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왕의 예언(1)(마태복음 20-22장)-2
두 번째 성전을 깨끗케 하심(21 :12-17)
주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신 사건은 실제로는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
째 사건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있는 것으로서(요 2 :13-22) 주님의 사역
초기에 일어났으며, 두 번째 사건은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주에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 사건에 대해서는 세 명의 공관복음서 기자(記者)들
이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두 번째 성전을 깨끗케 하신 사건이 주
님께서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에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11:11-15).
하나님의 성전(12절)은 이스라엘의 종교체제의 핵심이었으며, 종교적인
순결의 최고 근원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
는 바로 성전이었으며, 그분의 이름과 명예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현실은 이 모든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부
패한 제사장 직분의 탐욕을 밝혀내셨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강도의 소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엄격한 행동은 그분이 영광 중에 다시 임하실 때 취하실 행동
을 예표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날에 말라기 3 :1-5절의 예언이 완전하게 성
취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담고 있
습니다. 성령님의 전인 우리의 몸은 종종 육신적인 거래에 사용되어 주님께
서 우리를 정결케 하고 깨끗케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을 올바로 판단한다면, 주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
심이니라"(고전 11 :31, 32).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14절). 종교
적인 외식에 대해 엄하게 책망하신 반면 주님께서는 상하고 고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주님의 권
위가 온전히 드러나있는데, 그 이유는 왕으로서의 주님의 권위는 단순히 말
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집을 정결하게 할 수 있는 올바른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제 사람들에 따라 주님께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린 아이들은 찬미했으며, 종교 지도자들은 적대감을 드러냈고, 주님은 이
스라엘의 왕이심이 입증되었습니다. 시편 8 :2은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참
된 영적인 지혜를 드러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며,이스라엘의 교만한 관원들은 그들의 지혜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므
로 이스라엘의 교만한 자들은 무지하고 소경인 상태로 천국의 밖에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그 후 주님께서는 참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을 맞이
하는 베다니로 물러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 산 그리고 믿음(21 :18-22
마태는 예수님께서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
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그분은 열매를 좀 따시려고 가까이
다가가셨지만 열매는 하나도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무화과 나무에
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21 :19). 무화과 나무가 곧 시들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21 :20). 제자들이 놀라서 어찌된 영문인지를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에
게 믿음에 관한 많은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만일 그들
이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일 뿐만 아니라 "이 산
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고 말하여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
다(21 :21). 그리고 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위대한 약속을 주
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21 :22). 물론 이 약속은 제자들에게만 한정된 약속은 아닙니다. 이것은 예
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을 위한 약속이며, 우리가 구하는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 약속 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
속은 기도에 관한 다른 말씀들과 조화를 이루어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
어,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시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5 :14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그분이 우리의 기도를 들
으신다고 이야기 합니다.
훼방하는 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방해물(21 :23-32)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의 권위를 가지고 행동하고 계셨지만 이에 격
분한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주님의 권위에 도전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기도 전에 그들은 주님을 고소할 의도를 가지고 주님의 대화에 끼어
들었지만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 께서는 그들의 교활한 의도를 꿰뚫고 계
셨습니다.
요한의 임무와 사역의 근원에 대해 물으신 주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전에 이 문제에 관해 그들 나름대
로의 결론을 얻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사역을 시작했을 무렵 그들
은 요한의 목적과 요구를 알아보기 위해 특별히 사람들을 보내 조사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요한은 메시야를 소개하는 선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가 메시야이시라는 것과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
실(요 1 :19-34)을 그들에게 분명히 증거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요한의 사
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판단하
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을 정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미 예수님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
을 정죄할 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요한의 사역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요한의 사역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명예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었습니다. 왜
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하나님께로 온 선지자라고 인정하고 있
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국 진퇴양난에 빠져서 힘없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아들에 관한 비유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 즉 믿음 없
이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과 자기 자신을 의롭게 생각하는 종교인들에 대해
설명하고 계십니다. 전자는 처음에는 불순종했지만 나중에는 자기의 잘못
을 뉘우치고 순종했습니다. 후자는 처음에는 순종했지만 결국에는 불순종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교만한 자기 의를 가지고 요한이 증
거했던 참된 의(義)를 받아들이는길을 스스로 막았습니다. 하지만 시회의
쓰레기 취급을 받던 사람들은 요한이 전한 메시지를 받아드려서 구원을 받
았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보
았지만" 끝까지 완고한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았습니다(32절). 32절 말씀으
로부터 우리는 참된 회개가 참된 믿음의 전제 조건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속자를 배척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유업을 상실함(21 :33-46)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과거의 범죄와 현재의 곤고한 상태를 요약해서 보
여주는 마지막 비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도원에 비유하시면서 구약성경의 상징을 적절
히 사용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시편 80 :8-
19과 이사야서 5 :1-7에 대해 언급하신다는 사실을 즉시 간파했을 것입니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끌어올려 가나안에 심으셨
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과 돌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로부터 열매를 기대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러 주인은 자기의 종들
을 보내어 농부들에게 예상되는 수확물을 얻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요구는 거절당했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의 요구를 계기로 주인에 대해 품고
있었던 적대감을 드러냈으며 그것은 급기야 주인의 종들을 잔인하게 살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의 외아들을 잔인하게 죽였을 때
상황은 절정에 다다랐습니다. 상처입은 아들의 처참한 주검은 말이 없었지
만 악한 농부들의 증오심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습니다. 이 범죄는 무지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농부들은 그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그
러므로 이것은 고의적으로 행한 범죄였습니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을 배반하고 죽인 살인
범으로 직접적으로 지목했습니다. 사실 이 비유가 가리키는 바가 너무나 분
명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 자신이 받을 심판을 스스로의 입으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41절). 이때부터 그들은 이 비유대로 주님을 죽일 계획을 모
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참된 상속자를 배척함으로써 그들은 유업을 잃어버
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 자신에게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십
자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일에 있어서 급격한 변화를 초래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국가적으로 메시야를 배척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에 던지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는 것이 단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기
억해야만 합니다(겔 36-37장).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은 미래의 천년왕국 시대에 새롭게
된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시 72 :16, 사 27 :6). 그러나 우리는 베드
로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에 적용하는 교훈을 간과해서는 안됩니
다. 그는 "오직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벧전 2 :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적용이 처음의 해석과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땅
에 있는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교만한 이스라엘은 거치는 반석이신 그리스도에 걸려 넘어져
서 정치적으로 와해된 가운데 있습니다(롬 9 :32, 33). 하지만 이사야서
8 :14의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은 또한 다니엘 2 :34, 44의 쳐서 멸하는 돌
입니다. 첫 번째 상징은 주님의 성육신에 관한 언급이며, 두 번째 상징은 능
력과 심판주로 다시오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언급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적용하신 구약성경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에 찔림이
되었으며, 주님께 대한 그들의 적대심을 더 한층 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군중들만 없었다면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붙잡았을 것입니다. 이것
은 그들이 도덕적으로 비겁한 사람들이었음을 드러내줍니다. 대개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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