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 6월 3일
마태복음 14장 13절; 누가복은 9장 9-10절; 마가복음 6장 30-32절
따로 빈들에 가시니
주님은 침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심히 슬퍼하셨습니다. 그것은 중대하고 불길한 징조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이 친히 당하실 죽음에 대한 어두운 전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에 주님은 어떠한 느낌을 가지셨을까요? 이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는 요나단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애도에서 얻습니다.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삼하 1:26), 그러나 요한이 잔혹한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주님은 헤롯의 비열한 통치를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에 나서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구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사회개혁가나 정치적인 전복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마 14:13).
이때 주님은 양심에 괴로움을 느끼는 또 미신에 사로잡힌 헤롯에게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분이 헤롯의 영토에 그대로 머무셨다면 그러한 만남이 어루어질 가능성이 많았는데 말입니다(눅 9:9,10). 그보다는 슬프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 그분은 다른 데로 가셨습니다. 이는 고요히 묵상하고 아버지의 주권적인 뜻에 순종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는 반대, 핍박, 앞서 일하는 종들을 잃음 등을 경험합니다. 또 폭풍우가 될 구름들이 모여들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때가 찾아오면,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한적한 곳에 거하십시오.
마가는 이때가 사도들이 주님께서 지시한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시기였음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주님께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분에게만 책임을 졌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주님은 그들의 주목과 관심을 독차지하지 못하셨습니다. 최근에 거둔 성공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고 그들은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했습니다." 더욱이, 이때에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요구들로 인해 그들은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수고로부터, 특히 자신들로부터 쉼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아셨습니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주님은 자신의 종들이 따로 떨어져서 그분과 함께 또 그분 안에서 쉼을 누려야 할 필요성을 아셨습니다. 영혼이 회복을 얻는 것은 오직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만 가능합니다. 남의 이목을 의식해 분주하게 사는 그런 메마른 삶을 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만약 더 많은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그분께 사로잡혀 고요함을 누리십시오. 그것이 최상의 준비가 됩니다. 주님은 그분께 나아오는 이들에게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영혼의 안식을 발견하는 길은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께 배우는 데에 있음을 상기시키십니다.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지쳐버린 나는 알고 있어요. 압력과 혼잡함을.
수고의 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으세요.
넘치는 힘 속에서 또 다시 강해지리니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과 함께 - 6월 5일 (0) | 2020.06.05 |
---|---|
주님과 함께 - 6월 4일 (0) | 2020.06.04 |
주님과 함께 - 6월 2일 (0) | 2020.06.02 |
주님과 함께 - 6월 1일 (0) | 2020.06.01 |
주님과 함께 - 5월 30일 (0) | 2020.05.31 |