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

                                      11장

                                  연보는? -2


   고린도후서 8,9장은 헌금에 대해 몇 가지 합당한 조언을 줍니다.


   1. 결심과 행동은 같이 가야 한다(8:11).

   종종 우리는 드리려는 마음은 있지만 그 목적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과연 드릴 수 있는지, 혹은 드리려는 결단이 하나님께로서 난 것인지 몰라 주저하곤 합니다. 오래 기다릴수록 결심한 것을 드릴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드리고픈 소원을 주셨으면 지체하지 말고 실천에 옮기십시오.


   2. 당신에게 있는 것에서 드리라(8:12).

   드리고픈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능력 이상을 드리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를 보고 우리의 기여가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드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충당해야 할 필요에 따라 측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유에 따라 측정됩니다. 중요한 요소는 먼저 드릴 마음이 있느냐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우리에게 주지 않은 것을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기대하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더라도 당신이 가진 것에서 드리십시오. 과부의 두 렙돈이 어떤 이들에게는 심히 하찮게 보였지만 그 참 가치가 하늘에 기록되었습니다.


   3. 평균케 하기 위해 드리라(8:14,15).

   바울의 권면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필요를 공급한 사람들이 나중에 궁핍하게 될 때 이제는 전에 그들로부터 필요를 공급받은 사람들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경험케 됩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는 예루살렘이 궁핍했으나, 후에는 고린도가 궁핍할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는 증거가 아닐까요? 만일 우리가 다른사람의 필요를 채우면 우리 자신의 필요가 채워지게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드리기를 주저해야 할까요?


   4. 합당한 태도로 드리라(9:6,7).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너그러이 해야 합니다. 만일 농부가 인색하게 심는다면 풍성한 소출을 거두지 못할 것이나, 넉넉하게 심는다면 넘치는소출을 거두게 됩니다. 우리의 드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최소한을 드리는 것이 아닌 풍성히 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농부는 파종을 넘어 추수를 바라보고 또 그 파종과 추수의 관계를 잘 아는 까닭에 파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처음드리는 행동 너머로 추수 날을 바라봅니다. 당신의 상황을 바라보고, 당신이 얼마나 드릴 것이 적은지, 혹은 그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최소량이 얼마인지 결정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열린 마음으로, 너그러운 심령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허락하신, 베풀고자 하는 소원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인색한 마음과 협소한 전망은 신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드리지 말고 마음을 정하고 드려야 합니다. 앞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를 주신대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으며. 이제는 마음에 정한대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드리기를 원하시는지 그분 앞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하고 그것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헌금은 별 생각 없이, 별 기도하는 마음 없이 무심코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색함으로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드리기를 기대하십니다. 인색하게 드리는 자는 자기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 돈으로 다른 것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헌금으로 가난하게 되었다고 아쉬워합니다. 그는 자원하는 마음이 아닌 의무감에서 드립니다. 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그에게는 얼마나 슬픈 길인지요. 그러나 즐거이 드리는 자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줄 알고, 정한 것을 아낌없이 드립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드리는 자인지요! 사도행전 4장에서 바나바가 보여준 본을 보십시오. 그는 땅을 팔아 사도들 앞에 가져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데는 두 구절로 족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했고 즉시 실행에 옮겼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얼마나 다른지요. 그들은 희생 없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원했으며, 그들의 결국은 얼마나 슬픈지요.


   5. 누가 유익을 얻는지 이해하고 드리라(9:8~15).

   우리는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그 헌신의 행위의 우선적인 수혜자로 언급될 줄로 기대할 만하지만, 그러나 본문을 보십시오! 우리는 6절에서 심는 자가 거둔다는 것을, 그리고 8절에서 주는 자가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모든 일에 모든 것을 넉넉하게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선적인 수혜자는 당연히 혜택을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얼마나 기이한지요.

   동일한 원리를 빌립보서 4장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는 19절 약속을 의지하지만, 그러나 그 아름다운 약속의 배경은 종종 잊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두 번 이상 바울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로마에 도착한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주었습니다. 그들의 풍성한 선물을 받은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너그러운 연보에 크게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한 놀라운 약속을 의지할 수 있으려면 동일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그들처럼 너그러이 드려야 합니다.


   6.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를 알고 드리라(9:11~15).

   직접적인 결과는 가난한 성도들의 필요가 어느 정도 채워졌다는 것이었으나,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결과는 그들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손길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께 많은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최고의 선물, 말할 수 없는 선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 측량할 수 없는 선물을 받았다는 감사가 흘러넘침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의 드림의 결과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 고백할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행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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