 해도 죄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다만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18:13)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비로소 하나님은 자신의 해결책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결코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의 방법을 계시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행위만 인정받기 원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 18:12).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하겠지요.
"하나님, 제가 모태신앙인 것을 감사하나이다. 제가 성수주일 한 것도, 새벽기도, 철야기도 한 것을 아시지요. 제가 눈물로 회개하는 것도, 가슴이 답답할 때 삼각산에 올라가서 나무뿌리를 잡고 기도한 것도 아시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방언이 터진 것도 아시지요. 제가 얼마나 십일조를 열심히 냈는지 은연 중 교인들은 다 아는 것이고 그래서 당회장 목사님에게 인정받아 안수 집사를 거쳐 누구보다도 빠르게 장로가 된 것도 아시지요. 저 같은 사람이 천국 못 가면 누가 가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그런 저를 모른다고 하시진 않겠지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 알긴 다 알지. 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인데 모르는 게 있으면 되겠니? 그런데 한 가지 모르는 게 있는데 네가 언제 우리 가정에 태어났는지 그걸 모르겠다. 내가 분명히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고 한 것을 너는 모르느냐? 또 바울을 통해서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 (롬 3:20)고 했는데 너는 그것을 읽어보지도 않은 모양이구나. 또 아무리 애를 써도 '인간에게서는 선한 것이나 의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 (롬 7:18)고도 했는데 너는 네 잘한 것만 애기하는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제일 마지막에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거나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창조하신 것을 바라보고 즐기고 누리고 감사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 '너도 무엇을 해야 한다' 고, 그리고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가 있고, 너도 선악을 알 수가 있어서 네 임의대로 할 수가 있다'고 유혹한 것입니다. 인간은 그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 후로부터 인간은 '나도 할 수 있다' (I can do)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럼 네가 해봐라' 하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에 대하여 인간이 보인 첫 반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출 19:8).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 24:7). 그러나 두 돌 판에 기록된 십계명이 그들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그들은 벌써 계명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만들어 놓고 방탕하게 춤추며 난잡하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러리라는 것을 아셨던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미리 '언약의 피'를 예비해두셨습니다. 그것은 루시퍼처럼 한 번 범죄함으로 영원히 버림받지 않고 범죄했을지라도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천사보다 뛰어난 인간의 특전이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출 14:13).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4).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 3:18).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시 62:1).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시 62:5).
" 이 전쟁에는 너희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대하 20:17).
"내가 다 이루었다" (요 19:30).
죄에 대한 해결책 역시 인간은 가만히 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당신은 아마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을 아실 것입니다. 백성들은 불뱀에 대하여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 21:8-9).
죽지 않고 살기 위하여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놋뱀을 쳐다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서서 쳐다보든지, 누워서 쳐다보든지, 쳐다보면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실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6).
쳐다보는 것은 믿는 것이고 믿는 것은 쳐다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친히 우리 대신 심판을 받은 놋뱀이 되셨습니다. 쳐다보십시오! 그 순간 죄의 독이 순식간에 다 빠져나갈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믿는 순간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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