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왕의 등장과 증거(마태복음 3, 4장)-1
2장과 3장 사이에는 연대적으로 오랜 간격이 있습니다. 2장에서는 주님
께서 나사렛의 어린 아이이지만, 3장에서는 침례 요한의 전도와 우리 주님
의 30세 때의 침례받으시는 내용이 전개됩니다.
요한의 사역(3 :1-12)
"그 때에"(1절)라는 표현은 주님의 어린 시절부터 그 때까지 역사상 주목
할 만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일은 다
소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곤한 잠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의
삶 속에 열의에 찬 선지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말라기-사백년 전-이후
처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에 말씀을 주셨으며, 영적인 권위를 가진 목
소리가 광야에 울려퍼집니다.
요한은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쇠
미한 시대에는 제사장적인 사역보다는 선지자적인 사역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힘든 고행과도 같은 선지자의 생활로 들어
섰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그는 광야에서 격리
된 채 살았습니다. 그는 참된 나실인이었으며, 생을 마칠 때까지 독주를 입
에 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고독의 자녀는 단순한 신비주의자가 아니었
습니다. 그는 태중에 있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능력으로 그에게 임했습니다(눅 1 :5-25, 57-80: 3 :2; 막
1 :7).
그는 마치 어두운 밤에 홀연히 밝은 빛을 발하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
과도 같이 이스라엘에 나타났습니다.
두 음성-요한 자신(1-12절)과 하나님 아버지의(13-17절)-이 들려왔으
며, 그것은 모두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전도자가 전하는 말씀은 전도자 만큼 엄했습니다. 그 말씀은 회개와 진실
을 촉구했습니다. 혈통과 유전, 그리고 과거의 특권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믿음은 완전히 거짓되고 쓸모없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의 날카로운 도끼 앞
에 이스라엘의 거대한 교만의 나무는 여지없이 쓰러졌습니다. 마치 그는 산
을 깍아서 골짜기를 메우는 거대한 불도저처럼 왕께서 오실 길을 곧고 평탄
케 예비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2절)는 외침은 물론 하늘나라를 의미하
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하늘의 법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진정한
왕의 출현과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천국"(문자적
으로 "하늘들의 나라")이라는 표현은 다니엘서 7 :27에서 나왔으며, 세상에
서의 메시야의 영광과 통치에 관한 언급입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인의 교회
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구약성경의 모든 선지자들이 메시야가
출현하는 위대한 날과 관련해서 생각한 그 나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를 맞이하는 데에는 반드시 그 나라에 합당한 태도를 갖추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요한은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
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결국 이러한 그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요한은 이사야 40 :3-5과 말라기 3 :1의 위대한 예언을 성취했습니다. 이
두 구절 모두에서 우리는 "예비하다"(prepare)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발
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의 사역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그는 문지
기로서(요 10 :3), 사자로서, 선구자로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소개하
는 사역을 담당할 자로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엘리야의 "심
령과 능력"으로 온 사람으로서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했습니다(왕하 1 :8; 슥
13 :4; 눅 1 :17).
"온 유대"가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이것은 많은 군중을 의미하는 관용적
인 표현입니다(5, 6절). 이 사람들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라는
촉구에 순종함으로 요한의 침례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로우시다"고 인정한 것입니다(눅 7 :29).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유대교 안에서 지도적인 두 분파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전자는 정통적인 유대교인들이자 의식주의자들이었으며, 후자
는 자유주의적이요 합리론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들이 요단 강으로 오는 것을 보자 요한은 담대하게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
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은 그들에게 진실한 회개를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7, 8절). 그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자랑했지만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었습니다(9절). 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기에 만일 그 나무
가 좋은 나무가 아니라면 도끼와 불에 의해 그 나무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
다(10절).
요한은 11절에서 두 종류의 침례, 즉 요한 자신의 침례와 왕의 침례에 대
해 말하고있습니다. 그의 침례는 회개를 위해 주는 물 침례였으며, 왕의 침
례는 성령과 불로 사람에게 주는 침례였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성령과 불
의 침례는 오순절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고전 12 :13)의 지체로 더해지는 진리
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불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운명 중의 하나
인 "꺼지지 않는 불에서 영원히 불살라지는 것"에 대한 언급이라고 해석합
니다. 이것이 올바른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1절이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며 동일한 경험을 의
미한다고 보는 것이 문맥에 더 일치하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요한이 예수
님께서 성령 또는 불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라고 이야기 한 점을 주목해 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요한은 회개하기 위해 자기에게 침례를 받고, 죄를 고백하며 자기
자신이 심판받기에 합당한 자라는 사실을 인정한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언급한 "너희"는 단지 그가 하는 일을 냉담한 반응
으로 지켜보는 구경꾼들이 아닙니다. 그는 믈로 침례를 베풀었으며, 회개한
사람들은 이러한 예식을 통해서 메시야가 나타나시기를 고대하던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리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령과 불
로 받는 침례는, 침례를 받는 사람들을 더욱 더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교회
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
불은 항상 심판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심판이 언제나 보응의 성격만을 지
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은 때로 정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 말라기는 불을 이러한 두 가지로 사용했습니다. 그는메시야가 이스라
엘에 임하는 것을 "연단하는 자의 불" 그리고 "레위 자손을 깨끗케"하는 것
으로 언급했습니다(말 3 :2, 3; 슥 13 :9). 그는 또한 주님의 노를 "극렬한 풀
무 불"(말 4 :1)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한은 마태복음 3 :11, 12에서 "불"이
라는 용어를 이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11절에서는 말라기
3 :2의 불의 의미를, 그리고 12절에서는 말라기 4 :1의 불의 의미를 사용했습
니다.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는 것은 메시야의 초림과 관계가 있으며, 알곡
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는 것은 주님의 재
림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의 침례에 수반된 "불의 혀 같이" 갈라진 모습(행 2 :3)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전해질 그리스도인의 복음 사역의 태우는 의미
와 정화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이와 동일한 경험, 즉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
시는"(행 15 :8, 9) 경험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오셔서 불신과 거짓 가운데서 믿음을 가진 남은 자들
을 발견하신 것처럼 두 번째 오실 때에도 이와 똑같은 상황을 발견하실 것
입니다. 알곡은 모아져 곡간에 들이게 되겠지만 쭉정이는 불에 태워질 것입
니다(12절). 이 은유적인 표현은 매우 엄숙한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침례받으심(3 :13-17)
예수님은 이미 땅의 증거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의 증거를 들
을 차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삼십 세 쯤 되셨으며(눅 3 :23), 거의 알려
지지 않은 나사렛에서의 생활을 벗어나 이제 자신의 공적인 사역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알려지지 않은 주님의 생활에 대해 하나님께
서는 기뻐하실까요? 그 결과를 이제 알아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나오셨을 때, 요한은 심히 놀랐습니다.
요한은 너무 황송하여 그분의 청을 거절하며 오히려 자신이 주님에게 침례
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14절). 요한은 이렇게 주님께 자신의 분
별력과 겸손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요한에게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15절)라고 대답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진 사망의 심판이
옳다고 인정함으로서 "하나님은 의롭다:(눅 7 :29)고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단 강은 언제나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자신이 지은
죄로부터의 회개와 메시야로 오신 분, 세상 죄를 담당할 하나님의 어린 양
에 대한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죄도 단순한 고백에 의해서 제거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의
식에 의해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죄의 값은 오직 사망이며, 그러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그 값을 반드시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오직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십자가로 나아가 죽임을 당하
므로써 모든 값을 지불하고 모든 의를 이루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주
님께서 물 속에서 침례를 받으신 것은 그분 자신이 약 삼년 반이 지난 후에
경험하시게 될 심판의 침례를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서 죄를 위해 드리는 제사는 채무자의 편에서 약속
어음을 주는 것에 비유되어 왔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는 약속어음을 갱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죽음의 요단 강에 오셔서 침례를 받
으실 때에 그분은 그 어음에 배서 하시고 그 채무의 이행을 보증해 주
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모든 빚을 갚아 주셨습니
다.
이제 하늘이 열렸습니다(16절).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서 사도행전
7 :56과 요한계시록 19 :11의 조명을 받아 살펴보아야 합니다. 각 경우마다
하늘이 열리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하늘이 열리
는 것은 땅에 계신 완전한 사람이신 주님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두 번째는
하늘에 계신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은 자신의 왕국을 친히 다스리기 위해 다시 오시는 주님을 보여줍니다. 기
독교는 열린 하늘의 계시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잉태되셨던 분입니다(눅 1 :35). 하지만 이
제 그분은 능력과 섬김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으십니다(눅 4 :18; 행 10 :38).
이러한 성령님의 기름부음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므로써 완성될, 그
분의 능력있는 사역이 막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이루어졋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분에게 임하셨습니다(16절). 자신의
연약한 다리를 얹을 만한 장소도 찾지 못하던 노아의 비둘기는(창 8 :9), 죄
로 인해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 위에서 수 천 년 동안 임할 곳을 찾지 못하시
던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충분히 만족하
며 거하실 수 있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이 성령님께서 임하사 그 위에 머물러 계심을 본 바로 그 사람이 하나
님의 아드님으로 인식되어야 할 분이시라는 사실을 요한에게 보여주셨습니
다(요 1 :33).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성령님께서는 자신이 거하실
수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기쁨으로 예수님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이라고 말씀하
셨습니다(17절).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모든 즐거움을 발견하셨습
니다. 이렇게 영원한 삼위일체가 드러났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관심의 초
점이 하나님의 유일한 아드님이자 영광스러운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집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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